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언컷 젬스] 관람평

어제 넷플릭스로 본 <언컷 젬스>는 관람자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작품입니다. 저도 회복시간이 상당히 걸려 이제야 평을 씁니다.
제가 올해 만난 첫 번째 마스터피스입니다.
아래는 스포를 간접적으로 포함한 관람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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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끝내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없다면, 영화생활에서 매우 ‘언럭키’한 일이 될 것 같다. 반드시 극장의 스크린과 사운드 시스템이 필요한 영화인데. 과장 좀 보태서 극장 밖에는 만약을 위해 구급차도 한 대 대기시켜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완전히 물이 오른 사프디 형제의 연출력과 경지에 오른 극의 장악력은 경이적일 정도다. 비록 아카데미에선 어떤 호명도 받지 못했지만(그쪽 테이스트와는 상극이니), 84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은 수상했다.
작품 외적으로도 꽤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광 아버지를 둔 사프디 형제 역시 시네필이었고 18살 때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세월은 흘러 그 영화의 주연 아담 샌들러를 감독과 배우로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일생일대의 연기를 위한 판이 만들어진다.
형제 감독의 자전적 발자취가 녹아든 영화이기도 하다. 뉴욕 출신의 시리아계 유대계인 그들의 출신성분. 사프디 형제의 아버지는 보석상이었다. 그리고 이혼도 했다. 하워드라는 캐릭터가 직면한 상태가 떠오른다. 사프디 형제는 보스턴 대학교에서 영화를 배웠는데, 이 영화에서 케빈 가넷의 소속팀이 보스턴 셀틱스이기도 하다.
이제 게임의 시간이다. NBA 경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영화 내내 들을 강박적인 숫자의 게임이 의식도 못 한 채 플레이 된다. 바로 ‘2’. 주인공 하워드(아담 샌들러)가 얼마나 이 숫자에 집착하는지 보자. 케빈 가넷(KG)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며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NBA는 마지막 2분이 진짜야”. 거실에서 TV 채널을 점유하던 아내에겐 “광고하는 동안 2분만 경기 틀어주면 안 될까?” 사정한다. 브로커 드마니의 차에 탄 그는 KG의 훈련장까지 “두 시간이면 간다.”며 출발을 종용한다. 도착해서 왜 그렇게 유대인이 농구에 미쳐 있느냐는 드마니의 질문에 “NBA의 첫 2득점이 유대인이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해명하려 할 때 ‘2초’면 된다고 말한다. 나중엔 그와 얽힌 KG까지 2초 타령을 한다.
그런데 주인공의 특성만 그런 게 아니다. 영화 자체가 의식적으로 이 숫자 2를 살포하다시피 하고 있다. 시간대는 2가 두 개 들어간 ‘2012’년 봄. 내시경을 받는 하워드의 대장에서 발견된 선종의 크기는 2cm. 빚 독촉을 하는 아르노의 수하들이 그의 손목에서 가져간 시계는 2만 달러짜리, 경매에서 중간계의 절대반지와도 같은 블랙 오팔 원석의 최초 입찰가는 2만 달러. 우연이겠지만 하워드는 결국 ‘쌍’코피까지 본다. 왜 이렇게까지 <언컷 젬스>는 ‘2’로 도배가 되어 있을까?
농구에서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란 용어는 우리 팀의 이전 슛이 튕겨 나왔을 때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서 두 번째 공격 기회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계속 따라가는 하워드의 일상이 바로 그런 셈이다. 인생에서 계속 골을 못 넣고 한탕의 기회를 손에 넣으려는 그의 발버둥은, 두 번째 기회라는 절박함과 악착같은 광기로 그를 몰아넣고 있다. 탐욕의 도시 뉴욕에서 하워드는 앞만 보는 사냥개처럼 욕망을 좇는다. 연극 무대에서 딸이 입으로 동전을 화수분처럼 뱉어내는(극적 연출이다) 모습을 보고 감탄하던 그다.
사프디 형제는 음악으로 대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전술을 편다. 관객은 착란이 올만큼 정신없다. 이것은 계속해서 전화나 대화 중에 방해를 받는 하워드의 심정과 일치한다. 즉 감독이 영화의 진행을 관객의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는 방식으로 짜서, 우리는 하워드처럼 계속 짜증이 나고 두통이 온다. OST를 맡은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다니엘 로파틴)은 감독의 플랜을 잘 수행했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 유대인 배우 아담 샌들러가 얼마나 가공할 배우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달갑지 않게도 골든 라즈베리가 꾸준히 사랑했던(후보 11회, 수상 3회) 배우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펀치 드렁크 러브>같은 작품은 예외였다. 그에겐 <언컷 젬스>가 ‘세컨드 찬스’인 셈이다.
<굿타임>에서 갈고닦은 내공으로 사프디 형제는 웅대하게 비상한다. 또다시 뉴욕이 그들의 혼돈의 놀이터가 되었고, 각종 하류 인생들의 투기장이 열린다. 전설적인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의 악명 높은 범죄를 정화했지만, 사프디 형제가 ‘깨진 유리창’이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절의 야생으로 이 도시를 돌려보낸다.
시기를 2012년으로 잡은 건 케빈 가넷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NBA의 슈퍼스타이자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팀 던컨의 라이벌(필자는 던컨을 더 좋아했긴 했다)이었고 화려한 쇼맨십의 소유자였다. 36세의 KG는 노장이 되었고 2012년 플레이오프는 마지막 불꽃이었다. 이는 몰릴 대로 몰린 하워드의 상태와 오버랩된다. KG에게는 의지할 마법적인 힘이 필요했다. 고대 로마에서 오팔은 힘의 상징이었다. 그는 다채로운 빛깔을 품은 블랙 오팔 원석에 홀렸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보석을 비추더니 그의 어린 시절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 광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기까지의 과정들도 스쳐지나간다. 명문구단 보스턴 셀틱스에서 빅3(폴 피어스, 레이알렌과 함께)를 구축해 2008년 마침내 우승반지를 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용도 전 같지 않고 동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 7차전까지 다다른 상황.
케빈 가넷이 하워드에게 장물로 맡긴 보스턴 08 반지는 실제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우승반지였다. 하워드가 원래 손가락에 끼고 있던 73 반지는 뉴욕 닉스의 마지막 우승반지(이 팀은 그 후 47년 동안 우승을 못하고 있다)였다. 두 개의 화양연화가 그의 두 손가락에 끼워진다.
사프디 형제의 세계에서 역사는 밤에 쓰인다. 허우적댈수록 수렁으로 빠져드는 영화 속 주인공들. 등쳐먹는 하루살이로 가까스로 버티는, 반지와 시계로 돌려막는 인생의 하워드. 물에 빠져 잃어버린 안경처럼 보이지 않는 앞날. 그의 보석상엔 불운이 중첩된다. 포개지는 악재가 관람자의 혼도 빼앗는다. 이때 보석상의 3중 구조도 긴장조성을 위해 유용하게 써먹게 된다. 이 영화의 세상 속 행운의 여신이 있다면 종극에 누구에게 ‘우주의 기운’을 몰아주는지 확인하자.
주인공과 동행한 우리의 심장이 힘차게 펌핑한다.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우리도 끌려 들어와 숨죽이고 7차전의 최종스코어에 몰입했다. 그토록 동분서주하던 하워드의 삶은 거대하게 휘젓는 야바위와도 같았다. 오팔은 힘의 상징 외에도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중세 베네치아에선 이것을 병자가 갖고 있으면 영롱하게 빛이 나고, 그가 죽으면 그 빛을 잃는다고 믿었다.
선글라스로 가려진 그의 얼굴. 그의 피와 등가 교환한 것들은 무엇인가. 백척간두에서 일장춘몽으로. 오팔이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국기는 가운데 별 모양이 있다.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의 국기에도 다윗의 별이 있다. 그리고 하워드의 피부를 관통하면 수많은 별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최후에 그가 느낀 환희는 찰나지만 집념의 보상이었을까? 아니면 공허의 카오스로 입장하는 벨이었을까?
‘황홀한 카오스의 우주 속으로. 박동을 가속시키는 야바위 인생.’
★★★★☆
텐더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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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에관한 해석은 소름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