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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 홍상수 [헤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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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엔 주요 내용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이 영화를 모방하는 것일까. 얼핏 들으면 이 질문을 말이 안 되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온 예술들 중 현실 모방의 최전선에서 서있는 것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의 궁극의 꿈이자 종착지인 현실 모방. 하지만 기술의 한계로 인해 번번이 그 고개를 넘지 못 하고 좌절됐던 예술의 현실 모방. 그러나 사진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이 발명되고 나서 더 이상 현실 모방이 꿈만이 아님이 나타났고 뒤이어 영화라는 최첨단 기술이 발명되어 현실 모방이라는 숙원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대단했다. 영화 초창기 시절 뤼미에르의 ‘기차의 도착’을 본 관객들이 화면 밖으로 기차가 실제로 나오는 줄 알고 극장 밖으로 도망간 것이 그 반증이다. 이후 영화는 더욱 더 진화한 기술을 바탕으로 정교한 현실 모방을 거듭 해 이제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실제에 가까운 가상 인물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렇게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모방하는 선을 넘어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가상으로서의 대체 현실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자 원점으로 돌아가 위에 질문에 답해보자. 분명 영화의 시작은 이렇게 현실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모방의 역사다. 때문에 현실과 영화의 서열은 명백하게도 현실 위, 영화가 아래다. 그런데 영화의 역사가 길어지고 그에 비례해서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강해지면서 역으로 영화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도 만만치 않게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영화만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도 영화를 모방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물증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해당 영화에 열광하며 코스프레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가 현실 모방을 넘어 완전히 그 자체로서 독립할 수는 없다. 이미 존재론적으로 영화는 누군가의 조작이라는 인위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현실은 그 자체로서 스스로 그러하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의 발전은 이처럼 엄청난 상황에 까지 도달했고 어쩌면 현실을 배제한 영화 그 자체의 상상력에 의한 동력으로 자기 생산하는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자체가 현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영화 모방이 과연 좋은 현상일까. 아니면 나쁜 현상일까. 솔직히 질문을 바꿔 그 가치를 따지는 쪽으로 간다면 솔직히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건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극장전’이라는 영화를 통해 좋지 않다고, 아니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불길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실의 영화 모방은 죽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극장전이라는 영화는 아마도 홍상수 작품 중 가장 웃기면서도 또한 가장 불길한 기운으로 넘치는 아주 기묘한 영화일 것이다. 일단 이 작품은 소위 홍상수 식 코미디의 만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엇박자 웃음을 선사하면서 우리들에게 예상 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확실히 이 작품은 이전 홍상수 작품에 비하면 정말 웃기고 재밌다. 감히 홍상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감독은 굳이 그 웃음 뒤에 죽음을 배치하는 묘한 수를 쓴다. 그러니까 웃음 주변에 죽음을 끼워 넣어 보는 이의 시선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작품은 웃기긴 웃긴데 웃음 다음 오는 이 찜찜함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보는 이의 불편한 시선을 감안하면서도 말이다. 때문에 아마도 감독은 아주 작정하고 이 2개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공간에 동거시키려고 작정한 것 같다. 더욱이 감독의 작품 중 죽음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처녀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니 말이다. 어차피 예술가의 사명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삶과 죽음의 언저리 사이에서 위태롭게 위치한 인간의 실존을 파헤치는 것이니 홍상수 같은 진지한 작가주의 예술영화 감독이 죽음을 다루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죽음이 아주 이상하게 왔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여기서의 죽음은 마치 어린 아이들의 소꿉장난 같다는 것이다. 그냥 삶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놀이 형식으로 죽음을 끌어왔다고나 할까. 그럼 이제부터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차이를 말하면서 논의를 이어가겠다.

 

   1. 극장전: 영화 속.

 

   상원은 첫 사랑인 영실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오래간만에 첫 사랑을 만난 상원은 영실과의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자신과 함께 하기를 제안한다. 영실도 그 제안이 나쁘지 않았는지 선 듯 수락한다.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던 둘을 갑작스러운 영실의 복통으로 여관에 가게 된다. 거기서 둘은 섹스를 시도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원은 발기가 되지 않아 실패한다. 이후 그 둘은 갑자기 죽고 싶다면서 자살 소동을 벌이지만 잠깐 동안의 일탈로 막을 내린다. 극장전 영화 속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 속 영화에서 죽음은 뜬금없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명제가 나올 정도의 심각함 따위는 애초에 등장하지 않은 체 말 그대로 그냥 갑자기 튀어나온다. 차라리 술에 취해 욱한 기분으로 죽음을 논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차피 홍상수 영화에서 술은 필수 항목 중 하나이니 그렇게 생각해도 별반 이상하지 않지도 않다. 뭐 어쨌든 이런 식으로 작품은 술의 힘을 빌려 거의 반 장난 식으로 죽음을 끌어들인다. 이때부터 작품은 불길하고 난처해진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과 공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이 몰고 오는 묵직함을 철저하게 제거한 체 즐겁게 조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난처함과 불길함은 장난 반, 놀이 반식으로 죽음이라는 엄숙한 문제를 다루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우리들의 윤리적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이 죽음을 가볍게, 동시에 별다른 감정 없이 유유하게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다루면서 보는 이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작품은 이 작품이 거의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소한 내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속 영화의 죽음이 전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여자에 대한 혐오, 그리고 숭배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남자들의 무의식적 공포일 것이다.

   이 작품의 영화 속을 잘 들여다보면 여자를 둘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로서의 여자와 연인으로서의 여자 말이다. 그리고 전자는 삶과 동급이고 후자는 죽음과 동급이다. 즉 어머니 - 여자: 삶, 연인 - 여자: 죽음이라는 등식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상원이 영실을 만난 다음 손숙 주연의 ‘어머니’라는 연극을 보는 진행은 그래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죽음의 문턱을 지나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는 이런 구도는 앞으로 상원의 행보가 어떠할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상원과 영실은 술에 취한 체 여관에 가서 섹스를 시도하지만 상원의 발기 부전으로 실패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잠이 든 상원의 꿈속에서 아주 이상한 장면이 등장한다. 어떤 한 백인 여자가 사과를 상원에게 건네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하는 장면이다. 이건 명백하게도 아담과 이브의 그것을 풍자, 모방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담은 이브가 건네는 사과를 먹고 파멸했지만 상원은 백인 여자가 건네는 사과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답은 잠시 미루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진전해보자. 상원은 그 꿈을 꾼 다음 다시 영실과의 섹스를 시도하지만 발기 부전으로 또 실패하게 된다. 그 때 상원은 갑자기 죽고 싶다고 말하고 거기에 영실도 호응한다. 거기서 상원이 영실과의 섹스가 실패한 것이 쪽 팔려서 죽음을 말했는지 아니면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 해서 죽음을 말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처음 죽음을 말한 상원보다 영실이 더 적극적으로 죽음을 끌어안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말했지만 막상 죽음과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간 상원을 끝까지 쫓아가 죽음의 길로 인도한 것이 바로 영실이다. 근데 웃긴 것은 죽음을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영실이 제일 먼저 죽음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이어 상원도 죽음에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한다. 희희낙락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상원의 꿈의 정체가 뭔지 드러난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상원은 죽을 운명이 아닌 것이다. 죽음으로서의 여자 - 영실과의 두 번의 섹스를 실패하고 꿈 속의 백인 여자가 건네는 사과를 거부한 것은 그가 여자라는 요물 때문에 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상원에게는 삶 그 자체인 어머니가 굳건하게 버티고 계시다. 왜 하고 많은 연극 중 상원은 손숙 주연의 감동적인 연극인 ‘어머니’를 보고 이후 어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어머니를 목 놓아 외쳤을까. 그건 상원 내면에 어머니가 굳건하게 있어서 죽음의 유혹으로서의 여자가 와도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영화 속 영화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한 다분히 분열증적인 무의식적 공포를 형상화하는데 주력한다. 삶으로서의 어머니, 죽음으로서의 연인. 그런 점에서 작품의 화법이 요상하고 기묘해서 그렇지 그 본질은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이분법적 인식은 신화와 종교, 문명사회에서 무수하게 반복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 이쯤 되면 대충 영화 속 영화의 죽음을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얄팍한 사랑의 감정에 매몰된 남녀는 동반 자살을 꿈꾸지만 어머니라는 강력한 존재 때문에 실패한다는 뭐 그런 통속적인 이야기 속 죽음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럼에도 영화 속 영화의 죽음은 너무 뜬금없다. 어찌됐든 표면적으로 젊은 청춘 남녀의 슬픈 사랑 때문에 자살이라는 죽음을 끌어들였다고 말하기에는 그 수위가 너무 낮다. 즉 굳이 그 둘 사이에 죽음을 배치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 지금까지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에 이어 등장하는 영화 속 현실이 등장하면 여기서의 죽음의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2. 극장전: 현실 밖

 

   영화 속 영화에서 벗어나 영화 속 현실 밖으로 나가고 나서 우리가 마주하는 첫 번째 사실은 이 기묘한 죽음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 위독한 병으로 지금 죽어간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 작품에서의 죽음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이건 장난도 놀이도 허용하지 않는 진짜 현실 속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현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아주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동창들은 십시일반으로 병원비를 모금하고 있고 주연 여배우 영실은 자신의 은인에 대한 안타까움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단 한 사람 영화감독의 후배이자 영화 속 현실의 주인공인 동수만 빼고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영화감독이 전해준 죽음의 무게를 각자 짊어지고 있을 때 오직 동수 그만이 그 짐을 짊어지기를 거부하고 혼자 희희낙락한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개만도 못 한 인간으로 취급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수를 그런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만의 이기적인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아픈 친구 딸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건네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빼앗거나 선배 영화감독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영실이라는 여자를 유혹하기에 바쁘고 급기야는 죽어가는 선배 영화감독을 비난하는 등 동수는 전형적인 몸만 어른은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작품은 이런 동수를 통해 현실이 영화를 모방(특히 죽음!)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지 넌지시 제시한다.

동수는 자의든 타의든 영화 속 영화를 현실에서 모방한다. 동수가 영화 속 상원이 피는 말보로 레드를 핀다든지(친구는 영화 따라하냐며 핀잔을 준다.), 영실을 유혹해 여관에서 섹스를 한다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원이 한 문제의 발언인 ‘죽고 싶다’라는 말은 똑같이 반복한다. 그러니까 동수는 지금 현실 밖에서 죽어가는 선배 영화감독이 만든 기묘한 죽음 영화를 거의 비슷하게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이상한 행태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그 짓을 하니 그 이상함은 배가 된다. 허나 동수는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영화를 모방한다. 그 이유가 뭘까. 혹시 자신이 이루지 못 한 꿈을 먼저 이룬 선배 감독에 대한 질투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말마따나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사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일단 전자는 가능성이 있다. 동수는 끊임없이 죽어가는 선배 감독은 비난하며 그를 과소평가한다. 동수 자신은 아직도 제대로 된 영화 하나 만들지 못 하고 빌빌거리는 반면 선배 감독은 회고전을 치를 정도의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 반해 후자는 별로 신빙성이 없다. 동수가 하는 어쭙잖은 행동을 보건데 그건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서 선배 감독이 누린 지위를 자기 것으로 화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에 대해 영실이 작은 것 하나만 봐도 다 자기 얘기라고 사람들이 착각한다는 것 같다는 발언으로 동수의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이렇게 보면 역시나 동수가 영화를 모방하는 행위는 선배 감독에 대한 질투로 인해 그것을 자기 것으로 훔치고자 하는 그의 무의식적 욕망이 발현 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이 영화 이해에 더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동수는 선배 감독의 영화를 완벽하게 모방했을까. 그래서 영화처럼 꿈결같이 끝났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수가 모방하는 영화는 근본도 출처도 없는 이상한 죽음을 다룬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영화이다. 그 영화 속 죽음을 현실 밖으로 끌고 들어오기에는 현실의 벽은 너무 완고하다. 더욱이 그 기묘한 죽음을 표현한 감독은 실제로 진짜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미 현실은 진짜 죽음에 의한 무거운 기운과 윤리적 책무라는 무게들로 압도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 속 기묘한 장난 같은 죽음이 들어 설 자리는 애초에 없다. 때문에 동수의 영화 속 이야기 모방은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니 반드시 실패해야만 한다. 영화 속 영화에서와 같이 죽음을 장난, 놀이 식으로 풀어놓기에는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실은 영화 속과 같이 어머니: 여자 - 삶, 연인: 여자 - 죽음과 같은 다분히 이분법적인 여자 구도도 성립이 안 된다. 그건 그냥 남자의 머릿속 망상, 혹은 무의식적 공포에나 있을 뿐이다. 실제로 동수는 영화 속 상원과 달리 섹스에 성공하고 함께 죽자고 영실에게 제안하지만 그녀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럼에도 동수가 영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하자 그녀는 그에게 급기야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이라고 일갈을 한다. 이제 그만 영화 속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라는 호된 충고인 것이다.

   이제 영실의 비판으로 인해 영화 속 이야기를 모방하는 것에 실패한 동수는 그제야 죽어가는 선배 감독의 병실 문을 연다. 그 곳에서 선배 감독은 초췌한 모습으로 죽음의 공포 때문에 두려워한다. 더 살고 싶다. 죽지 싶지 않다. 선배의 절규에 동수는 이내 울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무엇에 대해서? 그건 아마도 영화 속 죽음을 모방하면서 현실 속의 진짜 죽음 즉 애증 관계에 놓인 선배의 진짜 죽음을 이제야 직접 봤기 때문이다. 결국 동수는 영화 속 철없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낭만적이기도 한(?) 죽음을 쫓느라 진짜 죽음을 외면하던 어른 -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선배의 진짜 죽음을 목격하고 ‘이제 생각을 해야겠다..... 생각을 더 해야 해, 생각만이 날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이라고 말하는 동수의 모습은 한 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다. 왜 이제야 겨우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3. 나는 모방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영화 속 죽음을 모방하면서 현실 속 진짜 죽음을 외면하는 동수의 모습을 통해 거꾸로 점점 현실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영화의 영향력과 거기에 동조하는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다. 물론 분명 이 영화의 주인공 동수와 같이 철없이 영화를 모방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영화를 모방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가벼운 조소를 곁들인 풍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이 가볍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현실 모방이 아닌 현실의 영화 모방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앞서도 말했지만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섣불리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이미 답이 정해진 수학이 아닌 미세한 하나의 행동에 따라 무수하게 틀린 현상들이 도출되는 현실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품의 주제. 정확히는 현실의 영화 속 죽음의 모방이라는 측면만 봤을 때 확실히 부정적인 결말을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영화 기술은 발달되고 그것을 통해 구현되는 죽음도 또한 발달한다.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보여 준 경이적인 죽음의 묘사와 2000년대 급부상한 프렌치 익스트림 영화들에서 나온 경악스럽고 충격적인 죽음 등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에 대한 묘사와 종류는 더 발달하고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영화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이는 나쁘게 볼 것이 아니다. 나또한 이것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현상을 지지하고 환영한다. 다만 이 영화 속 가상의 죽음들이 단순히 오락적 소비에만 머물러 죽음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저해되는 것은 우려되기도 한다. 아마도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도 영화 속 죽음이 가벼워질수록 삶과 분리되어 오락의 영역으로 멀어지는 작금의 죽음 묘사 현실에 대한 근심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가벼운 죽음이 현실 속에 침투되어 역으로 모방이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마치 가짜 죽음을 모방하며 진짜 죽음을 외면하는 동수처럼 말이다.

   이제 영화 속 영화에서 뜬금없이 튀어 나온 기묘한 죽음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아무 출처도,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가벼운 유희적 죽음일 뿐이다. 히치콕 식으로 말하면 맥거핀에 불과하다. 영화 속 현실의 진짜 죽음을 도드라지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 것이다. 때문에 영화 속 영화의 이야기들이 현실 속에서 모두 무화가 되어 버린 것처럼 이 죽음도 현실 안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 어차피 텅 빈 장치에 불과할 분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허깨비 같은 죽음과 이야기를 모방하려다 호된 질책만 받은 동수에게 영실이 당신은 영화를 잘못 봤다고 말하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와 죽음을 함부로 모방하는 동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판일 것이다. 그렇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때문에 영화의 영향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모방할 수 없다.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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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홍감독님 영화 좋죠.

근데, 분석을 하려고 할 때 깨지는 게 또 감독님의 작가론이죠. ^^

 

 

03:33
16.06.22.
profile image 2등

스캔들 이후 홍상수 감독 신작들은 어떻게 될지..

글 잘 봤습니다.^^

09:33
16.06.22.
golgo

스캔들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우디 앨런도 살아남았으니 말입니다. ^_^

23:30
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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