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열려라 비디오'에서 소개한 네 편의 호러영화와 개인적 추억담

이 책을 알면 참 연식 드러나는 것이긴 한데 예전 비디오 대여시장이 한창이던 시절에 양질의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모인 몇몇 영화 전문가(맞나?) 들이 만든 ‘열려라 비디오’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인도영화를 파지만 90년 말까지만 해도 저는 호러 마니아였습니다. 뭐 지금도 호러영화 좋아합니다만 ㅋ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서울대를 갔겠지만 당시부터 소수(!)의 영화를 덕질하던 저는 양질의 공포영화를 보고자 여름방학 기간동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열려라 비디오’라는 책을 파기 시작해서 별점이 높은 영화들을 수첩에 적어두고 하나씩 찾아다녔습니다. 지금 들려드리는 건 그 이야기입니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야 《나이트메어》로 유명하지만 그의 초기작들 SKC에서 나왔다는 《왼편 마지막 집》이나 《공포의 휴가길》 같은 영화는 국내 라이센스 판은 본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누가 원판을 구해줘서 본 게 유일하게 봤던 거고 전 재밌게 봤습니다.
각설하고 이번 BiFan에서 소개되는 3×3 EYES 호러감독 특별전 작품 중 98년 개정되어 나온 ‘열려라 비디오 10,000’에서 소개된 영화 네 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순서는 가나다순)
The Hills Have Eyes
직역을하면 '언덕에 눈이 있다' 정도 되려나요. 너무 직설적이고 단순해서 마치 느낌이 만두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뚜껑에 붙었다. 급의 느낌을 줍니다. 물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의 은유겠죠.
정말 민폐 끼치고 다녔던 호러둥이 시절에 모 공포영화 동호회 상영회 때 자막 없이 봤는데 뭐 자막 없어도 대충 알아 볼 수 있는 영화긴 합니다. 국내 출시제목이 ‘공포의 휴가길’인 것처럼 정말 휴가를 가려던 가족이 길을 잘못 들어 다 ㅈ된다는 내용입니다. (비속어 써서 죄송하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
미국이 땅은 넓지만 그 모든 공간이 인간이 사는 곳은 아니겠죠. 특히 몇몇 지역에서는 핵실험이 자행되기도 했었고요. 웨스 크레이븐이 이 영화를 만들던 게 1977년이라는 걸 가정하면 뭐 그런 음모이론에서 영화가 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당시 저는 재밌게 봤는데 같이 봤던 다른 분들의 분위기는 ‘뭔가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시시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한정된 예산으로 나름 쫄깃한 슬래셔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보신 분들은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ㅠ.ㅜ
이 영화가 그런 영화들의 원조격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더라도 《데드 캠프》 같은 영화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리고 2006년도엔 《엑스텐션》의 알렉상드르 아야가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 했지요. 전 그 영화도 볼 만 했습니다.
Nightmare on Elm Street
이 영화를 본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막 호러둥이로의 인생을 시작하던 때 명작 호러부터 섭렵하면서 나름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던 때였거든요.
이 영화가 호러 걸작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악몽'이라는 게 뭔지를 비주얼적으로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되고요.
이상하게 제 호러 인생에 있어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분기점을 많이 만들어 줬습니다. 웃지 못할 사건 하나도 있는데 그건 굳이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잠시 추억에 잠겨 오프 더 레코드로 하게 되는 그런 날이 오긴 하겠지만요 ㅋ
다시 《나이트메어》로 돌아와서,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아무 근거 없이 까면 화가 납니다. 마치 인도영화 리뷰에서 '제가 인도영화를 싫어하는데요'로 운을 떼는 리뷰를 보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겠죠.
우리 학교 영어 선생 중에 영화를 많이 보는 선생이 있는데 독해 수업을 진행하다가 'nightmare'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고 '이런 영화는 보지 말라'고 한 겁니다. 사실 많은 호러영화들이 그런 논쟁에 올라가게 됩니다. 솔직히 저도 슬래셔물은 그닥 안 좋아합니다. 살인마의 잔인한 살육 속에서 생존하는 이의 사투를 그린 새디스틱한 그런 영화들도 있긴 합니다만 《나이트메어》의 시공 확장성이라든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환상 등등은 그냥 저질영화로 치부하기엔 좀 섭섭하죠.
아무튼 제게 그 영화는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그런 편견은 많은 호러영화들이 겪는 수모들이고 얼마 전에는 호러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랑이야기인데 보여주었다가 개 까였던 영화도 있긴 한데... 물론 잔인한 묘사를 하지 않고도 좋은 연출을 할 수 있지만 최소한 그런 묘사가 있더라도 그런 묘사들이 영화의 전반적인 질을 낮출 부분인지에 대해서는 영화 전반을 보고 판단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Lifeforce
이 감독을 좋아하시는 분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토브 후퍼 감독이 얻어 걸린 게 많은 과대평가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작인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을 비롯해서 감독 특별전에 오른 다른 두 명의 감독들과 비교해 참 하찮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신기한 게 있다면 1985년도를 전후해서 호러영화 감독들의 대표작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들이 나왔는데 이를테면 이번에 내한하는 바바라 크램튼의 히트작인 《좀비오(Re-Animator)》라든지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도 이때 나왔고요. 지금 이야기할 《뱀파이어》도 이때 영화죠.
토브 후퍼 감독작이라기보다 스필버그 제작영화라고 보는 게 더 나아보이는 《폴터가이스트》가 확 떴던 까닭에 후퍼는 다음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는 티켓이 생겼고 그렇게 해서 만든 영화긴 합니다.
사실 이것도 감독이 잘해서라기보다는 각본가가 참 이 바닥에서 한 가닥 하시던 분이라 그런 건 아닌가 싶더군요. 바로 《에이리언》의 각본가이자 85년에 《바탈리언(Return of the Living Dead)》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댄 오배넌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건 감독도 각본가도 아닌 마틸다 메이라는 배우입니다. 우주 탐사중 발굴(!)된 샬랄라한 외계인인데 인도영화 《피케이》의 주인공마냥 올누드로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건방지게 지구의 것을 배우고자함은 전혀 없고 유약한 지구인의 정기를 빨아들이고자 흡성대법으로 Heroic Fatality를 하는 외계인이라 지구는 잠시간 난리짝이 납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 대개 이 영화를 고르는 사람들은 외계인의 만행이 아닌 올누드 외계인을 보려는 흑심이 더 크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어렸을때 무슨 깡이 있어서 그랬는지 명절날 다들 잘 때 조용히 이 영화를 보려고 빌려왔는데 어쩌다 어머니(!)하고 누나(!)하고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서 지적을 받은 내용은 야해서가 아니라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기빨리는 사람들의 몰골이 심히 괴롭게 생겼다 + 지루하다 였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어렸을때 그 충격적 비주얼 때문에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 영화긴 합니다 ㅎㅎㅎ
Monkey Shines
조지 로메로 감독님은 전작을 다 보진 않았지만 시체 삼부작 만으로도 제게는 영원한 좀비의 대부십니다. 올 해 상영되는 《시체들의 새벽》은 《이블 헌터》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고요. 그 원판은 진짜 테이프가 늘어날때까지 돌려본 듯합니다.
이 감독님 관련해서 유년시절 가장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단연 《죽음의 날》 원판 테이프 건인데 그 이야기는 언젠가 하게 될 날이 오겠죠 ㅎㅎㅎ
아무튼, 조지 로메로는 세 번에 걸쳐 만든 ‘좀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지만 당연히 좀비영화 아닌 것들도 만들긴 했습니다. 저는 그의 좀비영화를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영화들에 대해서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93년작품인 《다크 하프》라는 영화입니다.
대부분의 호러영화 감독들은 스티븐 킹의 작품을 만지게 됩니다. 스티븐 킹을 계속 붙잡고 늘어졌던 사람이 있나 하면 그와 척을 진 사람도 있고, 아무튼 조지 로메로는 티모시 허튼이라는 사람을 주연으로 세워서 스티븐 킹의 동명의 소설 《다크 하프》를 영화화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그냥 이 감독님은 좀비영화만 보는 걸로…
그래서그런지 《사투》라는 영화는 관심 밖의 영화였습니다. 물론 《다크 하프》를 나중에 봤으면 좀 달랐으려나요? 그런데 솔직히 영화가 나쁘다기보다 그놈의 원숭이가 느~~므 성가셔서… 욕조에 드라이기인가 넣는 건 충격이었네요. (‘모방위험’으로 인한 청불 인정합니다)
참, 특이한 게 지금 소개한 네 편의 영화, 그것 말고도 8~90년대의 호러영화를 대표하던 대부분의 영화들은 원제가 사라지고 의역된 제목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 인상깊네요. 공포의 휴가길이니, 사투니… 상영작은 아니지만 샘 레이미의 걸작 《이블 데드》 정도만 원제가 지켜진듯 하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이 세 감독을 호러계의 대표주자로 삼고 그들의 영화의 자취를 밟아갔던 어린 날의 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추억도 만들어지게 되었고요. 이제 그 사람들은 세상에 없고 저도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추억에 빠져 잡글을 쓰는 것도 나름 재밌기는 합니다 ㅎㅎㅎ
P.S. 혹시 어제 맛살라톡 관련 글 못보신 분 있을 것 같아서 영업 글 남깁니다
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35864456
raSp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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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와 SF를 무척 좋아하지만 한번도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가본적이 없네요. 상영작 리스트에 지옥인간 너무 반갑네요. 개인적으로는 스튜어트고든감독을 정말 좋아라 합니다. 80년대 호러영화의 그 특유의 분위기는 정말 특별한거 같아요.
개인적으론 국내비디오가게의 호러물은 거의 다 봤던거 같은데. 조지로메로감독의 좀비3부작은 저에게 최악의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2000년쯤에 넷츠고 호러동에서 시체들의 낮무삭제판을 보곤 완전히 평가가 뒤바뀌었어요. 최고였습니다.
글구 피터잭슨의 작품들 특히 데드얼라이브는 뭐 대단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