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초간단 리뷰
0.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리뷰를 쓰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시리즈를 통째로 학습하지 않은 '머글'의 입장에서 글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쥐뿔도 모르는게 나댄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대로 리뷰를 쓰자"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전 '마크로스 플러스'나 '파이널 판타지:어드벤트 칠드런', '파이널 판타지:킹스글레이브'를 쓸 때도 나는 시리즈에 대한 이해가 없이, 보이는대로 리뷰를 끄적인 바 있다.
1. 스즈미야 하루히. 얘기는 많이 들어본 분이다. 한때 꽤 우울했다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활약상을 본 적은 없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을 보게 된 계기를 밝힐 순 없지만 정말 우연히 보게 됐다. 일단 시작부터 다짜고짜 추워하는 주인공 쿈(스기타 토모카즈)의 한탄으로 시작한다. '너의 이름은'을 떠올리게도 하는 첫 장면이지만 꽤 아저씨같은 쿈의 목소리 때문에 빠르게 '너의 이름은'은 지울 수 있었다. 이 첫 장면부터 나를 끌어 당긴 것은 다름 아닌 나레이션이었다. 번역을 잘한건지 원래 대사를 잘 쓴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레이션과 대사들이 처음부터 맛깔나게 이어진다. 내 시선을 끌어 당긴 것은 그림도 목소리도 아닌 대사의 '문장력'이었다.
2. 영화를 보기 전, 나는 "하이틴 로맨스물치고는 색감이 건조하군"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원색적인, 튀는 컬러감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색감은 더욱 건조한 무채색으로 변했다. 그제서야 깨닫게 된 사실은 "이거...평범한 하이틴 로맨스가 아니잖아"라는 것이다. 평행우주인지 타임패러독스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더니 이야기는 갑자기 미스테리 스릴러로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스즈미야 하루히(히라노 아야)가 사라진 세계'에 떨어진 쿈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딱히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모험'이라기엔 그리 신나지도 않는다).
3. 이 이야기의 플롯이 평행우주와 타임 패러독스라면 이것은 굉장히 끝내주는 이야기를 가진 작품이다. 이전에 등장한 유사한 이야기들을 통틀어 꽤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전작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연관성이다. 물론 나는 전작을 보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전작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부분이 여럿 관찰됐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전작과 합쳐졌을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속 이야기의 틈새를 파고들어 메꿔낸, 훌륭한 '보충설명서'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엉뚱하게도 이 이야기를 본 후, 나는 전작이 무척 궁금해졌다.
4. 아재인 나에게 솔직히 지금 저패니메이션은 다소 부담스럽다. '아키라'나 '공각기동대', '왕립우주군', '3X3아이즈', '시티헌터', '드래곤볼', '북두신권' 등을 보고 자란 나에게 큰 눈을 가진 귀여운 소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대단히 어색하다. 마치 강경옥이나 박희정 작가의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이래도 되나" 싶은 기분이 강하게 든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편견'은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등 저패니메이션의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스즈미야 하루히'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은 "저것은 내가 볼 작품이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큰 눈에 귀여운 소녀들을 보면 '팔기 좋은 캐릭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의 이미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같다). 우선 나는 이런 편견에 사과해야 할 것 같다.
5. '스즈미야 하루히'의 이야기가 가진 파괴력을 접하고 나니 저 옛날 사토시 곤의 작품들이 떠오를 지경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사토시 곤을 찬양하는 '덕후'이며 '스즈미야 하루히'는 사토시 곤의 작품들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야기를 비틀면서 지능적으로 풀어가는 능력은 사토시 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작화의 감각적인 표현력은 일부 지점에서 사토시 곤의 작품들보다 앞서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제서야 이걸 보게 됐는지 안타까울 지경이다.
6.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드는 이유는, '소실'에서는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스즈미야 하루히에 대해 알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스즈미야 하루히가 사라져버린 이야기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에서 스즈미야 하루히는 사라져 있거나 실제와 다른 아이로 등장한다. 여러 덕후들을 매료시킨 스즈미야 하루히와 나가토 유키(치하라 미노리), 아사히나 미쿠루(고토 유코)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대단히 궁금하다.
7. 결론: 전작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TV판이라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봐야 할 것 같다. 저패니메이션의 상상력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물론 버블경제 시절의 작품들에 비하면 작화가 많이 죽긴 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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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엔드리스 에이트' 편은 소설로 보면서 이걸 TV로 어떻게 옮기나 했는데..
소설판을 안보고 TV판을 먼저 보면 굉장히 난해할겁니다. 사실 소설을 보고 애니를 봐도 난해합니다만,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함이랄까.
저도 이거 개봉하자마자 본 기억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