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Godsend. 2013] 감상기 - 스포일러O

[신의 선물]은 김기덕씨가 각본을 쓰고, 문시현씨가 각색 /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나쁜남자] 이래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해 익히 들었기에 영화 보는 내내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네요. 여전히 자극적이긴 하지만 무언가 많이 순화되고 절제되어 있어 담백한 느낌마저 들 정도입니다. 허나 김기덕씨가 감독을 맡았으면 꿈도 희망도 없는 잔인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다소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입니다. 눈에 띄는 것만 해도 꽤 많습니다. 우연히 병원에서 알게 된 생면부지의 미혼모에게 대리모로서가 아닌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를 낳아서 달라고 부탁하는 승연의 모습, 화가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는 비현실성, 여름날 차 안에 하루종일 방치되었음에도 멀쩡한 출생 직후의 아기, 다리에 총을 맞고도 아기를 보는 순간 다 용서하는 사냥꾼 등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습니다. 물론 모든 시나리오가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필요는 없습니다. 매 순간 장면이 바뀌는 영화에서는 시나리오가 약간 부실해도 장면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의 선물]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조화롭지 못합니다.
두 주인공 중 '승연' 역의 이은우씨는 이혼 통보를 기점으로 변하는 캐릭터를 소름끼칠 정도로 잘 표현한 반면, 영화보다 일상에 가까운 톤으로 대사를 구사한 때문인지 '소영'역의 전수진씨의 연기를 다소 설익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썩 공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후반부 아기를 낳을지 말지에 대해 둘이 대립하는 장면에서 논리적으로는 소영에, 심정적으로는 승연에 공감하게 되는 인지부조화를 겪었습니다.
더불어 의도된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냥꾼들의 연기도 위화감이 듭니다. 소영이 다소 일반인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면, 사냥꾼들은 영화라기보다 연극에 가까운 발성과 감정 표현을 보여줍니다. 누가봐도 연기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장된 연기죠. 한 쪽은 너무 밋밋해서 문제고 다른 한 쪽은 너무 과해서 문제인 셈입니다.
이렇듯 사냥꾼들에 대해 관객은 쉽게 몰입할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냥꾼들이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 즉 강간이라든지 유혈 사태로 대변되는 폭력성 등을 나타내는 장치라는 점입니다. 사냥꾼을 의도적으로 관객의 눈 밖에 나게 하고, 각 요소들의 강도를 현저히 낮춤으로써 최대한 김기덕 스타일을 부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덕분에 김기덕 각본임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스럽지 않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시나리오가 비논리적이고 배우들의 연기가 거슬립니다만 '화가'라는 캐릭터는 흥미롭습니다. '화가'는 작품 내내 미묘한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산 중에서 텐트 치고 혼자 사는 남자와 텐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집에 사는 여자 둘. 관객들은 과연 언제 저 화가가 야수로 돌변할지 자기도 모르는 새 기대하게 됩니다. 다른 영화면 몰라도 이 영화는 '김기덕 각본'인 영화니까요. 이러한 관객들의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합니다. 화가는 두 여자의 옆에서 맴돌고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중반 이후에는 아예 사라져 버리죠. 그의 언행과 갑자기 사라지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마 태아와 승연간의 초자연적 유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가가 사라지고 극은 점차 후반부로 접어듭니다. 동시에 극적 긴장감은 약간 하강하게 됩니다. 영화가 사건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주제의식을 나타내기 위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등수가 정해진 레이스를 보는 기분이라 썩 몰입되지는 않더군요.
이상 김기덕 각본, 문시현 감독의 영화 [신의 선물] 감상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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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 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을텐데 말이죠.
말씀하신대로 아기랑 뭔가 연관관계가 분명 있어 보이는데 그게 뭔지 명쾌하게 알 수가 없어 좀 답답하네요ㅎㅎ
저는 화가 캐릭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아기랑 관계가 있을거란 예상은 가는데,
누굴 기다려요란 대사도 설명이 안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