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 암살 혹은 자살, 로버트 포드 혹은 제시 제임스.

※ 본문에 스포일러 포함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이름조차 지독하게 긴 영화다. 자고로 옛 영화들에 보면 저런 식으로 긴 제목이거나 혹은 제목이 길지 않아도 긴 부제들이 달려 있었다. 딱히 손에 가지 않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던 건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 브래드 피트가 2006년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당당히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적인 배우가 우리나라에서는 소개조차 잘 되지 않았던 그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선보였기에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을까. 영화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가 보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물론 영화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은 사그라져버렸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한 후 이 영화의 주인공에 대해 기존의 필자가 오판을 한 것이 있었다. 당연히 제시 제임스가 왜, 어떻게 죽었나를 다루었을 거라 생각했던 터라 주인공이 제시 제임스였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실상 이 영화의 주인공은 로버트 포드였다. 영화의 시작조차 로버트 포드(밥 포드)가 제시 제임스를 찾아가게 되는 그 순간부터였고, 그 결말은 로버트 포드의 죽음으로 점철이 되었으니까.
스스로 목축업을 한다고 하고, ‘토마스 하워드’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는 남부 측 지지자 제시 제임스는 한국으로 따지자면 ‘홍길동’같은 인물이다. 형인 프랭크 제임스와 함께 ‘제임스 갱’을 이루었고, 유럽에서는 ‘19세기 말에 유럽인이 아는 미국인이라곤 마크 트웨인과 제시 제임스뿐이었다.’라는 말이 떠돈다고들 했으니 가히 유명세를 단단히 떨치는 이었다. 그 농담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당시 미국 사회에서 2번째로 유명했던 인물이었고, 그의 전기(傳記)를 읽고 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19세의 밥 포드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제시 제임스의 전기를 읽고 큰 것으로도 모자라 기사나 그에 관련한 물품들을 모으는, 지금으로 따지면 제시 제임스의 열렬한 광팬이었던 것이다. 밥은 형인 찰리가 제임스 갱단에 있는 것을 통해 그의 갱단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었으며, 제임스 형제를 제외한 초기 제임스 갱단의 멤버들이 모두 감옥에 갇히는 불상사로 풋내기 신참들을 받아들이던 그 시기에 직접 제시 제임스에게 접촉을 하여 제임스 갱단에 들어온다.
그러나 갱단에 들어온 이후 블루컷에서 기차를 습격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밥 포드가 상상했던 의적의 행동들은 없었다. 제시의 형인 프랭크는 제시의 성격에 넌더리를 내며 제시를 쫓아버렸으며, 밥은 제시와 가까이 지내게 되고 그의 갱단들과 섞이게 되며 제시 제임스에 대한 단점들을 알게 된다. 의적이었던 제시의 모습은 언론이나 구전되어지는 말로는 멋있는 인물에 틀림없으나, 실제로 제시는 신경질적이고 지나치게 예민하며 사람들의 기대에 억눌려 있는데다가 부하들이 언제 배신할지 몰라 늘 불안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시기 제시 제임스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일행 중 자신을 밀고하려다가 적발한 이가 있었고 블루컷 일행 중 4명이 체포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비염과 폐충혈 등으로 점점 몸이 더 망가져갔다. 미신적 점괘에 완전히 의존하며 제시의 정신까지 무너져버리던 그 때, 밥은 누나(마사)의 집에서 우연히 갱단 동료이자 제시의 사촌 동생이었던 우드 하이트를 죽여 버리며 자신과 찰리 형제가 제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던 제시가 마사의 집에 들이 닥치며 제시는 밥이 언젠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 혹은 이미 배반했다는 것을 눈치 챈다. 이 과정에서 밥은 완전히 제시에게서 돌아서게 된다.
자신이 단지 살고 싶었기에, 게다가 제시에 대한 실망으로 제시에게 벗어나고 싶었기에 밥은 당국에게 모든 것을 고발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사의 집에 하숙을 하던 갱단의 멤버 딕 리딜이 체포되고 밥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당국에게 덜미가 잡혀 주지사에게 제시를 잡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기간은 일주일. 그 사이에 더욱 심약해지고 예민해진 제시가 포드 형제를 찾아온다. 포드 형제는 제시의 집에서 머물게 되고 제시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해 아이들의 사이에서 잠을 청하며 심지어 포드 형제가 자신들의 눈 밖에서 나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한다. 불안해하는 것은 포드 형제 역시 마찬가지다. 찰리는 울면서 잠에 들지도 못 하고, 만우절에 갑자기 자신에게 총을 선물하는 제시 덕분에 밥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1882년 4월 3일, 제시는 딕 리딜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제야 제시는 자신이 더 이상 비빌 언덕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늘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포드 형제의 앞에서 풀어놓는다. 액자에 먼지가 끼었다며 일부러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자신들의 부하가 총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액자 유리에 비친 것을 확인하며 그대로 밥의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밥은 제시를 죽이자마자 자신이 제시 제임스를 죽였다는 내용의 전보를 치고 그 후 1년 동안 찰리와 함께 제시 제임스 살해 연극을 오픈한다. 그 연극을 하며 점점 찰리는 망가지기 시작하고, 결국 찰리는 유족들에게 보내지 못한 장문의 사과편지를 쓴 채 결국 자살에 이른다.
밥의 인기는 많았으나 그만큼 조롱도 많았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듯 제시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갈 생각도 해보았다. 그는 자신이 냉정한 것을 슬퍼했다. 차라리 제시 제임스를 죽였던 사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제시를 그리워할 줄도, 그리고 후회할 줄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리고 제시가 죽은 지 10년 후, 그는 자신과 비슷했던 한 남자의 총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제시의 죽음과는 다르게 밥 포드의 죽음은 크게 유명세를 타지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미국의 의적을 죽인 로버트 포드의 죽음은 그렇게 쓸쓸하고 의미 없게 사라졌다.
영화 속에서 밥은 꼭 제시를 사칭하기라도 할 듯 그의 행동, 몸짓, 억양 등 모든 것을 파악한다. 심지어 목욕을 하는 도중에도 찾아오는 밥에게 제시가 묻는 말이 있다. “나처럼 되고 싶어, 아니면 내가 되고 싶어?(Do you want to be like me, or you want to be me?)” 이 말은 제법 중요한 말인데, 그저 흘러가듯이 묻는 이 말이 어쩌면 제법 밥의 정곡을 찌른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싶었지만, 동경의 대상 역시 가까이에서 보면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 동경의 대상이 실망감으로 자리 잡았을 때 밥은 동경의 존재를 뛰어넘어야 자신이 타인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경의 대상과 같아져서는 더 이상 박수갈채를 받을 수 없다. 물론 밥이 제시의 사촌을 죽였던 사건도 있었지만, 밥은 이미 제시에 대한 동경심이 사라진 후였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은 인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건 적용되고는 하는데, 아마 밥에게서의 제시도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멀리서 보았을 때는 우상이었던 사람이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그저 하나의 인간에 불가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은 존 레논과 마크 채프먼이었다. 존 레논이 광팬이었던 채프먼에 의해 죽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일각의 측면에서는 채프먼 본인이 너무나도 존 레논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이 존 레논이라고 착각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그를 죽이는 게 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밥이 제시를 죽인 것에 대해 그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죽였다고는 할 수 없다. 밥이 제시를 죽이지 않는다면 밥이 먼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갔었으니까. 하지만 과거에 밥이 제시의 자료를 스크랩한다든지, 제시를 찾아간다든지, 제시가 죽기 며칠 전 제시의 옷을 만지거나 잘린 손가락을 흉내내본다든지 하는 점에서는 채프먼과 밥의 유사성이 영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로버트 포드의 시체 사진은 팔리지도 않았고, 비가 내리던 날 그의 장례식에 참여할 사람도 없었으며 그에 대한 전기 역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한 영웅을 죽인 사람의 말로 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시 제임스 사후 밥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누구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밥의 사후 메시지를 건조한 내레이션으로 전달하는 이 영화만큼은 로버트 포드에 대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강용석의 고소한 19> 비틀즈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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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과소평가받은 영화 게시물 1위에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 있기에 예전에 썼던 글을 올려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데 다들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샐리와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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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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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끄럽게도 이 영화를 아직 못 봤네요.
나중에 보고 정독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