죽음의 섬 (1945) 발 류튼 / 마크 롭슨 콤비의 걸작 호러영화.
이 영화는 아주 의미심장한 문구들로 시작한다. "발칸전쟁이 한창이던 1920년대 그리스는 엄청난 광기와 가난, 황폐함을 겪는다. 사람들은 지치고 굶주리고 잔인해져서 브리콜라카스라는 죽지 않는 흡혈귀를 믿는다. 제우스나 헤라, 아폴론같은 고전적이고 우아한 신들 대신에 말이다. 블리콜라카스같은 설득력 없고 잔인한 흡혈귀가 제우스나 헤라같은 신들을 대체한 이유는 뭘까? 바로 전쟁과 절망이다."
왜 이런 문구가 영화 처음에 떴을까? 이 호러영화의 줄거리와 주제가 바로 이 내용이기 때문이다. 저예산 호러영화 주제가 종교의 사회학이다? 프로듀서가 발 류튼이라면 이것이 가능하다.
콜럼비아대학을 나온 문학평론가이자 박식한 지성인 발 류튼이 어찌어찌해서 저예산 호러영화 프로듀서로 풀리게 되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어 볼 기회가 없었다. 에버랜드 인형탈 수준의 특수효과를 주고 호러영화를 만들어내라 하는 명령뿐이었다. 발 류튼은 삼류 호러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그는 삼류호러영화를 만드는 척 하면서 사실은 심오한 드라마를 만들었다. 사장이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라는 제목을 주고 영화를 만들어내라 명령하자, 그는 제인 에어를 각색한 밀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거대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근친상간, 절망, 분노와 저주, 숭고함과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격렬한 드라마 말이다. 물론 쿠바에 가서 찍을 돈은 없고, 싸구려 셋트장에서 찍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아주 거대한 공간과 열에 들뜬 인간들의 추악한 드라마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대하드라마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이 영화 죽음의 섬도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뵈클린이라고 하는 화가의 걸작 죽음의 섬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이다. 저 환상적인 그림 속 죽음의 섬을 보라.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야기가 막 샘솟아날 것 같지 않은가? 너무나 압도적인 그림이다. 발 류튼/마크 롭슨 콤비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종교의 사회학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소재를 살려 작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본질을 깊이 파고든다.
최고의 호러영화 배우인 보리스 카를로프가 주연을 맡았다. 그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페리데스 장군 역을 맡았다. 장군은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하게 작전을 지휘하고 친구마저도 처형을 할 정도로 원칙주의자다. 그런데 인간성이 차가운 사람이기는 커녕 그 반대다. 책임감이 아주 강하고 이타적이며 진심으로 조국을 사랑한다. 친구를 눈 하나 깜박않고 처형한 것도 수많은 젊은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 그가 아내가 묻힌 죽음의 섬에 아내를 조문하러 잠시 간다.
죽음의 섬 속으로 들어간 페리데스장군과 미국인 기자 올리버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이것이 컬러영화였다면, 위의 뵈클린 그림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페리데스장군과 올리버기자 모습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그려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흑백영화이고, 죽음의 섬으로 그들이 들어가는 그 장엄하고 환상적일 장면 효과는 반감된다.
페리데스장군이 발견하는 것은 이미 약탈당하고 비어있는 아내의 무덤이다. 가난하고 절망적인 어부들의 손길은 이미 아내의 무덤을 휩쓸고 갔다. 하지만 페리데스장군은 원칙주의자였고 이 사건의 진상을 캐러 섬에 잠시 머물기로 한다.
섬안으로 들어간 페리데스장군과 올리버기자는 어느 외딴집을 찾아내고 그안에 초조하게 머물고 있는 어느 부부, 노파,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노파는 장군에게 귓속말로 젊은 여자 테아가 사실은 블리콜라카스라고 한다. 장군은 그런 미신따윈 집어치우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이 저택 안에 전염병이 들이닥치고 사람들이 하나 하나 죽어나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장군은 미신에 빠지게 되고 테아가 블리콜라카스이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악마적인 존재라고 믿게 된다. 전염병으로 그 어느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책임감 있는 장군은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의사가 아니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전염병을 가져온 존재 블리콜라카스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의 이타적인 선량함이 그를 미신에 빠지게 하고 테아를 죽이려는 살인자가
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발칸전쟁 기간 동안 그리스의 정신세계를 몰락시키고 황폐화하게 만들었던 상황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이 영화는 그리스 더 나아가 전쟁의 참상을 겪는 모든 국가들에 대한 영화이다. 그 국가들이 바로 죽음의 섬들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병약했던 투숙객 부인이 미쳐서 칼을 들고 날뛰게 된다. 저택 안은 끔찍한 살인의 현장이 된다. 이 비극적이고 잔인하고 끔찍한
현장을 소름끼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은 거장급 감독 마크 롭슨과 발 류튼의 천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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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호러 글을 보니 너무 좋으네요 +_+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이거랑 발루튼 영화들 어디서 상영해줬으면 좋겠네요.
영자원에 디비디 시리즈가 있던데 영어판이라 보다 잠들었던지라 ㅠㅠ


멋진 작품 소개 감사합니다.
저 그림 좋아하는데... 그 소재라니..
언젠가 꼭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