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 간략후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연출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신작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를 보았습니다.
<카메라를 멈추며 안 돼!>에서 전에 없던 방식으로 좀비 영화, 영화, 영화인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주며
잊지 못할 데뷔를 치른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보통은 아닌 연출 전략을 구사합니다.
전작만큼의 대폭소나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은 아니지만, 허허실실 끊이지 않는 유머와 반전으로
감독이 이번에 애정을 표시하는 대상은 연기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단 배우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카즈토(오사와 카즈토)는 연기를 너무 하고 싶은 배우지망생이지만 치명적인 핸디캡이 있으니,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절하는 증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기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인데
오디션에서도 감독이 몰아세우기라도 하면 혼절하기 일쑤이니 배우 일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고,
월세와 전기세도 밀려 생활고까지 겪는 와중에 카즈토는 5년만에 동생 히로키(코노 히로키)를 만납니다.
히로키는 카즈토에게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배우 에이전시 '스페셜 액터스'를 소개해주는데,
이곳은 본업보다 더 큰 부업이 있었으니 바로 의뢰인의 고민을 연기로 해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시사회 리액션 연출, 식당 컴플레인 등 소소한(?) 의뢰 업무를 처리하던 어느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여관을 사이비 종교 단체에 현혹되어 넘기려는 언니를 구해달라는 의뢰가 옵니다.
생각보다 스펙터클한 업무에 잠시 당황한 에이전시 소속 배우들은 이내 시나리오를 구성해
사이비 종교 단체 '무스비루'의 새내기 신도로 위장 잠입, 단체에 숨겨진 비밀을 캐나가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모니터, 스크린, 무대와 같이 배우의 연기가 선보여지는 어떤 '플랫폼' 혹은 '장벽'을 뚫고
그들의 연기가 우리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섞인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당황과 황당을 오가는 일련의 소동 속에서 흥미롭게 그려냅니다.
매체나 무대에서 보여지는 연기는 우리가 가상의 대중예술 속 퍼포먼스를 본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과장되고 인위적인 모습이 나타나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반면,
그런 모습이 우리 일상 한복판에 나타나는 순간 큰 이질감이 나타나고 영화의 웃음은 거기서 촉발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펼쳐지는 사이비 종교 단체라는 현실의 '무대'는 오히려 저걸 믿을 사람이 누군가 싶을 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반면, 이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데 있어서 진심인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섞이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런 풍경은 별의별 부조리에 다 현혹되는 현실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꼭 현실성을 따지며 눈 앞의 것을 믿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건 이 영화를 너무 복잡하게 보는 태도같고,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가 강조하는 건 (배우 뿐만 아니라) 연기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때로 연기가 가짜, 거짓말, 위장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깔보는 시선이 불편하게 해도,
현실 문제에 뛰어들어 분투하는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처럼 그 쓸모는 매체나 무대 속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임을 영화는 넉살어린 시선으로 이야기합니다.
연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비단 배우들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연기의 쓸모는 더욱 직접적으로 와 닿습니다.
당장 우리들 모두가 사회 생활 속에서 긴장되고 자신없는 순간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부터가 연기일텐데,
그렇다면 내 본 감정으로 '연기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순간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어쩌면 배우가 아닌 우리들도 매 순간 내 본 감정을 숨기고 연기하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타인의 고민이든, 자신의 고민이든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연기로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내가 아닌 나로 가장하는 연기가 오히려 세상을 살기 위한 진실된 노력일 수 있음을,
그렇게 우리들도 순간마다 노력하며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출중한 외모나 연기력, 인지도보다도 캐릭터에 착 붙는 배우들을 인지도 불문하고 캐스팅하는 감독의 섭외력은
이번 <주식회사 스페셜 액터스>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되어 캐릭터들의 앙상블을 극대화시킵니다.
실제로 배우들과 논의해 가며 만들었다는 시나리오답게, 영화는 일본영화에서 으레 볼 수 있는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런 감정 연기를 배제하고 유머는 과장될지언정 감정은 진솔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평범하고 소심한 모습이 평소에도 그럴 것만 같으나 그 쩔쩔 매는 모습으로 어느덧 극을 장악(?)하는
카즈토 역의 오사와 카즈토를 필두로, 어설픔과 능청을 오가는 배우들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허술한 부분이 많아 이런 전개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영화가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35분여의 말도 안되는 영화를 보여준 후 그게 왜 말이 안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납득시켰던 전작처럼,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 역시 콩트를 능가하는 실제 상황을 이내 납득할 수 밖에 없도록 관객을 설득해 냅니다.
때로 영화의 개연성을 훌쩍 뛰어넘는 비현실과 긴장의 연속이 되기도 하는 현실을 버티기 위해
'연기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유쾌하게 응원하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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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엉성한듯 짜임있게, 능청스럽게 흘러가는 전개일 거 같아서 곧 보려고 예매해놓은 상태였어요. 이 글을 보니 제 취향인 느낌이 물씬 나서 왠지 더 기대됩니다ㅎㅎ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2번 봤습니다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또렷해지는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