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SS 장교. 키 193㎝, 체중 100kg이 넘는 덩치에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완전 인간흉기급 외모를 가졌으며 활약까지 대단해 만화 캐릭터가 아닌 실존인물이란게 믿기 힘든 인간이다. 한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데다 뛰어난 완력과 실행력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돌프 히틀러도 그를 특별히 신임해 결국 SS내에 편재된 특수부대의 지휘관이 된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위의 말이며 행적을 보면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대악당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민간인이나 포로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상대에게는 상당히 친절했다고 한다. 물론 슈츠슈타펠이라고 모두 전범 행위를 한 게 아니다
1908년 6월 12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10대 소년 시절부터 15번의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다고 한다. 10번째에는 펜싱 칼을 들고 싸웠는데 얼굴의 흉터는 그때 생겼다고. 슈코르체니는 사실 대학 결투클럽의 회원이었고 모든 결투는 합의에 의한 결투였다. 결투후에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존재한다. 당시까지도 독일에서는 결투를 남자의 미덕으로 여겼고 얼굴에 상처가 몇 개 있는 것 정도는 오히려 멋으로 치부되었다.
1920년대에 빈 공대 건축학과를 다녔고 이때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복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졸업한 후에는 건축업에 종사했다. 원래 공돌이라 그런지, 자서전의 문장도 짧고 이해가 쉬운 편.
1931년에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가입했으며 곧 이어 돌격대에 가입했다. 1938년에 안슐루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조종사 면허가 있어서 30세의 나이로 독일 공군에 입대했으나 나이가 많은 데다가 키가 너무 커서 조종사 지원에서는 탈락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때 공수훈련 등의 기초를 배운 것으로 되어있기도 하다. 그 이후 사무실에 처박히기 싫어서 무장친위대에 지원하여 소위로 임관하고, 다스 라이히 사단 소속으로 서부 전격전 및 발칸, 러시아 등 동부전선에서 싸웠는데 탁월한 전공으로 인해 부상을 입자 본토로 후송됨과 동시에 철십자 훈장이 수여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히틀러의 귀에 들어가게되자 때마침 히틀러가 계획중이던 모종의 작전에 발탁되어 부름을 받는다. 이때 계급이 대위.
그리고 전설이 시작된다.
다음이 이 인간이 참여한 작전과 활약상을 모아둔것
떡갈나무 작전
히틀러의 친구이자 우방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파시스트 대평의회의 결탁에 의해 1943년 7월 25일 실각당하여 이탈리아 어딘가에 연금 중이었다. 히틀러는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무솔리니가 힘없이 갇혀있는 것이 싫었고 슈코르체니 대위가 그 구출작전의 지휘관이 된다. 계속 옮겨지는 무솔리니의 위치를 추적한 끝에 그 해 9월 12일, 슈코르체니는 자신이 거느린 SS 소속의 프리덴탈 특수부대와 공군 공수사단에서 차출한 병력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이끌고 무솔리니가 연금된 아펜니노 산맥 골짜기의 그란사소(Gran Sasso) 호텔에 글라이더를 타고 돌입, 무솔리니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부대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슈코르체니 휘하의 특수부대는 이탈리아에 올 때부터 전원 공군 공수부대원으로 위장했으며, 슈코르체니를 지원하기 위해 아래쪽 골짜기와 케이블카 정거장을 장악한 지원부대는 진짜 공군 공수부대였다.
그렇게 빠져나온 무솔리니는 히틀러에 의해 괴뢰 정부 살로 공화국의 수장이 되었으며 슈코르체니는 소령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기사 철십자 훈장과 친위대 해골 순금반지, 금박 독수리 담배갑을 수여 받으며 연합국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기사의 도약 작전
1944년 5월 25일 유고슬라비아에서 파르티잔의 지휘소 한복판에 있던 티토를 생포하러 강하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실패하고 만다.
한때 슈코르체니의 부대는 티토에게 부상을 입히면서 5분 거리에 도달하기까지 했으나 티토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거물인지라 결국 수적으로 우세한 파르티잔들과 부비트랩들을 이용해 지연전을 펼치며 자신은 숨겨놓은 비상 열차로 도피한다. 이 작전에 투입된 SS 공수부대는 슈코르체니 등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전원 각종 전과로 인해 계급과 서훈이 박탈된 일종의 형벌부대원들이었으며 작전 성과에 따라 계급과 서훈을 전부 회복시켜 주겠다는 약속하에 투입된 것이었다. 비록 티토를 잡지는 못했으나 투입된 대원 다수가 전사 혹은 부상당할 만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를 코앞까지 몰아붙인 데다 그의 육군 원수 예복 등 상징적인 노획품 등을 획득한 것에 만족한 히틀러가 이들의 계급과 서훈을 모두 회복시켜 주었다.[3]
단, 슈코르체니는 작전의 입안과 실행은 주도했으나 무솔리니 때처럼 직접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당시 아직까지 체포되지 않고 도망치던 가담자 대부분을 36시간 만에 체포했으며 프롬과 회프너, 비츨레벤 등 연루된 육군 장군들을 여럿 사로잡은 것으로 유명. 당시 주변에 있던 쿠데타 측에서 동원한 육군 장병들과 프롬 휘하 장교들도 슈코르체니가 나타나자 모두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 프롬은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반쿠데타측으로 변절해 쿠데타 측을 즉결처형하거나 체포하던 중이기 때문에 슈코르체니에게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쿠데타 측에서 동원한 장병과 장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쿠데타 측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오히려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소집되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더할 나위도 없다.
자서전에서 슈코르체니는 이때 자신의 주된 활동이 쿠데타가 진압된 후에 국방부 건물에 들어앉아서 30시간 동안 도장만 찍은 것이라고 기술했다. 여기저기서 불러 대는 바람에 왔다 갔다 이동만 했을 뿐, 유명인사들 중 누굴 체포하거나 했다는 주장은 전혀 없다. 국방부 청사에 도착한 것도 슈타우펜베르크가 프롬에게 총살된 후였고, 프롬이 체포되는 것도 목격했다.
판처파우스트 작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그때까지 동맹이었던 독일을 배신하고 연합군에 항복하려는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의 아들 호르티 니콜라스를 납치하여 인질로 세워 항복을 막고 호르티 미클로시를 섭정에서 사임시켰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 했다면 헝가리에 주둔해 있는 독일군이 고립되어 궤멸됐을 것이다.
이 작전에 성공하여 독일 십자장 금장과 중령 진급을 상으로 받았다.
그라이프 작전
아르덴 대공세때는 1개 기갑여단을 연합군 차량으로 위장하고 도색하여 진격하는 작전을 입안-실행하기도 한다. 특히, 영어가 가능하고 미군의 관습을 배운 병력들이 미제 장비를 착용하고 미제 지프에 올라 미군진영을 온통 들쑤시고 다녔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도로 표지판을 정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아 연대 하나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거나 멀쩡한 평지에 테이프를 둘러치고 지뢰밭 표시를 해서 포병대의 발을 묶는다거나 지프에 미군 복장으로 다니면서 미군이 포위당했다는 허위소문을 퍼뜨려 연대급 병력을 철수시킨 것은 물론 체포당하자 아이젠하워를 암살하러 왔다고 허위 진술을 해서 혼란을 가중시킨 대원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 벌지 대전투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때 하도 혼이 난 미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비슷한 작전을 두려워해야 했다.
레마겐 철교 폭파작전
라인강에 걸쳐있는 레마겐의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작전을 실행하였으나, 강 일부가 얼어버려 실패하였다.
....................... 알겠는데 영화 수다란에 소개하는 이유가 뭔가요?????????? 라고 물어보실 분들이 있을텐데........
참고로 이 인간을 롤모델로 삼아서 만들어진 영화가 꽤 있는데요
하나는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나머지 하나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입니다.
마초적인 이미지와 물불가리지 않고 목숨걸고 싸우는 모습이 당시 냉전시절과 90년대 마초적인 이미지에 액션스타들과 잘 어울려서 이 인간을 롤모델로 한 영화가 꽤 나왔다고 합니다.
출처는 나무위키(그래서 정확성이 크진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포스가 여전하더라구요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