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기생충' 속 박사장은 왜 하필 IT기업 CEO인가
리뷰를 쓰면서도 언급했지만 박사장의 직업이 왜 하필이면 'IT기업 대표이사'인지가 궁금했다. 한국영화에서 재벌을 묘사할 때 보통 재벌가 2~3세 정도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게 묘사하기 쉽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보다 조금 특별하고, 그래서 더 난해한 'IT기업 CEO'로 캐릭터를 잡는다.
이 캐릭터가 특별한 이유, IT기업이라면 보통 90년대 중후반 벤처열풍 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터넷 기업들 살아남은 곳이다. 군사정권 시절 정치권의 압박과 탄압 속에서 기업을 일구기 위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짓도 서슴치 않는 과거 재벌총수들과는 다른 환경이다. 그들은 우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일 시간이 없다. 생존을 위한 루틴을 만들어야 했고 오직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재벌가 2~3세처럼 안하무인에 느긋한 갑질 캐릭터보다는 자기 세계와 자기영역이 확실한 캐릭터가 영화에 필요했다.
박사장이 "나는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라고 하는 말은 이런 그의 과거를 보여준다. 네이버의 창업자 이해진의 경우 삼성SDS의 직원 출신이다(네이버는 사내벤처로 탄생한 기업이다). 당시 IT기업 중에서는 이런 형태로 탄생한 기업이 많다. 박사장은 사내벤처 출신일 수 있고 아니면 아이디어와 열정만 많은 컴공생일 수 있다. 어쨌든 그의 시작은 '흙수저'까진 아니고 대충 쇠수저나 스댕수저 정도 될 것이다. 그 얘기인 즉슨 IT기업 CEO는 '자수성가형 CEO'임을 의미한다. 어떤 직종이건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기 것을 잃는 걸 특히 더 싫어한다. 1세대 재벌총수들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짓도 서슴치 않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자기 재산과 회사를 지키려고(물론 잘못된 방법이다). 그렇다면 '선을 넘는 사람'은 자기 루틴을 해치는 사람임과 동시에 자기 영역을 침범한 사람도 해당된다.
다만 IT기업은 '경영승계'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창업자라도 기업의 경영자로 남는 기간이 그리 길진 않은 편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도 지금은 해외사업 담당으로 나가있고 김정주 NXC 대표도 주주로서 권리만 행사할 뿐 넥슨의 사업에 관여하진 않는다. 제 아무리 주력사업 분야라도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창업자는 뒤로 빠지기 마련이다. 1세대 벤처기업인들이 세운 회사들은 현재 대부분 전문경영인들이 사업을 책임진다.
박사장이 창업자인지 전문경영인인지 확실치는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봉준호 감독이 IT기업의 CEO를 일반 제조업 CEO와 똑같이 해석해 창업자가 끝까지 회사를 지키는 것으로 설정했거나 이미 대형 IT기업을 일군 박사장이 재창업해 성공을 거둔 경우다. 후자의 경우라면 박사장은 이전 회사의 급여와 지분으로 이미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재창업한 현재의 회사를 사업궤도에 올려둔, 아주 능력있는 경영인인 것이다. 박사장의 재산규모에 대해 등장한 것은 집과 벤츠 밖에 없다. 집은 위치를 보아하니 성북동 쪽 같다(영화 속 대사들로 유추함). 거기 살 정도라면 보통 재벌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글을 딱히 마무리 지을 말은 없다. 이 글은 "박사장은 왜 하필 IT기업 CEO일까?"에 대해 나름 생각한 내용들이다.
추신) 스타라이브톡에서 어느 팬이 '박사장의 기생충이라도 되고 싶다'고 플랜카드를 들고 왔다던데....부자들은 뱃속에 기생충 안 살아요(동심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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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벤츠와 랜드로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