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2020 - 페이블] 간략후기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두번째 관람작은 일본영화 <페이블>이었습니다.
동명의 인기 만화가 원작으로 오카다 준이치 등 일본의 스타들이 여럿 출연하는 이 영화는
일본영화에서 보기 쉽지 않았던 스피디하면서도 폭력적인 액션 시퀀스와 일상 코미디가 번갈아 등장하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당혹스러워지는, 취향을 꽤 탈 만한 재미를 줍니다.
동시에 일본 대중문화가 오랜 시간 몸담았던 정서의 시대착오성을 교묘하게 비트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총알 1개로 2명의 목숨을 빼앗기도 할 만큼 신들린 실력을 자랑하는 전설의 암살자 '페이블'(오카다 준이치)은
어느 날 자신을 키워준 보스(사토 코이치)로부터 1년간 누구도 죽이지 않고 평범하게 살 것을 명령 받습니다.
페이블은 '사토 아키라'라는 가짜 이름을 부여받고 오사카에서의 평범한 삶을 시작하는데,
도무지 평범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는 '평범한 삶' 역시 프로 정신으로 임해야만 하는 임무입니다.
남매 역할로 함께 파견된 요코(기무라 후미노)와 회사 동료 미사키(야마모토 미즈키)의 도움 속에서
페이블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재능도 발견해 가며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하나씩 배워 갑니다.
그러나 페이블을 돌보는 오사카 야쿠자 에비하라의 사고뭉치 동생 코지마(야기라 유야)가 출소하고,
전설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전설이 되려는 살인 청부업자 후도(후쿠시 소타)의 추적에,
에비하라 조직을 접수하려는 경쟁 조직 보스 스나가와(무카이 오사무)의 계략까지 끼어들며 페이블의 임무는 위기를 맞습니다.
<더 페이블>에 대한 느낌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게임 'GTA'의 주인공이 '심즈'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정도일 것입니다.
영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페이블과 그 주변 인물로부터 비롯되는 캐릭터 코미디입니다.
페이블은 임무를 수행할 땐 피도 눈물도 없는 반면 특정 코미디언의 이상한 개그 코드에만 반응하고,
감각이 예민하다 보니 뜨거운 음식을 못 먹는다는 어린 아이 같은 특성을 여태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사회화된 인간'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페이블의 이런 모습은 오사카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당황케도 즐겁게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적잖은 재미를 줍니다.
한편 이런 페이블의 주변에서 벌어지며 점차 위기감을 증폭시켜 가는 암흑가 사람들의 에피소드에서는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이 펼쳐지는데, 이 퀄리티가 기대 이상으로 힘 있고 세련되었습니다.
몽글몽글한 느낌의 일상과 비정한 느와르의 질감이 번갈아 나타나기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이게 이 영화의 묘미입니다.
이런 전개 속에서 <더 페이블>은 지금 시대가 원하는 세계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페이블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수시로 접했던 암흑가 세계의 감수성은 매우 시대착오적입니다.
여성들의 접대를 받는 술집에서 업무를 보고, 여성들을 팔아 넘기는 일을 '사업'이라 여기며 돈을 법니다.
마초적 사고관을 하고서 자신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것을 서슴지 않고 그 또한 멋이라 여깁니다.
반면 페이블이 1년간 평범한 삶을 살게 된 오사카의 마을은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그림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마음은 페이블의 삶도 점차 변화시키죠.
세계의 비인간성에 잠시 자신의 인간성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던 페이블의 그런 변화는
유쾌하고 따뜻하면서도 여느 비장한 느와르처럼 부담스런 비극을 부르지 않아 좋습니다.
비장미보다 속도감에 무게를 둔 액션 연출이 꽤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코미디가 매력적이어서
후반부로 갈 수록 액션의 비중이 늘어나는 전가 다소 느슨하게 다가와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기필코 살상을 하지 않겠는 주인공의 의지를 비극적으로 꺾지 않고도 깔끔한 결말을 내며
누군가가 희생당하고 불편해야만 하는 '폭력의 세계'가 아닌,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은
평화가 있는 '일상의 세계'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임을 이야기해 기분 좋게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GTA 심즈 비유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