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초간단 리뷰
1. '블랙미러:밴더스내치'는 몇 달 전에 한 번 본 영화다. 이 영화는 잘 알려진대로 '인터랙티브'(쌍방향 소통) 영화다. N차 관람을 하지 않는 내 입장에서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 한 선택대로 도달한 결말이 끝이었다. 다시 되돌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최근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나서 재생을 했다. 그것은 "영화를 봐야겠다"는 준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뭐 볼 거 없나" 찾아보다가 재생한 것과 같은 심정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꽤 익숙한 결말에 도달했다. 그 결말에는 '되돌아가기'가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영화의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게임이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따라 다른 결말에 도달한다. 그 '다른 결말'에는 나름 미션이 있고 점수가 있다. 이 영화를 '플레이'하는 시청자 입장에서 해야 하는 미션은 "밴더스내치' 게임 평점 5점(만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2. 처음에는 '밴더스내치'라는 영화를 리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스러웠다. 만약 이 영화를 100명이 봤다고 가정하면 그 100명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내가 가이드를 했지만 영화를 보는 시청자는 다른 결말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게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리뷰하기가 훨씬 편하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를 '게임'으로 놓고 봐도 일반적인 게임과 다른 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랙티브라는 높은 자유도조차 사실 허상이었음이 드러난다(물론 이 모든 사실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알게 될 수도 있고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3. 일반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행위자)는 캐릭터(아바타)와 동일시 돼 플레이한다. 예를 들어 '배틀그라운드'를 한다면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실제로 온라인게임에서 사람의 외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은 캐릭터의 모양새다. 그러나 '밴더스내치'의 경우는 게임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플레이어(시청자)는 캐릭터(스테판)와 동일시되지 않고 캐릭터를 조종한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스테판을 조종하는 미지의 존재가 된다. 그리고 스테판의 망상은 "미지의 존재가 나를 조종하고 내 행동을 결정짓는다"는데서 온다. 이런 효과는 플레이어를 영화 속에 더 직접적으로 개입시키는 효과를 준다. 캐릭터의 행동을 결정짓지만 캐릭터 자신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플레이어는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채 영화에 개입하게 된다.
4. 여기에 이 영화에는 결정적인 대사가 하나 등장한다. 대사의 뜻만 적어보자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엄청난 자유도가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내가 만든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라는 의미다. '밴더스내치'는 자유도가 넓은 게임같은 영화지만 결국 여기서 5점 만점의 엔딩은 하나다.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영화 속 게임 '밴더스내치'가 5점 만점을 받아야 "이겼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그리고 5점 만점을 받아야 쿠키영상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이야기의 알고리즘은 다양한 선택지와 자유도를 보장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말'에 이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내가 몇 달 전 2.5점의 엔딩을 받고 한참 뒤 다시 플레이해서 5점 만점에 도달한 것도 "그때 완전히 결말짓지 못했다"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5점 만점도 보고 1점, 평점 불가도 봤으니 이제 다시는 플레이 안 할 계획이다.
5. '밴더스내치'가 영리한 점은 자신이 인터랙티브 무비임을 인지하고 그것을 가지고 논다는 점이다. 주인공 스테판(피온 화이트헤드)이 게임 프로그래머라는 점과 그가 가진 망상이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인터랙티브 장르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 이런 재미가 정점에 이르는 장면은 스테판과 플레이어(시청자)가 대화를 하는 대목이다. 이 말도 안되는 장면은 분명 영화에 등장한다. 선택을 잘 해야 이 장면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장면 때문에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 영화 중에서도 꽤 특이한 위치에 있다.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 무비의 양자택일보다 더 많은 자유도가 있고 그만큼 플레이어를 더 개입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매력을 알려면 여러 번 봐야 한다.
6.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은 정확히 '극장의 미래'다. 대형 프리미엄 TV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홈씨어터와 극장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스마트폰 역시 더 좋은 화질과 사운드, 고성능 AP로 고화질 동영상을 막힘없이 재생한다. 디바이스 성능이 발달하면서 OTT가 극장을 대체하게 된다면, '밴더스내치'와 같은 인터랙티브 무비는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밴더스내치'는 분명 미래의 영화다. 그러나 영화의 미래가 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이것은 게임을 접목한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시청자)에게 체험의 범위를 확장시켰지만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는 좁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장르로 미래에도 쭉 이어질 것이다.
7. 결론: 만들기 어려운 장르인 것은 분명하다. 넷플릭스는 이것 외에 '인터랙티브 예능'은 '당신과 자연의 대결'을 내놨다. 베어그릴스의 행동을 시청자가 결정짓는 것이다. '인터랙티브'의 특징을 놓고 본다면 '당신과 자연의 대결'보다 '밴더스내치'가 더 재미있다. 다만 게임 평점 5점의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꽤 불편한 상황 몇 가지를 감내해야 한다. 이거 의외로 터프한 게임이다.
추신) 이 이야기는 '스포일러'의 개념이 없다. 내가 이 이야기의 결말을 까발린다고 해도 독자가 그 결말에 온전히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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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시도이긴 한데.. 즐기는 입장에선 번거롭고, 만드는 입장에선 몇배로 고생이라 이런게 자주 나올 것 같진 않아요.
게임쪽하곤 잘 맞죠. 특히 롤플레잉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