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11
  • 쓰기
  • 검색

007 북경특급 (1994) 주성치의 스파이 코메디. 전성기 주성치의 매력을 볼 수 있다.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2175 7 11

 

 

 

 

주성치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1990년대 같다.

B급정서가 지금처럼 높이 평가되지 않던 당시에 주성치영화는 저질코메디로 받아들여졌다. 

홍콩영화가 쌈마이영화로 사람들 뇌리에 박힌 시대다. 주성치영화는 쌈마이인 홍콩영화가 난숙기에 접어들어 

쇠퇴하고 저열해진 산물로 생각되어졌다. 쌈마이가 난숙기가 되어 더 쌈마이로 떨어졌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주성치영화를 요즘으로 비교해 보면 홍상수 영화 느낌이었다.

비슷비슷한 것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해서 영화로 부지런히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 영화가 굉장히 재미있고 

웃기고 주성치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 숨쉰다. 노력하지 않고 술술 흘려내는 것처럼 영화를 쏟아냈던 느낌이다.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겸허하고 서민적인 위치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주성치의 이 시기 작품이 그의 

가장 걸작들이라고 생각한다. 루저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루저 그 자체였던 시기다. 행오버의 켄 정 캐릭터 느낌이랄까. 옷만 안 벗었지 그런 느낌이었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의 페이소스 그리고 감동은 거기서 왔다. (이후 영화 속 주성치 캐릭터는 비록 루저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형적인 영웅이다. 과도한 자의식도 눈에 띈다.) 

 

 

중국 창녀촌 (지명이 그렇단다)에서 정육점을 하는 007은 사실 비밀첩보원이다. 그는 상부로부터 작전명령이 떨어지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는 웃통을 벗고 담배를 아랫입술에 문 채 마니티 한 잔을 옆에 놓고 열심히 식칼로 돼지고기를 썬다. 마을 창녀들에게 007은 낭만적인 세련남이다. 북경의 타락한 어느 장군은 자기가 저지른 모종의 사건을 덮기 위해 가장 멍청한 스파이를 일부러 뽑는데 그가 바로 007이다. 그는 권총 대신 돼지 잡는 거대한 식칼을 허리에 차고 사건을 해결하러 홍콩으로 떠난다. 

 

 

 

삿갓을 쓰고 상반신 벗고 사무실에 나타난 007은 장군의 비서와 개그를 한다. 

"금낭이, 옛날이랑 하나도 안 변했군."

"엄마는 벌써 돌아가셨어요. 저는 엄마 딸 목단이라구요."

"엥! 목단이, 반가워. 한번 안아볼까?"

"그건 나중에 하고 들어가보세요."

주성치 특유의 오버연기를 하면서 아주 쌈아이스럽게 개그를 한다. 

주성치는 장군을 만나러 가다가 뭔가 목단이를 향해 휙 던진다. 지푸라기로 묶은 돼지 간이다.

"먹어. 돼지간이다. 미용에 좋지." 주성치는 무슨 프랑스 갱영화의 알랭 들롱처럼 무게를 잔뜩 잡으면서 

이런 대사를 진지하게 속삭이듯이 말한다. 이거 무지 웃기다. 

 

그는 중국에서 최근 발견된 엄청나게 큰 공룡화석을 누가 도둑질해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되찾으러 홍콩으로 간다. 새하얀 양복에 허리춤에 돼지 잡는 거대한 식칼을 차고 트랜치 코트를 입은 프랑스 갱영화 알랭 들롱처럼 무게 잡고 다닌다. 딱 이런 느낌이다. 

 

 

 

 

 

 

옷 벗은 켄 정이 중국 창녀촌 레드넥이 되어 알랭 들롱처럼 행동하고 쉰소리로 속삭이며 다닌다 하고 생각하면 된다. 

여자들이 이런 007캐릭터에 푹 빠지는 것도 웃기다. 진짜 잘나서 여자들이 꼬이면 루저 캐릭터가 아니다. 정말 잘 생기고 엄청난 로맨티스트고 이런 과장된 이유로 여자들이 주성치 캐릭터에 빠지니까 오히려 반어법같이 들려 쌈마이틱하게 들린다. 이 시기 주성치는 굉장히 겸허하게 망가지면서 진정성 있게 이런 연기를 했다. 

 

본드걸은 아담하고 동양적인 미인 원영의이다. 뭐 이런 타입이 섹시미를 발산한다거나 그런 것일 리는 없고, 

그냥 당시 홍콩영화 여주인공의 비련미, 전통동양적인 여성, 정에 약한 참한 여성을 연기했다. 당시 홍콩영화에 숱하게 재탕되던 캐릭터다. 그런데 이 여자도 언밸런스하게 냉혹한 암살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연인으로 위장하고 주성치를 암살하려 시도하며 괴로워한다. 성춘향이 기관총을 들고 냉혹하게 사람들을 죽이려 하며 갈등 괴로워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정도 캐릭터가 있으면 영화는 자동적으로 흥미진진하게 굴러간다. 천의무봉으로 슬슬 자연스럽게 만든 것 같은데,

잘 뜯어보면 아이디어가 넘친다. 이 넘치는 아이디어, 기발함, 그러면서 굉장히 겸허하게 진정성을 가지는 것이 

그의 젊을 적 영화들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주윤발은 좋아했지만 주성치는 사랑했다. 

 

주성치는 점점 더 사건의 핵심에 파고들어간다. 아니, 주성치가 가면 사건이 알아서 풀려서 핵심이 스스로 그에게 다가온다. 이게 다 그가 가지는 엄청난 매력 때문이라는 설정이다. 얼렁뚱땅한 것 같지만 

주성치 캐릭터의 힘으로 우수한 코메디가 된다. 주성치는 권총이 아니라 평소 손에 익은 돼지 잡는 식칼과 작은 칼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한다. 원영의도 갈등을 기쁘게 그만두고 주성치에게 푹 빠진다. 둘 사이에 섹드립도 나오는데, 

이것도 굉장히 웃기다. 순전히 주성치의 놀라온 개인기 덕분이다. 

 

 

 

 

 

아래 홍콩에 처음 온 주성치가 초라한 여관방에 묵자 여관여주인이 홍콩에서 유명한 아가씨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아래 여자가 여주인이다. 주성치가 못이기는 척 (?) 불러달라고 하자, 이 여주인이 주성치 바지를 벗긴다. 

"내가 바로 그 여자예요. 나 홍콩에서 유명하다구요." 그리고 주성치에게 쫓겨난다.  

 

 

 

이렇게 국산007은 홍콩서민들의 애환을 반영한 서민적인 영웅이 된다. 사건을 해결한 

주성치와 원영의는 창녀촌으로 돌아가서 정육점 주인과 아내가 되어 

개점휴업하고 포장마차 뒤에서 열심히 섹X만 한다. 둘이 얼마나 힘이 좋은지 마차가 들썩들썩하는데, 창녀촌 주민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언제 다시 문을 열지 하고 궁금해하며 그 곁을 지나다닌다.

 

 

 

영화를 "이 영화 007 흉내낸 것 아님"으로 시작하는데, 정말 007 패러디이면서도 

세부적으로 굉장히 다른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당시 중국사회를 부패한 지도층과 

그에 걸맞게 타락한 사회구조를 대차게 까기도 한다. 점잖게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대차게 까버리는 것이 

주성치의 특징이다. 

 

 

이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코메디영화의 본질에 충실하다. 웃기고 재미있다.

세부 하나 하나 아이디어가 넘치며 아주 탱탱하다. 천재의 증거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7

  • Nashira
    Nashira
  • odorukid
    odorukid
  • 유닉아이
    유닉아이
  • 다크맨
    다크맨

댓글 11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ㅋㅋㅋㅋㅋ음악부터 007 느낌나는데 넘 웃겨용~ 생각보다 낭만있는 영화라고 느꼈어용😊
22:11
22.04.29.
BillEvans 작성자
옥수수쨩
이 영화 007 흉내낸 것 아님 하고 문구가 나온 바로 그 직후 007영화 음악을 음표 몇개 바꾼 듯한 음악이 나오죠. 시작부터 무지 웃깁니다.
22:17
22.04.29.
profile image 2등
좋아하는 주성치 영화에요!
우울할때 보면 기분 풀리는 주성치 영화였는데... 다시금 봐야겠군요
22:23
22.04.29.
BillEvans 작성자
다크맨
이 영화 숨은 걸작입니다. 저도 아주 오랫만에 봤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시험대를 잘 통과한 느낌입니다.
22:31
22.04.29.
profile image 3등

원영의가 총가지고 주성치한테 겨누는 씬이 진짜 최애 장면입니다 ㅎ

아, 근데 여주인공 배우 이름이 원영의 아닌가요?

22:28
22.04.29.
BillEvans 작성자
유닉아이
아, 이런 실수가. 고치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22:32
22.04.29.
profile image
중국 총살 처형 장면은
우울할때마다
돌려보는 장면입니다ㅠ
정말 사랑하는 영화죠ㅠ
후기 잘 읽었습니다~
22:56
22.04.29.
profile image
참 재밌게 봤는데, 007(이 아닌 척 하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던 대내밀탐 쪽이 제 취향엔 좀더 좋더라구요. 전 북경특급 하면 '구급약 있소?'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정말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던...
02:51
22.04.30.
BillEvans 작성자
EST
정말 쉴 새 없이 개그가 쏟아져 나오죠. 주성치는 천재 맞습니다.
07:45
22.04.3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아마데우스][브릭레이어][분리수거] 시사회 신청하세요 2 익무노예 익무노예 5일 전10:38 6004
HOT 약스포) <해벅>후기. B급이 컨셉인 것과 만듦새가 B급... 1 스누P 2시간 전00:51 426
HOT <슈퍼맨> 새로운 예고편 공개 4 밀크초코 밀크초코 2시간 전00:51 717
HOT 2025년 5월 14일 국내 박스오피스 golgo golgo 3시간 전00:01 720
HOT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를 보고 나서 (스포 O, ... 톰행크스 톰행크스 3시간 전23:51 508
HOT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톰 크루즈의 새 스턴트..지구상 ... 4 카란 카란 3시간 전23:33 902
HOT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리뷰 4 드니로옹 4시간 전23:04 861
HOT 톰 크루즈, 칸영화제에서 맥쿼리 감독과의 협업을 언급하며 3 카란 카란 6시간 전20:51 1192
HOT 톰 크루즈, 시리즈와 함께 극장가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6 카란 카란 7시간 전20:21 1371
HOT 썬더볼츠가 흥행이 안 되긴 하군요 5 말리 5시간 전21:44 1930
HOT 디플 ‘아이언하트’ 첫 트레일러, 포스터 3 NeoSun NeoSun 5시간 전22:03 1423
HOT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어벤져스: 둠스데이> 촬영 현... 1 카란 카란 5시간 전21:38 1352
HOT 스칼렛 요한슨 베니티페어 최신호 2 NeoSun NeoSun 6시간 전21:16 918
HOT <어벤져스: 둠스데이> 엑스맨과 판타스틱4의 충돌 암시? 3 카란 카란 6시간 전21:25 1127
HOT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CGV 골든 에그 점수 94% 3 시작 시작 6시간 전21:19 759
HOT ‘위키드 포 굿‘ 첫포스터 공식 2 NeoSun NeoSun 6시간 전21:04 1054
HOT 영화 초보의 <범죄의 재구성>(2004) - 슴슴하게 간이 ... 2 매니아가되고싶은 12시간 전15:21 747
HOT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예매율 64.7% 5 시작 시작 7시간 전19:58 1028
HOT 탐 크루즈 & 크리스토퍼 맥쿼리 GQ최신호 샷들 1 NeoSun NeoSun 9시간 전18:00 1072
HOT [파이널 레코닝] 개봉 무렵에 써보는 [파묘]리뷰 2 클랜시 클랜시 10시간 전17:15 671
HOT <야당>이 세운 기록들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0시간 전17:16 1523
1175782
normal
괴짜 괴짜 46분 전02:45 131
1175781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시간 전01:59 273
1175780
normal
말리 1시간 전01:39 319
1175779
normal
갓두조 갓두조 2시간 전01:10 645
1175778
image
zdmoon 2시간 전00:56 432
1175777
image
스누P 2시간 전00:51 426
1175776
image
밀크초코 밀크초코 2시간 전00:51 717
1175775
image
golgo golgo 3시간 전00:01 720
1175774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3시간 전23:51 508
1175773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23:46 791
1175772
image
GI 3시간 전23:35 329
1175771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23:33 902
1175770
normal
Sonatine Sonatine 4시간 전23:09 417
1175769
normal
드니로옹 4시간 전23:04 861
1175768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2:52 584
1175767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2:49 400
1175766
normal
울프맨 4시간 전22:48 845
1175765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2:13 1129
1175764
normal
아이언하이드 아이언하이드 5시간 전22:13 815
1175763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2:03 1423
1175762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1:45 686
1175761
normal
말리 5시간 전21:44 1930
117576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21:43 1076
1175759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21:42 650
1175758
image
카란 카란 5시간 전21:38 1352
1175757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21:27 447
1175756
normal
카란 카란 6시간 전21:25 1127
1175755
image
시작 시작 6시간 전21:19 759
1175754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21:16 918
1175753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21:04 1054
1175752
normal
초능력자 6시간 전20:53 664
1175751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20:51 1192
1175750
image
카란 카란 7시간 전20:21 1371
1175749
image
무비카츠 무비카츠 7시간 전20:15 868
1175748
normal
카스미팬S 7시간 전20:11 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