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및 스포일러 주의] 가식적인 브로맨스 장사, 일명 ‘퀴어베이팅’에 관하여: 이렇게 사람 낚는 거 아닙니다

※ 이 글은 어디까지나 권상우 주연의 액션 영화 《히트맨》을 보고 난 직후, 해당 영화를 보면서 제일 불쾌했던 지점에 분노해 이를 지적하고자 쓴 글입니다. 그래서 뇌피셜과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가득 들어있으니 그냥 이런 개념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시면 좋겠고, 더 정확한 정보를 아신다면 저한테 알려주셔도 괜찮습니다. 세 줄 요약 정말 못하니까 세 줄 요약 보실 분은 그냥 창을 닫아주세요. 아니면 스스로 세 줄 요약을 해보는 습관을 길러봅시다. 욕설과 비하 표현이 포함되어 있지만 특정한 누군가를 비방하는 목적으로 쓰지 않았으며 (저도 지금 쓰면서 이게 뭔 소린가 싶은데, 보면 알게 됩니다) 영화 《독전》과 《안시성》, 《히트맨》의 내용을 언급하긴 하지만 핵심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 세 영화를 볼 계획이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낫겠다 싶으면, 역시 창을 닫고 다른 곳으로 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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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극장가에서는 남자 둘을 등장시킨 뒤,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애매한 감정선을 부여해 둘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려는 영화가 많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스크린 속의 한 남자가 그 옆의 동성 동료를 각별히 아낀다는 묘사를 꼭 연인들이 할 법한 언행으로 표현하거나, 꼬이고 꼬여가는 상황 끝에 갈등이나 고뇌에 휩싸인 남자 둘이서 서로를 보는 시선이 어딘가 야릇하거나 애틋하다더라 하는 식이다. ‘브로맨스(Bromance)’라는 건 바로 이러한 것이다. Brother와 Romance를 합친 단어의 형태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주로 ‘남성들 간의 진한 우정과 의리가 흡사 연인처럼 보일 때’를 가리킨다.
이러한 브로맨스 열기는 극장가의 유행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 만화, 소설과 같이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분야의 예술을 접한다면 꼭 한 번씩, 브로맨스 요소를 첨가한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나 그게 여성들을 주 소비층으로 겨냥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열기는 2010년대 초반에 바다 건너 영국 드라마 《셜록》 시즌 1을 통해 갑자기 튀어나와 인기를 끌더니,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같은 선구자도 있다는 거 안다. 단지 저 드라마가 본격적인 브로맨스 열기의 기폭제라는 걸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이 대목은 넘어가거나 정정해도 좋다) 이내 브로맨스 관계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왜 브로맨스가 2010년대의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강타하게 된 걸까?
사실 브로맨스라는 소재가 한국에서 떠오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인권운동과 인식 개선 캠페인으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식이 상당히 개선된 영미권, 유럽권 등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잘만 써먹던 ‘머니 코드’였지만, 동성결혼은커녕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종교계와 보수층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곤 하는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미지와의 조우’였던 것이다. 여기서도 보고 저기서도 보다 못해 극장에서도 보고 안방에서도 보느라 어떻게 맺어지고 흘러가고 매듭지어질 지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게 된 남녀관계가 아닌, 비슷하게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고 있지만 어디로 튀고 어디로 나갈지 예측이 잘 되지 않는 남남관계의 매력이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와, 성소수자들의 생태나 커뮤니티가 알려지고 그들의 법적 대우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미약하게나마 시작된 시기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남자들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이미 버디 무비가 증명했듯,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소재 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두 남자가 뜨거운 우정을 과시하는 관계에 왜 굳이 ‘로맨스’를 강조하는 신조어까지 붙이면서 다시 열광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로맨스가 핵심이다. 이전의 버디 무비에서는 우정이 아무리 친해져봤자 그게 형제애나 의리 정도로 강조되어 묘사되었고, 그 틈에는 ‘미묘함’이 낄 자리가 없었다. 쉽게 말해 단순한 호감이나 친근함을 넘어선,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낭만적인 감정같은 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단 뜻이다. 왜냐면 그 시절의 진정한 남자라면 무조건 여자만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켜야 하며, 같은 남자 앞에서 여자 앞에 선 것마냥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건 있어선 안되고, 동성연애는 사내답지 못한 새끼들이 눈에 띄지 않게 성관계를 갖다가 성병이나 옮기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이 대목을 반박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근데 그 시절에 브로맨스를 알아챈 사람이, 알아챘다고 어디다가 털어놓고 같이 이야기 할 공간이 존재했는가?)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이혼 상담 TV쇼가 더 재밌어 질 것이다. 동성 커플은 누가 누구한테 뭔 잘못을 했고 뭔 사고를 쳤는지 잠깐 보고 예측할 수가 없으니까.’ 라는 코미디언 빌 버의 농담이 나름 통하는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그동안의 오해와 편견이 틀렸다는 걸 알기 시작했으며, 그렇기에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마냥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역시 언제나 그랬듯, 보고 또 봤던 클리셰가 아니라 새롭고 참신한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여기서 말하는 클리셰는 무엇이고 참신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앞서 언급했지만 동성 관계는 이성 관계에 비해 예측이 힘들다는 게 제일 큰 매력이다. 번식 욕구라는 본능때문에 큰 문제 없이 어느 정도 감정이 쌓였다면 자기도 모르게 이성으로서 잘 보이려고 애를 쓰게 되는 남자와 여자와는 다르게, (남녀 간에 친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란 주제로 끝없이 싸워대는 이유가 바로 이것때문일 것이다) 남자와 남자 간에는 좀 더 솔직한 표현도 가능하다. 직설적으로 나가도 뭐라 안 하고, 호감을 갖고 배려해 줘도 딱히 수군거리지 않는다. 투닥거리며 싸워도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한 덕분에 관계에 대한 묘사도 다양하게 튀어나올 수 있다. 친밀하면 친밀한 대로 불꽃이 튀고, 경쟁하는 사이면 경쟁하기 때문에 불꽃이 튀고, 악연의 연속이어도 그것때문에 불꽃이 튀고, 애증을 오가는 사이여도 애증이라서 더더욱 불꽃이 튄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서 극적인 차이점이 보인다면 불꽃이 튀는 것 역시 극적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불꽃은 뭐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튈 지 갈피를 못잡게 하는 긴장감을 이야기에 부여해주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예상을 빗나간 참신한 전개를 지켜봤다는 통쾌함과 신선함을 선사한다. 두 남자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관계가 주는 이상야릇한 참신함에 빠진 사람들은 혹시 내가 놓친 게 있진 않을까 하면서 작품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하며 외친다. 이야, 예전에는 많이 나가봤자 존경하거나 의리가 넘치는 사이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레시피가 다양했다니! 이렇게 보니 당연한 일인 건지도 모르겠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눈이 돌아가는 법이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에 대한 애정도를 자주 표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빈도는 비슷해도 애정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인 작품 홍보(속칭 ‘영업’)를 하는 팬은 여성 팬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러한 여성 팬들이 한 작품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주로 무엇이냐면, 바로 ‘두 캐릭터 사이의 각별한 관계’다. 그래서 남자들간의 우정은 그들을 끌어들이기에 최적인 미끼 상품이라 볼 수 있다. 여자가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겠는가? 바로 그런 점을 노려서 다가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브로맨스 관계는 곧 둘 사이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하는 감정 역시 유발한다. 그렇기에 그 둘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자신의 방식(팬픽션같은 2차 창작)으로 설명하려는 팬들도 양산하게 된다. 그러니까 브로맨스는 장기적으로 뽑아먹을 수 있는 활로도 개척하는 선순환 역할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브로맨스는 빠른 속도로 한국의 대중문화계에 스며들어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도 사람들이 브로맨스, 브로맨스 하다 보니까 생긴 거 같은데, 브로맨스를 무슨 쓰기만 하면 무조건 흥행하는 머니 코드로 아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다는 것이다. 거의없다라는 유튜버 말마따나 남자 둘이서 맥락없이 촉촉한 눈망울로 서로를 야시꾸리하게 노려보고, 섹시한 척 하는 목소리로 싸구려 대사를 치기만 하면 불꽃이 튈 거라고 믿는 사람들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불길함과 불쾌감만 제공하는 유사 브로맨스 관계, 그리고 그 피상적인 관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걸 제외한 나머지 기본 요소들도 중구난방으로 변질된 작품들이 스멀스멀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런 현상을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퀴어 코드로 시청자를 ‘낚아버리는’ 연출을 남발하다가 막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얘네는 ‘너네가 상상하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찝찝한 끝맺음이라고 보면 되는데, 쉽게 말해 성인용 동인지에서 두 여자 캐릭터가 대놓고 백합물 냄새를 풍기는 언행으로 분위기를 잔뜩 잡았다가, 막상 베드신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남자 캐릭터 한 명이 난입해 두 여자 캐릭터와 사이좋게 잠자리를 가진다는 전개를 생각하면 된다. “(남자 캐릭터 이름)의 자지 굉장해요요옷” 같은 싸구려 대사를 백합 커플 둘 중 한 명이 하는 건 덤이고 말이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라 미안하다. 근데 지금 내 머릿속에는 퀴어베이팅이란 낯선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게 도무지 안 떠오르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더 좋은 설명이 있으면 알려주면 감사하겠다.)
뭐 브로맨스 관계나 백합물에서 3P로 변질되는 전개나 보는 사람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때리는 요소란 건 똑같다. 진짜 문제는 보통 이런 전개를 앞세우게 되면, 브로맨스 관계는 작품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브로맨스를 설명했을 때 ‘모든 게 잘 풀렸을 때의 긍정적인 효과’만 주구장창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브로맨스 이전에 시나리오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나쁜 이야기에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언을 상기하자.) 브로맨스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것을 못보게 되면, 정작 진짜로 신경을 써야 하는 이야기의 질과, 복선 회수 능력과, 캐릭터의 일관성은 (잘못 들어간 유사 관계 하나때문에) 모조리 무너지게 된다. 이야기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야기의 안 좋은 요소만 집중해서 보라고 스스로 떠벌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복선 회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작가가 무책임한 사람이라 인정하는 것과 똑같다.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몰입감을 깨버리고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보다 말고 갑자기 ‘이것은 급조한 이야기다’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못난 게 자꾸만 보이는데, 더 좋은 작품이 널리고 널린 상황에서 불쾌감만 잔뜩 느낀 채 여기에 집중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영화 《독전》과 《안시성》, 그리고 《히트맨》의 브로맨스는 셋 다 같은 방식으로 불쾌하다. (앞의 두 작품은 거의없다라는 유튜버가 직접 퀴어 베이팅 요소를 지적한 작품이다. 둘 다 리뷰 영상이 있으니 보고 싶으면 봐도 된다) 세 작품은 브로맨스를 잘못 이해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여럿 있는데, 첫 번째로는 플롯에 적힌 구체적인 브로맨스 묘사를 빼버려도 작품의 전개에는 지장이 없고, 오히려 빼는 것이 더 좋았을 수준의 브로맨스에 목을 매버렸단 것이다. 또 왜 브로맨스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부족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려 하는데, 연애 감정이야 원체 맥락없는 감정이니 어느 날 갑자기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처리해도 대충 넘어가주지만, 브로맨스는 앞서 말했듯 연애 감정이 아니기에 첫 등장 장면을 설명과 맥락없이 처리했다가는 앞으로 보여주는 관계 묘사에 통 집중을 못하게 된다! 남자 둘이서 브로맨스를 보여주는데 ‘이 새끼들 갑자기 왜 저렇게 오글거리는 짓을 하지?’란 생각이 드는 순간, 첫 단추를 잘못 잠가도 한참 잘못 잠근 것이다.
두 번째, 브로맨스를 묘사하는 수준도 그닥 높진 않다. 셋 다 서로를 바라보는 강렬한 눈빛 연기와, 둘 사이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감 조성용 상황이 있긴 하다. 그런데 질이 떨어진다. 앞선 두 작품은 그냥 철부지가 아이돌 보고 찍찍 써버린 BL 팬픽에서나 나올 법한 상투적인 묘사뿐이고, 뒤의 한 작품은 묘사라고 인정하기도 싫은 욕설과 성추행, 그리고 되도 않는 펠라치오 드립을 관객들 눈에다가 밀어넣어 버린다. (이 영화는 남자가 남자 성기를 만지는 성추행으로 웃기려 든다! 그 성추행 개그가 나올 때마다 너무 재미가 없고 한심해서 정색했다) 덕분에 눈과 귀를 제대로 버려야 했다. 남잔데 누가봐도 청초한 여성의 모습을 암시하는 복장과 ‘너 나 없으면 안되잖니’ 란 뻔한 개수작 한 마디,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펠라치오 개그에 한숨부터 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자신만의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주는지를 보러 온 거지, 기성세대의 편견으로 가득찬 성 역할을 성별만 바꿔서 수행하는 기계를 보러온 게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세 번째, 브로맨스 관계를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다니다시피 한다. 그리고 끌려다니는 나머지 한 쪽은 관계를 만드는데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서 무력하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남녀 간의 연애도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갖을 지언정, 다른 쪽이 아무 것도 못하고 끌려다니는 걸 건강한 관계라 보진 않는다. 그러는 개새끼가 있다면 당장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하라고 경찰서에서 현수막에다 적어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매력을 부여하지 않고 기능만 부여한 캐릭터들의 관계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관객들 눈에다 쑤셔박는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다니, 제정신인가?
물론 브로맨스를 다루는 모든 작품들이 퀴어 베이팅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퀴어 코드가 담겨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퀴어 영화가 아니니까. 그 《셜록》도 시즌이 진행되면서 퀴어 베이팅 논란이 생겼다. 그렇지만 탄탄한 시나리오 위에서 끈끈하고 굳건한 관계를 묘사하다가 퀴어 코드를 건드리게 된 경우와, 대놓고 퀴어 코드만 넣으면 여성팬들이 열광하겠지 하면서 작품의 다른 중요한 것들은 뒤로 치워버린 경우는 퀄리티가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브로맨스에 대한 이해 없이 성공한 경우의 효과만 바라보며 대충 겉모습만 대입시켜서 만든 브로맨스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퀴어 베이팅이며, 가식적인 브로맨스 장사다. 그리고 그 퀴어 베이팅은 몰이해를 눈치챈 관객들에게 낚였다는 짜증과 불쾌감만 선사할 뿐이다. 그러니 제발, 올해는 ‘브로맨스’ 관계에 대한 심오한 통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브로맨스를 무슨 철부지 팬픽작가처럼 바라보는 영화는 없었으면 한다. 동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면, 퀴어 영화를 만들어라. 안 만들 거라고? 그럼 그냥 때려쳐라. 그딴 식으로 돈 벌 궁리나 하니까 한국 영화가 욕을 처먹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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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적는다. “그렇게 엮이는 남자 둘 사이에 ‘잘생긴’이라는 말은 왜 안 붙이시나?” 그러니까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하는 언급인가 본데, 내가 굳이 그 수식어를 앞에 붙이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단 잘생긴 사람들끼리 붙이려는 시도는 거의 본능 수준이기도 하고,
2. 설령 외모가 다소 떨어진다 쳐도 육체미나 지적 능력 등을 과시해 후광 효과를 입고 브로맨스 대열에 합류하는 배우나 캐릭터 역시 상당히 많으며,
3. 무엇보다 이 글은 브로맨스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하는 글이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조한 글 목록:
http://www.cft.or.kr/sub/?num=1106&part=SEEDS&NEEDS
http://ch.yes24.com/Article/View/32754
http://www.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16937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961
밀리어네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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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안 봤거든요. 근데 주연 둘이서 로맨스라도 찍는 줄 알았다는 평이 좀 있더군요.
3. 시류를 이용해 먹으려는 영화가 참 많아졌습니다. 그 시류가 왜 시류가 되었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도 히트맨은 아직 안봐서 어느 정돈진 모르겠는데,
천문은 본문에서 언급하신 완성도 차이겠죠,별로
불쾌하진 않았어요.브로맨스의 모범인 정도.

그리고 브로맨스가 꼭 야릇한 관계에서만 피어나는 게 아니에요. 《인셉션》이나 《강철비》, 《그린 북》, 《포드 V 페라리》같은 영화도 좋은 브로맨스 관계를 보여주는데 왜 굳이 연인같은 사이로만 묘사하려 드는 걸까요.


불한당은… 감독 인터뷰나 다른 리뷰들을 보면 퀴어물을 의도하고 만들어진 작품이라서 퀴어 베이팅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근데 모를 수도 있죠. 저도 영화 본 후에야 알았거든요. 좀 더 과감하게 갔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본문에 언급이 안 되어 있는 '천문'의 경우도 '둘 상의 끈끈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 건지 말씀하신 퀴어베이팅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브로맨스를 끌어다가 썼던데. 이 작품에서 브로맨스를 끌어 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순수하게) 궁금하네요~
(근데 다른 건 생각 좀 해봐야 할 거 같지만... 말씀하신 것중 '요새 이런 낙시스러운 설정'이 많기는 하다. 요건 확실히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