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은빛 지구] 후기입니다!(스포 있음)
1970년대 중반에 폴란드 최초의 SF영화인 <은빛 지구>를 몇 년에 걸쳐 제작을 하던 안제이 줄랍스키 감독님. 그의 두번째 영화인 <악마(1972)>는 악몽을 소재로 한 다소 기괴한 내용의 공포영화인데 감독님 특유의 실험정신과 함께 급진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작품이어서 영화가 공개되기 전 폴란드 당국에 의해 감독님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정식 상영은 이보다 한참 뒤인 1988년에 이루어지긴 했지만 폴란드 당국은 이 사건 이후 그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이후 감독님은 <중요한 것은 사랑이야 (1975)>를 거쳐서 네 번째 장편영화인 <은빛 지구>를 연출하게 되는데 종교적인 요소와 함께 당시의 문화로써는 다소 폭력적이고 적나라한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결국 문화부 차관의 지시에 따라 폴란드 영화국은 해당 영화의 제작을 전면 중단시킵니다.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감독님은 1986년에서 1987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영화 <은빛 지구>의 못 다한 부분을 그 동안 모아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하여 1988년에 정식 개봉을 하게 됩니다.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 중 약 1/5 정도가 소실되어서 삭제된 부분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감독님이 직접 나레이터로 참여하셔서 설명해 주시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예르지 줄랍스키(Jerzy Zulawski)의 <달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에 해당하며 전작인 <밤의 3부(Trzecia czesc nocy), 1971>, <악마(Diabel), 1972>에 이어서 비로소 3부작이 완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눈이 쌓여있는 설산을 배경으로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설산을 누비고 다닌 뒤 인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무언가를 보고합니다. 아마 새로운 보금자리를 인디언들에게 대신 찾아보게끔 지시를 한 것 같은데 그게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어서 결국 인간들이 대신 길을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은 인디언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인디언 여성을 향해 "이 여자는 내 거야"라는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들렸습니다.
우주복을 입은채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가 아닌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대원들은 불시착한 장소에 내려 공기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기뻐합니다. 우주복을 입은 그들은 정착하며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둘러보던 중 동료들 사이의 내분으로 인해 한 대원이 사망하게 됩니다.
죽은 대원을 사랑했던 한 여성 대원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오열합니다. 원래 바닷가를 목적지로 정했던 대원들은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닷가에 도착합니다.
함께 했던 대원을 배에 태워 장례식을 치를만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그들은 한 무인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살고 있던 토착민들과 어울려 지내게 된 대원들은 자신들을 신처럼 떠 받들어주는 토착민들의 모습에 처음엔 당황하지만 이내 그러한 상황에 점차 적응하게 됩니다. 토착민들의 얼굴은 마치 마스크를 쓴 것처럼 부자연스러웠으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듯한 분위기였습니다.
한편 대원들 커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데 직접 손을 넣어서 출산하는 모습을 다소 사실적으로 묘사하여서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난 뒤 새로운 보금자리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탄생해 하나의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토착민들과 대원들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과 전쟁이 벌어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부족들이 등장하고 외계 생명체들도 나타나게 되어 약간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원들은 신과 같이 추앙받고 있으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우주복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 마치 그 부족의 우두머리인것처럼 휘황찬란한 장신구를 비롯하여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다닙니다.
또한 영화의 이야기 구조와는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뜬금없이 벌거벗은 채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하는 등 약간은 엉뚱한 느낌이 드는 장면도 더러 있었습니다. 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것처럼성적인 묘사를 통해 새 생명을 잉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연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SF영화 특유의 공상과학적 기법이 도입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하는듯한 장면도 등장하고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전쟁을 통해 일부 사람들이 큰 나무대 위에 박혀서 창자가 아래로 돌출되어 있는 채로 죽어있는 모습과 함께 칼과 돌에 의해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어서 끔찍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선혈이 낭자한 채 사람의 몸을 뒤덮는 장면도 많아서 고어적인 느낌도 강하게 들었습니다.
부족들과의 마찰로 돌팔매질을 당한 한 대원은 온몸이 피투성이인채로 나무 위에 못 박힌 채 바닷가 한복판에 세워집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그 앞으로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이 카메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안제이 줄랍스키 감독님이 소실된 필름 중 마지막 숏트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영화의 배경이 아닌 1980년대에 촬영한 현대 영상을 바탕으로 직접 출연도 하셔서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해주신 부분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다소 난해한 이야기여서 줄거리를 매끄럽게 설명하기에는 쉽지 않아서 최대한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 위주로 작성을 했는데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장면들이 많아서 계속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우선 영화의 제목이 왜 <은빛 지구>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달의 3부작과 연관지어 보았을 때 달처럼 은색 빛깔이 나는 행성에 도착한 대원들이 그 곳을 제 2의 지구로 여기며 정착하여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어서 지은 제목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영화에 나온 배경이 달인지 아니면 다른 행성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새로 방문한 우주인들을 신처럼 모시는 토착민들의 모습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한 구원자적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의미하는듯한 상징물들이 많았고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대사도 여러번 등장했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은 이제 어린 아이들에 의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됨으로써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에 연출하신 <격정>에 출연하며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는 24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함께 동거를 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갔다는 사실은 당시에 큰 화제였습니다. 비록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16년간 부부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이후 감독님의 또 다른 작품인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1989)>, <쇼팽의 푸른노트(1991)>, <피델리티(2000)>에도 그녀가 출연을 함으로써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영화 <피델리티>이후 감독님은 대학 교수로 활동을 하면서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15년만에 내놓은 신작인 <코스모스(2015)>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올라 감독상을 수상합니다. 이 영화는 폴란드의 유명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마지막 소설인 '코스모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는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던 중 2016년 2월 17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감독님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감독님의 다른 작품들도 기획전을 통해 만나고 싶습니다.
추천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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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오늘이 마지막 상영이었네요..ㅜㅜ 조금 난해한 느낌이어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영화 예매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취소했어요. 쉽게 볼 수 없는 영화인데 기회를 놓쳐 아쉽네요. 그래도 후기 읽으며 궁금증을 풀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ㅜㅜ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엄청나게 난해?한 느낌이네요
후기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예매하려고 보니까.오늘이 마지막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