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스포] '그것2' 초간단 리뷰
1. 최근 본 몇 개의 한국 공포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공포영화도 돈만 많으면 잘 나올 수 있겠다"라는 기대가 생겼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공포영화'에 비하면 최근 영화들은 그래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를 갖추고 있다(대놓고 밝히자면 '암전'을 두고 하는 얘기다). 공포영화뿐 아니라 많은 영화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돈이 없고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엉망으로 나오곤 한다. 그럴때면 좀비영화나 오컬트영화 등 마이너풍의 영화에도 돈을 때려붓는 헐리우드가 부러워진다. 물론 그네들도 '돈 될만한 영화'에 돈을 때려붓는다. 스티븐 킹의 '그것'은 분명 돈이 되는 영화다. 돈이 되는 이야기를 돈이 되는 스타일로 만들었다. 어린이들이 등장한 전편에 이어서 '그것2' 역시 아주 돈이 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2. '그것2'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이들과 페니와이즈(빌 스카스가드)의 싸움 이후 27년이 지나 저주가 돌아오고 성인이 된 그때 그 아이들이 다시 한 번 페니와이즈와 싸우는 이야기다. 그러니깐 어른이 된 아이들은 조금 더 스케일이 큰 사고를 한다. 그리고 한 번 패배를 맛 본 페니와이즈는 더 이를 갈고 등장한다. '그것2'의 싸움은 이전보다 더 격렬해질 것이라는 암시다. 그것을 보여주려는 듯 영화는 곳곳에 스케일 큰 공포이미지들이 향연을 이룬다. 공포심 역시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면서 점점 커진 모양이다. 러닝타임이 169분에 이르는 것은 아이들 각자가 가진 트라우마를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이미지화 하느라 소요된 시간이다. 그걸 2시간50분동안 꼼꼼하게 보여주겠다는 각오는 꽤 악랄하게 느껴진다.
3. 트라우마를 하나하나 보여준다는 것, 이 영화는 유년기를 지나 어른으로 성장하는 일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지나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아이들은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트라우마는 비현실적이고 개인적일 수 있다. 다른 경우에는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집단적일 수도 있다. '벌새'의 은희는 얼굴에 생긴 큰 흉터와 성수대교 붕괴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개인적인 것,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은희를 감싸고 있다. '그것'의 아이들 역시 개인적임과 동시에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은 27년만에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선다. 언젠가는 은희도, 트라우마를 안은 모두도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4. 나는 '그것'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공포의 근원에 대해 잘 접근한 영화"라고 서술했다. 페니와이즈 자체가 공포를 먹고 사는 캐릭터다 보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2'의 핵심은 '그것'과 동일하다(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것2'는 공포의 실체를 좀 더 구체화시킨다. 그것은 유년기의 트라우마임과 동시에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생명체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3'에서도 알 수 있지만 외계인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냉전시대 불안의 산물이다. 적국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외계인이나 미지의 괴물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적이 명확하지 않던 테러리즘의 시대에 미지의 괴물은 실체조차 불명확했고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클로버필드'처럼). '기묘한 이야기3'과 '체르노빌', '그것2'는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가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기묘한 이야기3'을 쓸 때도 느꼈지만 나는 이것이 매우 혼란스럽다. 이들 작품은 적이 명확했던 냉전시대에 대한 추억인가, 아니면 냉전시대를 그리던 그 시절 영화에 대한 추억인가.
5. '그것2'에 대한 영화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것은 전편에 비하면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이 많이 줄었다. 어쩌면 한결 대중적이고 화려하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대로 영화의 긴 러닝타임은 인물들 각자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시각화하는데 할해하고 있다. 즉 무서운 이미지와 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리치(빌 헤이더)와 에디(제임스 랜슨)를 중심으로 코미디까지 해대는 걸 보면 확실히 '그것2'는 전편보다 밝아보이려는 영화가 분명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2'에 접근하는게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미지는 좀 더 기괴하고 스케일이 커졌다. 그리고 밝은 '그것2'를 접하기 위해서는 어둡고 칙칙한 '그것1'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건 함정이다(!).
6. 이 영화의 마무리 역시 공포영화의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있다. 다음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떨떠름한 마무리 대신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추억은 간직한 어른들의 일상으로 마무리된다.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나면서 코 끝이 찡해야 하지만 그게 잘 되진 않는다. 이것은 미국 어른들의 유년시절 이야기이며, 우리에게는 '벌새'처럼 극복되지 않을 트라우마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9.11 테러를 겪은 세대들은 언젠가 '벌새'처럼 그 트라우마를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가 된다면 '기묘한 이야기'나 '그것'처럼 8090의 트라우마는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있을 것이다.
7. 결론: '그것2'는 전편보다는 한결 명랑하고 대중적인 영화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이미지는 더 강렬하고 꼼꼼하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그것'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특히 곤충(거미, 바퀴벌레, 곱등이 등)에 대한 혐오가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마주하기 전에 심호흡 크게 해야 할 것이다. ...아, 2시간50분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추신) 카메오 보는 맛이 쏠쏠하다. 특히 자비에 돌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 그의 첫 등장씬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듣자하니 '마터스:천국을 보는 눈'에 단역으로 출연할 당시에도 그랬다고 한다. 마음에 든다. 스티븐 킹도 카메오로 등장한다. 그 분 카메오 등장씬도 꽤 웃기다. ...공포영화 주제에 왜 웃긴거지?
추천인 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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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런닝타임이 길어서 고민중이었는데 개봉일 보러가야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내일모래지만 기대됩니다^_^

말씀하신대로 냉전시대 감성의 영화가 요즘 레트로풍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아요 ㅋㅋㅋ 굳이 확대해석하자면 불안한 세계정세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영화 기대되네요 ㅎㅎ

아.. 곤충 나열하신 것들이 하필 제가 괴물이라 여기는 제일 혐오하는 것들이네요.. ㄷㄷㄷ
그나저나 몇 개 빠졌네요.... 지네, 돈벌레, 거머리
야한 장면 나오나요?? 기대되네요 ㅎㅎ

아... 꼭 개봉날 보려고 여름내내 개봉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상영시간대가 너무 잔혹해요.. 퇴근시간대에 딱 걸려서 볼 수 있는게 밤 11시반 것밖에 없네요ㅠㅠ 그럼 새벽 2시반에 끝난다는건데... 무서워서 집에 어떻게 걸어가 흐어엉ㅠㅠ 담날 일상생활 불가능... 속상해서 미쵸요.
초반 촬영장 장면에 나오는 감독도 유명한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이름 생각 안나은데...
무시에티 감독도 카메오로 잠깐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