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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 '아나따'와 '키미'의 차이

파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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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소수의 매니아들을 위한 것 혹은 아이들을 위한 것 이상의 위치는 차지하지 못했던게 사실입니다. 예외가 하나 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정도 겠지요. 사실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이라든가 재미도 의미도 있는 작품들도 제작은 되고 있지만, 역시 돈 벌이 때문인지 극장에 걸리는 일은 매우 드믑니다. 걸리는 것들은 대게 저로선 근처에도 가기 싫어지는... 덕후향 가득한 그런 것들이 많더군요...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든지 <카우보이 비밥> 같은 대표 시리즈는 봤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보는거였고 또 재미도 있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도 거의 다 봤습니다. 지브리의 작품은 일본 애니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틀 안에 집어넣기엔 좀 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것들이었죠. 그러니까, 아예 안보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원 펀치 맨>이라든가 <나만이 없는 거리> 같은 것도 봤어요. 제가 재미있게 본 작품들의 공통점은, 뭔가 좀 독특한 소재로 애니만이 접근할 수 있는 벙법론을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현실을 은유하는 면이 클 수록 좋아하고요. 그래서 '덕후'라는 사람들이 깊이 좋아하는 작품들에는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작품은 현실과 유리된 애니메이션의 세계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현실을 버리고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하고요.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이상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애니메이션을 멀리 한 계기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시작이었던 것 같네요. 작품이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부정적이라면, 좋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의 이름은.>을 본 것도 사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하길래 뭔가 씹어봐야겠다. 하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것이었어요.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들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받은 인상은 사소한 것들, 사소한 만남의 감정들이 어떻게 극대화 되는지를 재주좋게 표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 기반하지만, 지나친 비약을 통해 감정을 극대화 시킨 후, 어정쩡한 마무리를 보여주곤 했죠. 바로 전작이었던 <언어의 정원>도 연출면에서는 꽤 훌륭하다고 느꼈지만 내용은 중고딩 감성에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야기가 심각하거나 깊이가 있어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그랬다는 것이죠. 뭐 그것도 그거대로 가치가 있고 팬도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땐 작가로서의 신카이 마코토는 딱 그정도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어요. 완전히 말도 안되는, 소년과 소녀가 몸이 바뀐다는 설정으로 시작해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했던 재난을 돌파하고, 앞으로를 살아가야 할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꽤 놀랐습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설득당하고 말았습니다. 

- 여기서 부터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스포일러를 모르고 볼 수록 재미가 더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보신 분만 읽으시길 권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소년과 소녀의 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동경에 사는 타키, 그리고 시골의 작은 마을인 이토모리 마을에 사는 미츠하는 어느날 잠에서 깨면 문득 눈물이 흘러 있게 됩니다. 곧, 이들은 잠이 든 사이 서로의 몸이 바뀌어 하루를 살게 됨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다시 잠들었다가 깨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식입니다. 이 현상은 예고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 지켜야할 약속같은 것을 정하기도 합니다. 타키의 몸에 들어온 미츠하는 시골에서만 살았던 소녀기에 카페도, 디저트도 처음이라 타키의 용돈을 많이 씁니다. 이 때문에 용돈 아껴쓰기! 같은 항목이 생기기도 하고, 여자의 몸을 처음 겪어(?) 보는 미츠하의 몸에 들어간 타키 때문에 미츠하는 '샤워하지 말 것!' 같은 약속을 걸기도 합니다. 이런 디테일들이 소년과 소녀가 몸이 바뀐다는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소소한 재미거리 들입니다. 영화 초반 30분 가량은 이런 알콩달콩한 재미들로 채워지면서 관객의 접근을 쉽게 만듭니다. 하지만, 거기 까지입니다. 이 기본 설정이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고 생각 될 쯔음 부터, 이야기는 더 큰 맥락으로 진입합니다.

타키는 어느 순간부터, 미츠하의 존재를 찾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꿈 속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떠올리고, 이걸 그림으로 옮기면서 대략 어디쯤일지를 추적해 결국 찾긴 찾습니다. 찾긴 찾는데, 그 마을은 이미 3년전에 혜성 충돌로 사라진 마을이었습니다. 타키와 미츠하는 공간의 괴리 뿐만 아니라, 3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몸이 바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타키는 간절히 미츠하와 다시 몸이 바뀌길 바라게 됩니다. 미츠하를 포함한 이토모리 마을의 비극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요. 그리고 결국 '쿠치카미사케'라 불리는 술을 통해 몸이 바뀌게 됩니다.

딱히 개연성이 있다거나, 치밀한 복선이나 딱딱맞는 아귀가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히 타키와 미츠하가 왜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지도 묘사가 되어있지 않고, 꿈이라고 미츠하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타키가 풍경을 쓱쓱 그려가며 신사를 찾아가는 장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디테일을 지나치게 생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영화는 다른 재미들로 덮어버리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장면이 어디에 들어가고, 어떻게 끊어지는지가 매우 절묘해서, 관객이 뭔가 이상한걸? 하는 생각을 하기 전에 진행되는 맥락에 있어서의 변화 지점을 만들어 계속 큰 맥락 속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전략은 어쩌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식이 대충해도 되는 것이라서가 아니라 초반에 관객이 받아들인 이 작품의 톤이 명랑하고 밝은 것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부분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꽤 전략적인 연출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후반부의 재난과 타키, 미츠하의 '살기 위한' 노력들은 꽤 뭉클합니다. 감독 본인도 밝혔다시피 이 작품은 3.11 동일본대지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3년전 엄청난 재난과 맞딱뜨린 적이 있습니다. 이미 스러져간 희생자들을 두고, 우연찮게 찾아온 신비체험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그 역사를 바꾸는 것. 각기 다른 사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내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했을텐데... 

만약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저는 <너의 이름은.>을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정말 싫었을 겁니다. 작품의 재미를 위해 실제 재난을 모티브로 끌어들여 희생자의 아픔을 더하는 꼴이 되었을 테니까요. 제가 이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끝이 아니라,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어쩌면 토쿄도 없어질지 모른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소년 소녀의 몸이 바뀌는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왜 꼭 타키와 미츠하여야 했는가?'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의 설명이 들어갈 경우, 이것은 운명론적 이야기가 되어버리면서 이야기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부분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서, 타키와 미츠하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고, 서로 소통하고 '내가 상대방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의 제목이 <키미노 나마에와.>인 것이 설명 됩니다. 2인칭을 뜻하는 '키미(君)'는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주 쓰이는 '아나따'가 '너', '당신'이라는 고정된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키미'는 고전 문학에서 주로 쓰이며 우리 말로 치면 '님', '그대'와 같은 좀 더 넓은 개념의 2인칭이라는 것이죠. 누구라도 상관 없는 것입니다. 타키와 미츠하는 무슨 큰 능력이나 대단한 혈통이라서 <너의 이름은.>의 주연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소년 소녀 중 하나였다는 것이지요.

참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좀 두렵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우리에게 닥쳤던 재난을 영화화하려는 시도를 보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퀄리티로 나올지 가늠이 안갑니다. 어줍잖은 이야기로 돈을 벌려는 수작이라면 그냥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대의 상처를 다룰 때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장르에 대해 최소한 이 정도의 이해와 풀어내는 능력, 그리고 사건을 통해 우리의 삶에 끼칠 영향에 대한 통찰도 필요합니다. 저로선 한국에서 이런 비전을 가진 작품이 나올 거라는 상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좋은 작가, 감독들이 많지만... 배가 인양되고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라면 모를까... 그 전에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게 유가족들을 위한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요.

 

 

 

 

- 제 블로그에 쓴 글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파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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