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raSpberRy's BEST FILMS 10

2015.01.01 00:01

raSpberRy 조회 수:6784 추천:5


 2014년은 왠지 모르게 바쁜 한 해였습니다. 때문에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곤 했지요.
 이런게 모두 제 선택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간혹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으로 빠져드는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올 해의 영화로 꼽은 영화에 의외의 영화가 높은 순위에 올라 갈 때 '저게 저렇게 높게 평가될 영화인가요?'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평론가였다면 제가 지지하는 영화가 미학적으로 또 영화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주는지 각종 이론 등으로 정당화 시켜야 하는데 마음에도 내키지 않은데 영화적으로 우수하다고 억지로 그런 영화들을 순위에 두는 건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해도 전 열 편의 개봉작과 다섯 편의 미개봉작을 선정했습니다. 
 2015년은 넉넉한 한해 되어 많은 다양한 영화들에 사랑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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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side Llewyn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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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들은 웃지만 나는 아파

 사실 이 영화를 1위로 꼽으면서 다른 많은 이들은 영화의 작품성을 언급했지만 나의 경우는 이 영화의 아이러니가 영화를 보는 내 가슴을 아프게 했고 눈물짓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영화관이 참 울기 좋은 곳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닌 스크린을 보기 때문에 소리내어 울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건데, 사실 정말 감정이 휘몰아치면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코엔 형제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람들의 영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으나 아픔을 주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코엔 형제의 영화는 하나의 소동극이 일어나며 극에 등장하는 인간들을 한번 휘몰아치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 용법은 영화마다 다르게 그려지는데요, 《오 형제여 어디로 가는가》 같은 경우는 웃음의 소재로 쓰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영화에선 한 편의 지옥도를 보여주는데 사용됩니다. 저는 그래서 코엔 형제의 영화를 판데모니엄(Pandemonium)의 영화라고 제 멋대로 부르는데요,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 데이비스에게 불어닥치는 소동은 마치 그를 기다리는 추운 겨울바람만큼이나 뜻한 바대로 인생의 진도를 빼지 못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영화가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하는 모습에 영화 내내 눈물 콧물을 다 쏟고 말았지요.

 작년에도 ‘행복해 질 수 없는 재스민’ 이야기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올 해도 억척스러운 르윈씨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이젠 행복해 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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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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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들은 어느새 영화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모든 독립영화들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과거에 독립 환경으로 장편 영화는 쉽게 만들 수도 없었고 만들어진 영화중 일부는 너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류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용기내어 다루는 데까지는 나아 갔습니다. 다만 '투박해도 의도는 좋으니까'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그런 핑계도 옛 말이 되었습니다. 

 작년 2위로 꼽은 '지슬'의 경우는 4.3 사건이라는 나름 현대사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 중 하나를 사회 비판이라는 뻔한 경로보다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강렬하게 만들었다면 올 해 영화 '한공주'는 촘촘한 드라마에 나름 담담하게 그려냈음에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짜내는, 하지만 그것이 인위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박하기는 해도 당당하게 살아가던 한 여학생이 폭력에 휘말리는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 영화는 사실 고발의 위치보다는 한 인간의 뒤엉킨 삶에 대해 더 주목하고 있는데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각종 소재들을 영화속에 끼워넣고 있지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닌 결국은 인간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영화를 보는 이들 중에 공주의 상황에 몰입되어 감정 이입을 한 관객이라면 과연 내가 이런 지옥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공주 아빠로 나온 유승목 씨가 했던 "힘이 있어야 해!"라는 대사는 정말 슬프면서도 정글같은 인간 사회에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야기같아 아직까지도 가장 아프게 들리는 올해의 대사로 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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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배우 천우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가장 밝은 모습과 정신적인 충격과 피해에 사로잡힌 연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각종 연기상으로 응답을 받았지요. 그녀에게도 기쁜 한 해 였지만 그녀의 연기를 볼 수 있어 우리도 즐거운 한 해 였습니다. 


#3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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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랑을 로그인 로그아웃 하고 싶다

 사랑을 라디오처럼 켜고 끄고 싶다는 장정일의 시가 있지요. 아마 이 시를 현대에 적용한다면 '사랑을 로그인하고 로그아웃 할 수 있다면' 따위의 이야기로도 변형이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컴퓨터와 사랑에 빠진다면 인간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영화 《그녀》는 상투적인 디스토피아의 클리셰를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아마 뻔한 영화였다면 주인공 테오도르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인간관계는 많이 가려진 소위 덕후나 히키코모리 계열의 인물이며 그를 찾아오는 가상의 여인은 마치 구원할 것 처럼 그려지며 나중엔 이런 것들이 덧없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인간관계에 눈뜨게 된다는 이야기로 귀결 되었겠지만 영화 《그녀》는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들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사회 생활도 적당히 해나가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는 사람이지만 그에게 '비교적' 편한 것이 단지 가상의 인물일 뿐이죠. 성(性)적인 관계를 떠나서 언제나 곁에 있고 나의 기분을 알아주며 지적이고 가끔은 내 업무적인 부분까지 돌봐주는 사람이라면 정말 많은 이들에겐 정말 최고의 친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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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크 존즈는 이런 누구나 상상해봤을 법한 이야기를 끌고 와서 재미있는 모든 가능성을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생각할수록 뭔가 섬뜩한 결말을 남깁니다. 그것이 단지 '디스토피아'라는 이야기에 연연해서 억지로 낸 결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리 부족해도 인간은 인간을 만나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도출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왠지 가능할 법도 같은 기술의 시대에 가장 평범한 인간이 어떤 것들을 겪게 될지 약간은 주어진 정답보다는 보는 이들이 취사할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두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제 성격은 조금 이상해서인지 테오도르와 사만다와의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칵테일 빛이 감도는 상큼한 영화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영화를 전 올 해의 영화 중 하나로 올려놓으려 합니다.


 

#4
족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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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해 제게 가장 큰 웃음을 준 영화로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으로라도 높은 순위에 오를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사실 많은 이들에게 '족구' 따위는 하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학교장에게 '족구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내가 영화제나 극장에 '인도영화 좀 틀어달라'는 것 만큼이나 하찮은 수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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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뭐 그런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오히려 그 잉여러스한 모습들을 상당히 대단한 걸 하는냥 포장한다. 어릴 때 인기 있었던 만화 '피구왕 통키' 만큼이나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그렇다고 감히 통키에게 "피구가 올림픽 주종목도 아닌데 무슨 불꽃슛이나 쏘고 참 한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영화 '족구왕'은 잉여들의 세대에 소위 '철들기'라는 매뉴얼화된 인생의 전쟁터에 하얀 족구장의 트랙을 그리는 귀엽고 유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s


#5
A Walk Among the Tombst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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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했던 《룩아웃》을 만들었던 스콧 프랭크는 그의 전작이 그랬듯 감각적인 영상에 느와르적 우울증을 덧입힌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영화 《툼스톤》은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요.
 
 조금은 클리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하도 그런 영화들이 없어 오히려 오랜만에 곱씹으니 새로운 '탐정생활의 정석'과 같은 이야기 구조와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인 뉴욕의 차가운 거리는 영화의 인물 못지않게 중요하게 그려지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리암 니슨이 나왔다는 것 때문에 《테이큰》식의 액션 스릴러를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이 크겠지만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스타일리쉬한 영화를 찾는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그런 소수의 관객들에게 취향 저격 영화로 크게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
Boy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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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문가고를 떠나 보이후드를 다른 이들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겐 영화 《보이후드》는 그냥 일상적인 드라마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마치 15년정도 꾸준히 방영된 일일 드라마를 다이제스트로 꾸며놓은 것?

 이 영화는 서사 자체에는 뭔가 대단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아마 제가 이 영화를 베스트로 꼽은 건 서사보다는 꾸준히 하나를 위해 영화 속의 가족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마치 영화 속의 가족 이상으로 정말 가족 같았던 이들이 이끄는 허구의 시간이 실제처럼 느껴졌던 경이로움 때문이었을 것을 것입니다.

 귀여운 꼬마아이는 나이가 들어가며 약간 징글징글해지고 변성기도 생기며 오늘을 어떻게 즐길까하는 고민보다 내일을 어떻게 살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반면 황혼으로 접어드는 엄마는 여전히 오늘도 걱정 내일은 더 걱정으로 하루를 나지요. 분명 여느 다른 영화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서사임에도 이상하게 다른 영화와는 달리 '체감'이라는 걸 하고 맙니다.

 그런 영화라는 매체의 소격감(疏隔感)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에 두 손을 들고 맙니다. 물론 이 영화가 주는 것들에 '뭐 어쩌라고'하는 이들도 당연히 있겠지만요...
 하지만 만약 이 영화에 두 손을 들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우리가 순간을 잡아내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잡고 있다'는 말을 얼마나 공감하고 있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7
The Wolf of Wall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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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성공시대에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도 찍었던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담하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최고가 된 한 사람의 감동 실화를 기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에 부지런하게 성공해서 ‘남들처럼 사는’ 인물보다는 모로가도 서울로는 어떻게든 가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실천하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잊은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이런 욕망을 세 시간 짜리 자본주의 포르노그라피로 그려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참 적절한 영화이고 영화 속에 들어있는 저속한 그림들만 볼 게 아니고 적어도 토론하며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
Under the 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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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 더 스킨》은 하나의 낚시입니다. 마치 '그녀가 벗는다'로서 돈 벌어볼 꿍심으로 이 영화를 걸었다가 피를 봤던 영화사처럼 영화 속의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의 외적인 부분에서의 낚시이며 영화 속에서도 하나의 미끼로 이용됩니다.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고 영화를 보면서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영화 자체가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가 '어떻게 영화를 찍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고민거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과 같은 외계인(스칼렛 요한슨)의 눈과,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찍은 피사체와 껍데기만 남기고 사라지는 희생자들을 보면서 '진정한 존재'못지 않게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서 탐구하는 이 영화는 빈약해서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는 영화이기보다는 여는 상자에서 무엇을 꺼내느냐에 따라 해석이 가능한 요술상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
Act of Ki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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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넉살좋은 동네 아저씨를 통해 보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폭력성과 추악함을 보여주었던 희한한 다큐멘터리로 사실은 인물들이 영화로 인생을 재현하는 의미보다는 현재의 인도네시아의 기겁할 만한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판단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인간에 대한 내면보다는 인도네시아가 저런 곳이었나 하는 영화 외적인 생각에 대해서가 더 크게 느껴졌고 우리나라는 다행이야 하는 말이 마침표로 끝날 줄 알았는데 물음표로 바뀌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10
Inter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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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10위 자리를 놓고 어떤 영화를 놓을지 고민했습니다. 사실 순위를 억지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참 어리석은 행위이기도 한데요. 10위로 놓은 《인터스텔라》는 한 편으로는 올 해 과대평가 된 영화로도 보고 있음에도 마지막인 10번째에 올려놓은 이유는 이 영화가 드라마는 취약할지언정 영화를 만든 이의 프론티어 정신까지 비하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완벽한 영화는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똑같은 노력을 붓는다고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들인 노력이 적어도 그 만큼의 빛을 발했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과학이라는 형이하학과 철학이라는 형이상학을 접합하려 시도했던 놀란의 노력은 소계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봅니다. ‘인터스텔라’에 대한 평가야 어쨌든 이 영화로서 그는 확실히 나아간 부분이 있었기에 이 영화를 올 해 열 번째 영화로 올려놓고 싶습니다. 




 특별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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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무
 - 내 마음속으론 올 해 여름시즌의 진정한 승자. 가장 비싼 실험극. 

 끝까지 간다
 -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장르영화란 이런 것. 이빨 갈고 나온 김성훈 감독에게 갈채를

 관능의 법칙
 -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만드는 깔끔한 드라마. 

 노예 12년
 - 예속되는 인간이 겪는 비극을 정제된 시선으로 보여주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언더독 감독이 만드는 언더독에 대한 이야기. 제임스 건의 전작들에 비해 얌전하지만 그래도 사랑스럽다. 

 좋은 친구들
 - 올 해 가장 흥미로운 데뷔작. 단순하지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와 흥미로운 캐릭터로 엮어낸 밀도 있는 이야기

 런치박스 & 굿모닝 맨하탄 
 -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다른 나라에선 성공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안 풀리는 나의 슬픈 인도영화들이여... 

 행복한 사전
 - 꾸준히 하나를 이어간다는 기다림을 가르쳐주다

 셰임
 - 2013년에 봤더라면 충분히 2013년 최고의 영화가 되었을 걸작. 가끔 시간은 어긋나는 영화들이 있다. 

 비포 미드나잇
 - 《보이후드》가 순간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비포 미드나잇》은 사람들의 순간을 다룬 걸작. 우리는 12시가 끝이 아니길 늘 바라고 있진 않을까.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가 있다. 오히려 요즘 영화들을 촌스럽게 만드는 포스의 영화라면 그 영화는 걸작으로 칭송될 가치가 있다. 


 올 해 못봐서 아쉬운 영화

 그레이트 뷰티, 윈터 솔져, 레이드 2(수입사 뭐하는 데냐 제대로 좀 보자), 인터뷰, 네브라스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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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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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세 편의 셰익스피어 원작을 각색한 비샬 바드와즈감독은 이번에는 《햄릿》을 각색한 《하이더》를 발표했습니다. 햄릿이 실존했던 스웨덴의 왕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4대 비극중 하나이지요. 이 이야기를 비샬 바드와즈 감독은 카슈미르로 옮겨옵니다. 인도의 고전 시구 중에 ‘지상 낙원이 있다면 여기’라는 문구가 있는데 인도에는 그런 표현이 어울릴만한 곳이 여러 곳 있지만 카슈미르 지역이 있는 스리나가르 지역이 바로 그런 지역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지만 인간들에 의해 갇혀버린 곳. 이곳은 태생적으로 비극이 자라나기 쉬운 공간일 것입니다.

 영화 속에도 언급이 되지만 카슈미르 지역은 원래 분리-독립의 선택권을 카슈미르의 주민들에게 결정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네루가 투표를 약속했지만 실제로 그 투표는 한 번도 실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에 관련한 각종 테러들이 일어나기도 했던 지역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했다거나 고문당하거나 실종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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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단순히 주인공들이 놓인 상황의 불안함, 햄릿의 정신병에 가까운 집착이 영화를 끌어갔다면 영화 《하이더》는 현실의 공간을 개입시킵니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처음에 차갑게 시작해 뜨겁게 끝내는 점층법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감독은 인도군에 대한 존경심을 영화 크레티트 안에 표현하긴 했으나 사실상 현재 인도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기 위한 면죄부를 얻으려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 나온 인도영화중 가장 대담한 색채를 지닌 영화라는 생각도 들고요.

 평소엔 가벼운 이미지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샤히드 카푸르가 하이더 역할로 출연해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최근에 연기력에 비해 상업 영화에서 이미지를 소비한 연기파 배우 타부가 하이더의 어머니인 가잘라 역을 맡았는데 원작의 거트루드 왕비의 역할이나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에 비해 영화 《하이더》는 그 역할을 강화해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데 쓰고 있는데 이 점이 원작과 다른 점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잘 꾸려나간 대표적인 예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단 한 번의 맛살라 뮤지컬 시퀀스인데 원작에서 햄릿이 연극을 시연하는 장면과도 맞물려 있어 상당히 효과적인 전개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근래에 나온 인도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로 언급 할만한 작품이며 언젠가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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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愛の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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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쌍의 남녀가 은밀한 섹스 클럽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만한 야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성적인 것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인간의 모습을 비웃는 하나의 우화에 가깝습니다. 

 일본에서 슬리퍼 히트를 기록한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마치 스티브 맥퀸의 영화  《쉐임》이 그랬듯 노골적일 정도로 성이라는 소재를 쓰고 있지만 이를 통해 현대인의 관계에 대한 어쩌면 측은하고 혹은 쓸쓸하기도 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어두운 톤의 배경과 배우들의 노출과는 달리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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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체 하면 선악과 이전의 에덴동산의 두 인간을 생각할 법도 합니다. 계급이 없고 계산된 관계가 없는 순수한 인간은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출발하는 듯하나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계급을 나누고 그 안의 질서를 만들어 갑니다. 이미 사회화된 인간이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셈이죠.

 성관계 이상으로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 간 인간은 과연 옷을 입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면 어떻게 변할까요. 흥미로운 소재인데 저 자신을 저 야릇한 상황에 대입하자니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3
 Two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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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영화 《투 스테이츠》는 인도영화의 상투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이 영화는 기존의 발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지키는 듯 하면서 상당히 도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한 때 현실 최면적이라던 인도영화가, 상업적인 만큼 완벽할 수는 없지만,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를 많이 하는데 이 영화가 인도의 인기 작가 체탄 바갓의 실제 연애담을 토대로 한 소설이거려니와 인도의 오락영화의 색은 지키되 조금 더 사실감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현대의 변화한 인도영화의 모습을 반영하고자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최근 변화하는 여성의 입지를 보여주면서도 아직도 여전한 보수적 인도사회를 풍자하기도 하고 발리우드에서 잘 다루지 않은 다른 지역간의 충돌이라는 점은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도 매끄럽게 그려낸 이 영화는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변화하는 발리우드 영화의 모든 내외적인 지표로 언급될 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투 스테이츠》를 세 번째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4
 WOOD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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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림 촌동네를 배경으로 한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는 전원을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처럼 뭔가 느릿느릿하고 심심할 것 같지만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기적’에 나오는 흰 떡처럼 꽤 감칠맛이 나는 영화입니다.

 뭔가 벙쪄 보이는 쇼메타니 쇼타의 얼굴이 동시대의 일본 젊은이들의 얼굴의 표상이 되는 것은 그만큼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내가 본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 영화는 꽤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일본 뿐이 내일을 알 수 없는 젊은이들에게 ‘질러도 괜찮아. 스스로 답을 얻게 될 거야’ 하는 긍정의 힘을 주는 필 굿 무비가 아닌가 합니다. 


 #5
 Hawaa Haw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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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의 도시락》의 작가 아몰 굽테의 두 번 째 장편으로, 집안의 몰락으로 뭄바이 거리의 소년으로 전락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꿈과 실현 가능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작보다 더 깊어진 이야기에 인도 저소득층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너무 어둡지도 무겁지도 않게 적절한 톤과 호흡으로 영화를 끌어나가고 있으며 후반부에는 스포츠 영화의 긴장감까지 전해줍니다. 영화가 내세우는 대안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돌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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