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 개인적인 해석(2019 가장 과소평가된 영화)스포
1.제임스 그레이의 애드 아스트라는 감독의 전작들과 사뭇 달라보입니다. 데뷔작부터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온 그레이답지않게 이 영화의 로이는 이민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로이는 다른 그레이의 인물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부적응자라는 점이죠. 이는 아마도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서 오는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초반부의 내래이션에서 보여지듯 로이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자신 안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고 생존해있지만 살아있지는 않은 상태로 보여집니다. 그랬던 로이가 자신의 마음으로 깊게 떠나고 그의 감정을 회복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내용을 우주를 배경삼아 표현한 영화고 결국에는 무의미한 생에서의 구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떠나는 리브 타일러의 모습을 희미하게 처리합니다. 이는 아마도 로이 심리의 표현인 동시에 후반부의 어떤 장면과의 대비를 통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로이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에 해당하는 장소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추락합니다. 이 장면은 저한테 전체 영화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로이의 마음 아래로 내려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지상과 우주의 경계에서 지상으로 귀환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또 이 장면서 수직의 감각이 중요한데 이는 후에 있을 아버지와의 대면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로이와 아버지는 상당히 독특한 부자입니다. 로이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그 상처가 그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는 아버지를 찾는 여행을 하면서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의도치않게 같이 우주선을 탄 승무원들을 죽게 만듭니다. 또 초반부 아내를 떠나보낸다는 점, 임물를 구조요청보다 중요히 여긴다는 점 등이 로이와 클리포드를 겹치게 만드는 요소들이죠.
그리고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로이와 클리포드가 대면할 때 제임스 그레이는 둘을 수직적인 구도로 담아냅니다.클리포드는 로이보다 높은 곳에 있게 하죠. 그리고 로이는 올라가서 아버지와 수평적인 위치로 올라가서 아버지와 재회합니다.
이 장면이 저는 이 영화를 함축한다고 봅니다. 아버지는 로이의 깊은 마음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상처의 원인이고 그의 행로에 큰 영향을 끼친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수직구도로 둘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지만 로이는 곧바로 아버지와 대등하게 묘사됩니다. 이는 로이가 클리포드와 여러모로 비슷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간의 여정을 통해 그가 아버지와 자신의 상처를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기점으로 두 인물의 차이가 보여집니다.
3. 이 작품서는 클로즈업과 롱숏의 대비를 훌륭히 사용했습니다.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화면 가득히 잡을 때 드러나는 것은 인물의 열망, 삶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로이와의 몸싸움을 롱숏으로 잡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이 넖은 우주에서)작은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 때문에 제게는 이 영화의 롱숏들이 우주의 시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에 로이가 내래이션서 아버지가 찾아나선 지적생명체(삶의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것은 삶의 무의미함일 것입니다. 클리포드는 그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 사람이였습니다. 반면에 로이는 아버지와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면서(우주선이 폭발한 에너지로 지구에 귀환하는 것은 이에 대한 은유입니다. ) 귀환합니다.
삶의 무의미에 대한 구원을 그레이는 로이의 독백과 초반에 포커스아웃로 희미하게 처리한 리브 타일러를 선명히 잡아내면서 보여줍니다. 그 구원의 열쇠는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의 문제였지요. 이 영화는 무의미한 삶에서의 구원은 거대한 우주가 아닌 사소한 것에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지나간 관계가 아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소소한 한 잔의 커피와 일상의 감정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영화입니다.
우주선 타기 전 로이가 수영하는 물은 양수에 대한 은유입니다. 두번째 탄생을 맞은 로이는 그의 내면을 마주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외로움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꿉니다. 이 장면들은 독백과 회상씬들, 우주선에서의 모습들이 뒤섞여 그의 내면을 담아냅니다. 특히 고개를 흔드는 로이를 뒤에서 잡아낸 장면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 아버지를 만난 로이는 버림받은 아이의 상처를 인지하고 아버지와 마주하며 치유해나갑니다. 그리고 그의 감정을 회복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삶은 무의미하며 빛나는 밤하늘의 별이 아닌 사소해보여서 포커스아웃했던 것들과 인간의 감정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니다. (여러 행동을 통해 비슷해보였던)로이와 아버지의 차이는 그것을 깨달았는냐의 차이처럼 보이네요.
4. 개인적으로는 인터스텔라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두 감독을 비교하는 것은 자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레이는 아는 사람만 아는 감독이고 놀란은 현재 가장 유명한 감독이죠.(물론 둘 다 우열을 가리는 것이 무의미한 훌륭한 거장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겠지만) 그런 두 감독을 고작 우주영화를 찍었다는 것으로만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저는 두 감독이 작품내적으로도 참 다르구나를 느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본질적으로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세계의 운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정서는 우주에 대한 경외감과 딸로 대표되는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또한 웜홀의 존재,책장과 관련된 떡밥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고 답을 찾겠죠라는 대사처럼 이해해야 할 세계의 규칙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반면 애드 아스트라는 아들의 서사이고 세상의 운명보다는 인물의 내면에 관심있습니다. 우주보다는 지구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핵심적인 감정도 상처와 버림받음, 외로움이죠. 서지와 관련된 떡밥도 간단히 이야기하고 넘어가고 우주의 규칙에는 전혀 관심이 없죠. (나중에 따로 쓰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애드 아스트라가 더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덩케르크를 제외한 놀란의 영화들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애드 아스트라가 하고자 한 것을 정확히 한 느낌이거든요. 하지만 이 두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들을 비교하는 재미는 있을 것 같네요.
애드 아스트라 시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추천합니다,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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