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 마인호프' - 폭력의 기원을 찾는 웰메이드 역사영화
1. 나는 1968년을 살아본 적이 없다. 영화와 책에서 숱하게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가끔은 1968년, 혹은 그 언저리의 시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살던 시대의 씨네필들에게 왕가위가 낭만이었다면 그 시절 씨네필에게는 장 뤽 고다르가 낭만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라는 걸출한 영화가 등장했고 당시 한창이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反戰)의 구호를 외치던 히피들의 문화가 유행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기성세대의 권력은 거센 저항을 받았으나 그 막강한 힘으로 권력을 지켜냈다. 다만 그들에게는 "언제든 저항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프랑스 누벨바그, 독일 뉴 저먼 시네마, 아메리칸 뉴 시네마 등 영화 혁명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2.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어나 성장한 젊은 세대들이 느낀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에서 시작됐다. 독일의 경우는 젊은 세대들이 전쟁에 동조한 부모세대에 대한 환멸을 느낄 나이가 됐다. 이때 이스라엘은 전쟁이 한창이었고 미국 역시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여기에 동조하려는 자국의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청년들은 환멸감을 느꼈고 이에 저항운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울리 에델의 영화 '바더 마인호프'는 그 지점으로 향한다. 바더 마인호프는 '적군파'로 불리는 극좌 테러리스트 조직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바더 마인호프'는 극좌 청년 안드레아스 바더(모리츠 블라이프트로이)와 좌파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마르티나 게테크)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1967년 이란 황제 팔레비 샤의 서독 방문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이어졌고 이때 한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때부터 좌파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과격한 방법을 택한다.
3.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테러 방식의 진화다. 바더의 일행은 처음에는 문 닫은 시간대에 백화점에 진입해 폭발물로 방화를 저지른다. 이들은 민간인 피해를 막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테러 방식은 점차 과격해져 무장 탈옥과 은행강도, 폭탄 테러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폭탄 테러는 언론사나 경찰서, 미군부대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도 나오게 된다. 테러에 대한 경찰의 진압이 점차 강경해지자 이들에게 동조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이들은 각자 테러조직을 결성해 테러를 저지른다. 이제는 비행기 피랍이나 요인 납치, 살해 등 과격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또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인 검은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살해한 사건 역시 맞닿아있다. 뮌헨 올림픽 참사는 테러에 대한 경찰의 공포를 가중시키는 일이 됐다.
4. 요인 납치·살해와 비행기 피랍 등 테러의 잔혹성이 극에 달하자 정부는 교도소에 있는 바더의 일행을 만나 이들에 대해 묻는다. 비행기를 피랍한 테러조직의 요구는 교도소에 있는 테러리스트와 인질을 교환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바더는 이에 대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바더와 그의 연인 구드룬 엔슬린(요하나 보칼레크)은 변호사를 통해 밖의 조직원과 소통했지만 구체적인 테러 방식을 지시한 적은 없다. 폭력이 세대를 계승하면서 더 무자비해진다는 것을 실제 사건으로 증명하고 있다. 영화에서 경찰과 공권력은 바더 마인호프 조직에 대해 압박과 진압을 반복한다. "테러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9.11 이후 미국의 기조에 공감하지만 영화 속 연방경찰국장 헤롤드(브루노 간츠)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 테러의 근원적 차단을 위해서는 테러리스트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이 테러리스트는 제3세계 과격단체가 아닌 자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5. 영화는 이를 위해 초반부 팔레비 샤 방문 반대 시위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출입 제한선을 지키며 반대구호를 외치던 청년들 앞으로 검은 옷의 무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출입 제한선과 함께 경찰들보다 앞서서 팔레비 샤에 대한 지지 구호를 외친 뒤 피켓을 부셔서 각목을 만들고 이것으로 출입 제한선 뒷편에 있는 반대 시위대를 공격한다. 검은 옷의 무리와 반대 시위대 사이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이들은 구경만 할 뿐이다. 시위대가 폭행을 당하고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오히려 경찰은 그 시위대를 공격한다. 여기에 기마경찰과 사복경찰까지 관여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이 아수라장 틈에서 한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훗날 이 경찰은 동독의 스파이라는 의혹이 있었으나 사실은 밝혀지지 못한 채 영구미제사건이 됐다). 꽤 오랜 시간 지속된 이 장면에서 영화는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경찰을 가해자로, 시위대를 피해자로 묘사한다.
6. 이는 폭력의 시발점을 묻는다. 비행기 납치와 암살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테러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나치즘으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으면서 그에 대한 반성이 없이 제3세계에 대한 침략전쟁에 동조한다. 독일 청년들에게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과격한 테러리스트와 같은 히틀러의 만행에 대한 반성이 없는 기성세대에 청년들은 분노한 것이다. 그 분노의 상징적인 지점이 팔레비 샤 방문 시위사건이다. (다만 세계 역사에서 히틀러 못지 않은 테러리스트들은 영국과 일본, 중국에 존재한다. 영화에서 구드룬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오쩌둥의 말을 인용하는 대사를 한다. 당시 서독 기성세대에 저항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맞지만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한 단체가 폭압적인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다소 우습다). 즉 영화는 히틀러 시대의 나치가 바더 마인호프를 낳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적군파는 바더와 마인호프, 구드룬의 사망 직후에도 약 20년간 활동을 지속했다(1998년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7. 바더 마인호프는 폭력에 폭력으로 저항한 하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는 세대를 이어가면서 반복됐다. 이 영화의 독일어제목은 'Der Baader Meinhof Komplex'다. 여기서 'Komplex'는 영어의 'Complex'와 같다. 이는 '집단', '집합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심리학·정신분석학에서는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을 뜻한다. 칼 구스타브 융은 콤플렉스에서 언어 연상 시험을 통해 특정 단어에 대한 피검자의 반응 시간 지연, 연상 불능, 부자연스러운 연상 내용 따위가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와 이후 심리학자에 이르러 이 개념은 다소 부정됐지만 오늘날에도 '콤플렉스'는 일상적인 말로 편하게 쓰인다(프로이트가 염려한 게 이 지점이다). 그렇다면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는 폭력적인 기성세대(혹은 부모세대)에 대한 극단적 분노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이에 대한 표현으로 바더 마인호프는 테러를 일삼게 됐다. 이는 증후군처럼 번식력을 가져 많은 청년들을 동조하게 만들었고 여러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사내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에게 성적 집착을 보이는 것과 같다.
8. '바더 마인호프'의 이념적 가치에는 동조할 수 있을까? 실제 이 영화가 개봉할 2009년 당시 많은 영화평론가들은 한줄평을 통해 영화의 저항정신에 동조했다. 영화평론가 이용철은 "‘혁명은 시작에 불과해. 계속 싸우자고.’_ 피에르 클레멘티", 박평식은 "영화가 반갑고 감독이 고마울 때"라고 적었다. 황진미 평론가는 "다시, 혁명의 시대, 가슴 뜨거운 영화를 만나다"라고 적었다. 김도훈 당시 '씨네21' 기자는 "2009년 서울 광장의 우리에게 [바더 마인호프]는 뼈아픈 질문의 연속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평들이 작성된 2009년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2009년 7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달 지난 후다. 만약 내가 개봉 당시에 이 영화를 봤다면 위 평론가들과 같은 말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21년에 우리는 더 크고 거센 적과 마주하고 있다. 부조리한 세대들은 언제 어디서 다시 등장할 지 모른다. 그리고 권력은 언제 다시 폭력을 휘두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인류가 존속되고 국가가 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래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념적 갈등도 재정립될 것 같다.
9.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바더 마인호프'의 관객수는 4000명 수준이다. VOD 서비스로 나온지도 오래됐지만 극장 개봉 당시 저리 처참했다면 VOD 판매도 그리 원활하진 않을 것 같다. '바더 마인호프'는 굉장한 에너지를 가진 역사영화다. 실제 영상과 연출을 적절하게 섞어 사실성을 강화했다. 재현한 장면들도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고 고증을 철저히 해 '웰메이드 역사영화'로 손색이 없다. ('바더 마인호프'는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로랑 캉테의 '클래스',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이 있었지만 수상작은 타키타 요지로의 '굿 바이'다. ...얼마나 대단한 영화길래). 이대로 묻어버리기에는 확실히 아까운 영화다. 2021년의 시대정신과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잘 만든 역사영화로써 이 영화는 재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영화를 연출한 울리 에델에게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제외하면 가장 잘 만든 영화다(울리 에델이 '트윈 픽스'와 '크리프트 스토리' 에피소드를 연출한 건 처음 알았다. 그는 가장 최근에 니콜라스 케이지를 주인공으로 한 오컬트 영화를 찍었다).
추신1) 영화를 권하는데 도움이 될 정보: '바더 마인호프'의 메타크리틱 평점은 76점, 로튼토마토 지수 85%(팝콘지수 80%), IMDB 평점 7.4점이다.
추신2) '바더 마인호프'와 맞닿아있는 영화는 굉장히 많다. 가장 가까이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 호세 파딜라의 '엔테베 작전', 독일 옴니버스 영화 '독일의 가을' 등이 있다(그 외 더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멀리 가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도 닿아있다.
추천인 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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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
인간들끼리의 피가 필요없어지는 시점은 어쩌면 정말로 외계인이 이땅에 찾아오고 나서여야 할 것 같네요.

이 영화와 함께 거론되어야 할 영화는, 68과 관련된 다른 수많은 영화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두 편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편은 필립 갸렐이 2005년에 발표한 <평범한 연인들>이고, 다른 한 편은 와카마쓰 코지 감독이 2007년에 발표한 <실록 연합적군>이에요. 갸렐의 영화는 밀란에서 먼저 보았다가 나중에 아트시네마에서 다시 봤고, 와카마쓰의 영화는 전주영화제에서 봤었네요. 시기적으로 비슷한 때에 이 영화들이 몰아서 나온 것도 주목할 점이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할 부분은 이 영화들이 공히 혁명의 쇠락과 관련이 있어서입니다. 동조했던 시민들은 물론 함께 나섰던 동지들도 등을 돌렸을 때, 그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랄까요. 세 편의 영화가 다른 스타일 속에 그러한 소재를 다룬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지요. 세 감독이 모두 그 시기를 통과했던 사람들인 만큼 혁명의 시간에 대한 기억을 잔혹한 슬픔 속에 잘 새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세 영화가 다 시간이 길어요. <바더 마인호프>가 제일 짧아서 150분인가 그렇고, 나머지 두 편은 거의 3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세 분 모두 목숨 걸고 만들었다는 소리죠.
저는 사실 이 영화와 관련해 더 기억하는 20자평은 '독버섯을 관찰' 운운했던 모 평론가의 것입니다. 그의 눈에는 그들이 한낱 테러범으로 밖에 안 보였던 거지요. 청년운동이 죽은 지금, 그들의 이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그는 모르고 있다는 마음에 '역시 조선일보 출신'이라고 생각했더랬지요.

저도 왓챠에서 그 독버섯 운운하는 한줄평을 읽었습니다. 좋은 시대에 살다가 읽어서 그런가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몽상가들'에서 다른 것보다 놀란 건 그 시절 씨네필들에게 고다르가 무슨 저희 시대에 왕가위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습이었죠 ㅎㅎㅎ
고다르라면 세계영화사 책에 나오는 인물 정도였던터라 ㅎㅎㅎㅎ

시대배경을 자세히는 몰라서 몰입하기 힘들었지만, 굉장히 사실적으로 잘 찍은 영화란 느낌은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