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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핀 - 리뷰

소설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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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영화 <돌핀>을 말하며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최근 눈여겨보는 배우가 있습니다. 한선화 님입니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진짜인지 연기인지 헷갈릴 정도로 만취한(또는 하는) <술꾼 도시 여자들>을 천재적으로 연기해냈다면, <영화의 거리> <창밖은 겨울> <교토에서 온 편지> 같은 소담한 영화를 통해 한선화만의 영화적 필모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영화적 필모라는, 조금은 정의하기 어려운 말로 표현했습니다만! 거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영화에서 오롯이 연기로 영화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리고 이를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영화를 흥행만으로 설명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하기에 '상당한 용기로 그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에두르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돈 때문 아니냐, 물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상업영화를 제외한 한국의 영화제작비 평균이 10억 내외, 그 중에서도 독립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순제작비가 2억 즈음으로 뚝 떨어져 결정된다는 사실을 짚어보면 소위 '돈'으로 영화적 필모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충분한 답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꿈,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많이들 하실 겁니다. 아이돌로 얼굴을 알렸으니 배우 하기 쉬웠을 거라고. 아마 이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않을까 싶네요. 2017년 즈음에 문체부에서 발간한 통계에서 아이돌 연습 기간이 3년 2개월 정도, 평균 활동 기간이 5년, 그 이후로 사라지는 아이돌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위 바닥에서 오디션을 거듭하며 멈추지 않고 배우로 성공한 분들과 견주어도 노력과 고통의 총합은 뒤지지 않을 겁니다. 낮잡아 10년의 노력, 그리고 연기자로 인정받기까지! 그 지난한 과정을 누가 알며, 어떻게 평가한단 말입니까. 

그러하기에 이들의 노력을 퉁쳐서 '반'으로 맞고 틀림으로 정한다는 것 역시나 대단히도 미안스러운 난센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아이돌에서 파생했다고는하나 이들을 연기자로 인정하고 응원하는 것이 맞는다, 라는 부록 역시 따라오게 되네요.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소위 아이돌에서 파생해, 한선화 님처럼 배우로 이름을 굳혀가는 이들이 떠오릅니다. 얼굴이면 얼굴,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정말 다 되는 만능 탤런트라는 상투적이지만 적확하기 그지없는 수식어가 이들에게 딱 들어맞습니다. 대충만 떠올려도 임시완, 박형식, 윤아, 유이, 도경수, 육성재, 김세정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제가 편애하는 설현 배우를 빼더라도 말입니다.) 조금 더 위로 에릭이나 유진 같은, 이제 배우가 어울리는 이름도 생각납니다. 물론 방화시절로 올라가 보면 한 가수의 히트곡 하나가 영화 제목이자 주연이 되는 기염을 토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웃자고 하는 말입니다만 <담다디>라는 영화도 있었다지요. 안 봤음 말을... 죄송합니다!)

다만 이들을 연기자로 인정하다고 해도 "스타인가, 배우인가?" 하고 진지하게 되물어본다면 조금은 지나치게 두둔하며 적은 위 문장들이 뭉개지는 감도 없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를 영화로 한정해 본다면 아이돌 출신 배우의 입지는 현격히 위세를 잃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선화 님 같이 영화 하나를 책임지며 뚝심 있게 배우의 길을 가는 뒷모습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 파생한 배우가 <돌핀>으로 극장을 찾습니다. 바로 소녀시대의 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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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하다

파생하다, 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사물이 (어떤)하나의 근원에서 갈려나와 생기다, 실질 형태소에 접사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를 만들다'입니다. 즉 어느 근원을 두고 새롭게 탄생한 것을 이릅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를 설명하는 데 있어, '파생'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적확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를 조금 더 확대하고 순환하여 이른다면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로 고상하게 적을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에 세 글자를 더 붙이면, 즉 '청어람'이라는 말까지 덧붙여보면 과연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파생하여 제대로 기능하는지까지를 헤아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돌핀>은 '파생'으로 정의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반대로 조금은 지나치고 장황하게 적은 도입부에 유리를 얹어놓고 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최근 <장사천재 백사장>에서 보여준 소탈한 모습은 소녀시대로만 알았던 유리를 '아, 이게 유리라는 사람이구나.' 하고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말 한마디 없이 꿋꿋하게 힘든 상황을 견디다 식당 반지하 계단에 앉아 울던 모습은, 예능이다 아니다를 떠나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다만 위에서 적었던 아이돌에 더해 배우, 라는 말을 덧입혀보면 이들은 분명 근원을 두고 재탄생했습니다. 즉 아이돌은 과거, 현재는 연기자입니다. 물론 약간은 시니컬하게 던지는 같은 질문, "스타인가 배우인가?" 하고 돌아보면 즉답이 어렵기도 합니다. 한선화 님을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돌고 돌아 유리 님에게도 해당하고 응원할 모습이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죠. 

영화 <돌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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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돌핀>

핏줄보다 더 진한 마음으로 품은 가족과 집이 인생의 유일한 이유이자 즐거움인 30대 ‘나영’ 갑작스러운 엄마의 재혼과 동생의 독립선언으로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떼굴떼굴 쿵! 동네 볼링장 사장 ‘미숙’과 서울에서 온 ‘해수’ 덕에 난생 처음 집 밖에서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는데... 두근두근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영화 제목으로 사용된 돌핀이라는 단어는, 없는 단어입니다. 단어적으로야 돌고래를 지칭하지만 영화에서 사용하는 의미로는 엄밀히 말해 그렇답니다. 볼링에서 거터에 빠진 볼이 튀어올라 레인 안으로 재진입했을 때, 공식 시합에서는 그대로 거터에 빠져 점수가 없는 것으로 칩니다. 그러나 <돌핀>에서 볼링장 사장 미숙은, 이를 "돌핀!" 하고 말하며 예기치 않은 행운이나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약간의 좋은 운으로 비유해 사용합니다. 

짧게 적힌 세 줄을 조금 더 늘여보면!

주인공 나영은 서천이라는 시골에서 삽니다. 엄마인 정옥과 동생인 성운이 함께 살지만 이제 고3인 성운과 아버지가 다릅니다. 나영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탓에 엄마 친구인 정옥이 나영을 키웠습니다. 그러하기에 서천과 과거, 집은 나영에게 특별합니다.

이들 셋이 삶을 영위하는 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가 이어집니다. 나영은 서천 소식지를 만들고, 엄마가 운영하는 성운 공구(가내 수공업 같은, 정확히 묘사가 안 되었던 듯해요)에 일하는 이들에게 매일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구로에서 선반일을 하던 외지인 해수가 엄마의 공장에 일하러 오고, 나영은 (동거하던 남자를 보내고)볼링장을 운영하는 '외지인이었던' 미숙을 인터뷰합니다. 

그사이 엄마 정옥은 집을 팔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스무 살이 되면 성운은 서천을 떠나 서울로 뜨겠다는 말을 해수에게 합니다. 

성운은 서울이 도피처이자 자유라고 생각하는 반면, 나영은 서천이 그야말로 터전입니다. 그러하기에 집을 중심으로 가족인 정옥과 성운, 서천에 사는 사람과 외지인 사이에 반목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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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파생

말과 인간은 공통점을 가졌습니다. 탄생하고 성장하며 활황하다 퇴조하며 결국 사멸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돌핀>에서 열아홉 살인 성운은 성장해 갑니다. 즉 어른이 되어 갑니다. 주인공인 나영은 활황하고 있습니다. 엄마인 정옥은 이제 퇴조해 갑니다. 

어른! 같지만 다른.

여기서 하나 살펴보자면, 어른의 어원은 '얼우다'입니다. 남녀가 성적인 행위를 갖는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시집이나 장가를 간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고 명사화되어 '어른'으로 파생했습니다. 하나의 근원에서 갈려나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로 탄생한 것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얼우다'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사어가 되었습니다. 즉 사멸하고 말았습니다. 

얼우다에서 나왔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단어 어른! 이는 '가족'과도 같습니다. 

우리네 엄마들은 자신의 딸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저년 속은 하나도 모르겠다!"라고. 이는 그대로 파생이라는 단어로 설명 가능합니다. 분명 한때는 같았으나 다른 가지가 되고, 성장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엄마들은 쉽게 속단합니다. 내 배에서 나왔으니 (명령하며)이래도 된다고. 그러나 파생한 자식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사람 즉 인격체로 삶을 살아갑니다. 

<돌핀>에서 정옥은 (적어도)세 번째인 남편을 만나 새삶을 꾸리려 합니다. 선비였던 나영의 아버지, 꺽다리라 불렸다는 성운의 아버지에 이어 서천 소식지에서 나영의 상사이기도 한 국장과 부부가 되려 합니다. 그러며 지긋지긋하고 관리가 어려운 넓은 단독주택을 떠나 아파트에 들어가려 하지요. 보기에 따라 서천을 떠나려는 겁니다. 

새로운 삶에 마치 새로운 집이 필요한 것처럼!

반면 딸인 나영은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예물인 고물시계를 지금껏 차고 다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운 공구 직원을 가족으로 여기며 그들의 식사 하나하나를 챙겨왔던 바탕에는 엄마와 다른 사람인 나영의 삶이 집에 묻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엄마 정옥의 모습은, 가족이라 쉽게 속단하는 일반적인 우리 부모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딸이기에 또 아들이기에 응당 말하면 따를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일반적이며 보통인 부모. 

여기서 균열이 틈입합니다. 

우리는 한 집에 살기에 삶을 공유한다고 착각합니다. 한 집에 살기에 다소나마 시간을 공유할지언정 삶을 공유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탄탄한 공감대와 결속력을 가졌다하나 가족 개개인은 결국 사람입니다. 각자의 삶을 가진!

 

가족이기에 같다고 생각한 정옥이 나영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하기에 <돌핀>은 삶의 파생에서 사람의 파생으로 전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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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파생

다름이 틈입한 정옥과 나영이라는 '두 사람'. 나영은 균열처럼 틈입한 '사람의 다름'을 외지인인 볼링장 사장 미숙과 그 속에서 볼링을 가르쳐 주려는 해수에게로 관심을 돌려 메우려 합니다. 삶의 파생이 다름으로, 다름의 균열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해 파생한 것입니다. 그러며 굳이 몰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외지인)에게 나영은 불필요한 관심을 두는 것으로 균열을 내버려둡니다. 결과적으로 울타리 바깥과 울타리 안, 가족과 남, 그러한 경계를 은연 중에 놓아 균열은 균열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방치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심리학으로 치면, 일종의 미루기입니다. 

최근 모 방송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동귀 교수님의 연구 분야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스티븐 킹을 비롯한 대가들의 글쓰기를 모았던 어느 책에서는 이를 '작업 회피 계획'이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석학들이 이러한 회피를 다루었고 반드시 인간에게 있는 것으로 확언했더랍니다. 

당연하게도 삶이 만들어낸 파생이 사람에게로 왔을 때 이를 미루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안이하다는 단어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삶, 즉 사람이 만들어낸 삶의 파생은 그만큼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것이 정답이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삶과 사람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삶은 삶일 수 없고, 그러하기에 사람의 파생은 관계로 확대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미루는 나영을 엄마는, "그냥 가만있는 것 아니고!"라며 다그칩니다. 

이를 쉽게 묻는다면 이런 질문이 될까요?

"나에게 사람(타인)은 무얼까?" 

이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는 분이라면, 매우 직관적이거나 주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발명된 이후, 영화는 인간의 삶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기록하는 것에 천착해 왔습니다. 나에 대한 것을 깊이 있게 다루면 심리가 되고, 나와 타인 즉 나와 사람 사이의 심리나 행동을 정립화하는 것은 철학이 됩니다. 나와 사람을 넘어 문화까지 아우르는 기록은 인문이 되고 이를 학문으로 바꾸면 인문학이 됩니다. 이를 기록하고 저장하면 그대로 영화가 됩니다.

영화는 치열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거든요. 인간의 망상까지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과학을 기반한 이야기를 창조하면 SF가 되고, 과거부터 있음직했던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해 다루면 판타지가 됩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되짚어 인간의 삶을 기록하고 나와 타인 즉 사람을 치열하게 다루고 기록한 것이 결국 영화입니다. 그러하기에 집을 버릴 수 없는 나영을, 또 집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려는 성운을, 또 새 남편을 맞아 가족 모두가 새출발하기를 원하며 이사하고 싶은 정옥을 그려낸 것은 분명한 영화이지요. 얼개와 사건이 크지 않다고 해서 작은 영화라고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치열하지 않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이렇게 미루어두는, 즉 정옥이 나영에게 가만있는 것 아니냐, 다그친다고 해서 나영의 삶이 치열하지 않다 말할 수 없습니다.

무면허인 성운이 누나와 다투며 집을 떠나려고 차에 오른 장면에서, 나영은 처음으로 동생과 극한으로 대치합니다. 뒤이어진 나영은 엄마에게 절대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들 셋은 분명 같은 삶을 살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이 다름은 사람을 넘은 관계에 해당합니다.  삶에서 사람으로, 그러나 더는 관계로 파생해가지 못하는 세 사람의 균열은 결국 파멸로 끝나고 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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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파생

외지인인 해수는 오히려 서천 사람인 나영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갑니다. 함께 바닷가에도 갑니다. 그런데 이 외지인이 묻습니다. 

"나영 씨는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나영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그냥 가족들, 사람들이랑 함께 있을 때요!"

함께 있을 때. 삶을 사는 사람이 만들어낸 관계, 바로 함께 있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대답을 한 나영에게 해수가 한 번 더 묻습니다. 나영 씨만의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그런데 꼭 즐거워야 할 필요가 있나요"라며 나영이 쉬운 질문에 어려운 답을 합니다. (선비)아빠와 엄마의 예물이었던 고물 시계를 찰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느냐며. 그러며 에둘러 말합니다. "오늘도 내 할 일 열심히 하자. 오늘도 지켜내자." 

"뭘 지켜내요?" 해수가 되묻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거,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니까. 그런데 다 사라질 것 같아요."

삶을 부여잡고 서천에 있는 집에서만 살아왔던 나영은 관계의 파생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파생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엄마 정옥과 동생 서운을 비롯한 사람들입니다. 이를 알지 못하기에 나영은 집을 떠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지 못하기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지켜내자, 라는 나영의 주문은 이러한 모두를 알아차리지 않는 한은 결국 공허한 말로 남을 따름입니다. 

앞서 영화라는 말을 빌어 썼습니다만, 인간의 관계는 쉽고도 어렵습니다. 평생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도 아내에게 막말하거나 반대로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심심찮게 사기를 당하거나 사기꾼이 되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인데도 비교  문화를 몰라 자신도 모르는 차별을 일삼기도 하니까요. 

더해서 안다는 것이 모른다의 반대라 생각하기 쉽지만, 안다의 반대는 속성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합니다. 더불어 안다는 것은 그 앎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앎에 대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착각하게도 합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소재인 볼링만 해도 그렇거든요. 볼링은 좌우 20개의 보드(쪽)로 이루어져 대부분 40개의 보드로 이루어졌다 착각합니다. 또한 볼링을 점수를 획득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300점이라는 만점에서 차감하는 운동입니다. 

되돌아와 정옥은 딸인 나영과 아들인 성운을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알기 때문에 은연 중에 지배할 수 있다, 또는 관리할 수 있다 생각하고요. 그러하기에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나영이 삶을 너머 사람이라는 데까지 판단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관계는 절연되고 파생은 거부당하게 됩니다. 이는 원하든 원치 않든 나영의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치열하게 기록해 온 인간의 모습처럼, 삶을 영위하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온 집에는 기록이 남기 마련입니다. 서울에 가려는 성운도, 동생을 붙잡고 싶은 나영도, 집에서 떠나려는 정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떠난다는 건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반합, 즉 관계의 파생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성운을 서울에 보내려면 다름을 알아차려야 하고, 각자의 삶이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더해서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함을 넘어,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나영이나 정옥을 보는 성운에게서도 마찬가지로 기능해야 합니다. 파생한 관계는 독립적이며 근원을 떠나 새로이 탄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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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의 결과

'가족'이라는 말은 참으로 희한하게 사용됩니다. 가족은 사전 상에서 같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누구 집'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영화 속 "나영이 집" 같이 말입니다. 되짚어 보면 우리 한국인에게 특히나 특별한 집은, 그래서 놓칠 수 없는 삶의 시작이자 사람의 터전이며 관계의 종말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의 따로 또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단순히 장소를 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오롯이 존재하는 곳으로. 

집을 떠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떠난다는 것이니, 느끼기에 따라 버린다는 의미로 다가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비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나영도, 꺽다리라 불리던 아버지에게서 난 성운도 서로 한 집에서 살아왔고, 장소를 옮긴다고 해도 '얼우기' 전까지는 같은 집에서 살아가겠지요. 나영이 집, 성운이 집에서요. 그리고 정옥의 집에서 말입니다. 누가 불러도 나영이 집, 하면 가족을 말한다는 것을 문맥 상 알아차릴 것이고, 정옥 씨 집, 해도 마찬가지일 거니까요. 

 

파생의 결과, 는 물론 영화로 확인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떻게 귀결했을지!

 

나는 살고, 가족과 터전을 이루고, 사람으로 기능하며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겠지요. 답할 수 없는 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균열이 틈입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모르는 행운이 찾아온다면 그걸 내 식으로 부르며 쿡쿡 웃으며 좋아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화 속 미숙이 "돌핀!" 하고 외치던 것처럼요. 

어느 소설가가 표현했던 "사람은 사람이기에 살아가는 게 고통이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문장은, 문장 내에서 기능하는 단어로 인해 한국인만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으로 파생합니다. 이를 번역하려 들면 말이 가진 맛이 사라지고 말 겁니다. 영화 <돌핀> 속 가족의 모습은, 그대로 번역하기에는 이 문장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네, 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우리만의 말맛! 앞으로도 나영네는 살아가겠지요. 사람이니까 삶을 영위하며. 그리고 이 영화를 파생이라는 말로 대변했지만, 결국 이렇게도 정리하고 싶어집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어 돌고 돌아 길게도 쓴 아이돌 파생, 배우 권유리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과하지도, 또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 영화 속 나영으로 잘 파생했더랍니다. 앞서 이야기를 다시 끌고와 말하자면, 유리가 연기로 영화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고 칭찬해 주고 싶네요. 잘하셨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배두리 감독님, 앞으로 뚝심 있는 영화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감독하기 어려운 거 누구보다 잘 안답니다. 그러니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말미에 붙여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삶과 사람, 관계에 관한 파생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과장하지 않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어디에서도 볼 법한,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을 이야기를 볼링과 '돌핀'이라는 단어로 갑툭튀 일어날지 모를 내 삶의 작은 파장에 대해 고전적이지만 분명하게 다룬 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영화가 결국 영화로 기능하는 것은 내 속에 들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겁니다. 그게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습니다. 내 속에 들어온 기능이 삶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 기능할 때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누군가를 넘어 천만이라는 수치로 나타날 때도 있을 겁니다. 

한때 사양산업이자 외면 받는 운동이었던 볼링이, 특히 <20세기 소년>에서 들판에 내버려진 동강 난 허수아비처럼 다루어졌던 볼링이, 회귀하여 영화의 소재로 차용된 점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러며 이런 속설 하나가 귓가를 맴돕니다. 

 

인생은 돌고 돈다!

 

살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내 삶을 위해 야멸차게 사람을 외면하고 관계를 저버렸을지도 모르지요. 반대로 기꺼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다이빙했을지도 모르고요. 파생했거나 버름해져 파멸했을지 모를 나의 나에게 오늘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돌핀!

흥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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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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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요즘 볼링장 구경하기 힘든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는게 전부군요.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
08:30
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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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작성자
이상건
늘 애정으로 읽어봐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하자면 정말 볼링장이 줄었을 텐데, 또 지금 친구들은 볼링장을 재미있어 하나 봅니다. 신기해요!
13:03
24.03.13.
profile image 2등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볼링 치곤 했는데 간만에 가보고 싶네요😊
08:54
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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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작성자
카란
옛날 사람인 저는 볼링으로 좋았던 때가 있었다지요. 그런데 함께 볼링을 쳤던 사람들은 아무도 연락되지 않네요.

세월은 가고 사람은 남는 것, 하던 시가 무상합니다.
13:05
24.03.13.
profile image 3등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 동네에 볼링장들이 몇군데 있네요. 근데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

09:29
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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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작성자
golgo
볼링 게임 비용도 이제 5천 원이 넘을 걸요. 몇 게임 치면 큰돈이 됩니다.

문득 당근에서 한 커플이 볼링 칠 모임을 만들던 걸 봤는데... 거기도 그랬겠어요. 같이 칠 사람이 없다...
13:07
24.03.13.
profile image
정성스런 리뷰 잘 읽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영화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네요^^
10:59
24.03.13.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해리엔젤

감사합니다.
소소한 삶과 거기에 틈입한 균열을 잘 그려냈더라고요. 기회 닿으면 관람하시기를 바랍니다.

13:08
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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