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영화수다 [불금호러 No.84] 휴 그랜트의 최고 연기 - 헤레틱

n2.jpg

 

헤레틱 – Heretic (2024)
휴 그랜트의 최고 연기


<헤레틱>은 휴 그랜트가 1988년 켄 러셀 감독의 <백사의 전설> 이후 36년 만에 호러 장르에 재도전한 작품입니다. 과거의 풋풋한 모습과 달리, 이번에는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노련한 배우로서 악역에 도전했습니다. 빌런 연기라는 흥미로운 변신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수작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두 명의 여성 선교사, 팩스턴과 반스가 전도를 위해 한 외딴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집주인인 리드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집안으로 들인 후 자신이 진정한 종교를 찾았다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평범한 대화는 곧 위험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팩스턴과 반스는 기회를 엿보며 집을 빠져 나가려고 하죠. 하지만 지하실에 갇히고, 리드와의 사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nyZ1Oygm94qlz6YF8zhnw8NfvB6A.jpg


<헤레틱>은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독특한 스타일로 긴장과 공포를 만들어 나갑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자와 보이지 않는 것도 믿는 자 사이의 대결 구도가 특히 흥미로운데, 리드와 여성 선교사들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믿음과 불신의 인간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들의 치열한 언어적 공방은 시종일관 팽팽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긴박감을 자아냅니다. 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 대화만으로도 관객을 바짝 몰아세우며 심리적 압박감을 극대화하는 이 모든 과정이 압권입니다.


특히 리드가 교묘한 질문들로 선교사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그들이 흔들리면서도 믿음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은 마치 사냥꾼과 먹잇감 사이의 대결을 보는 듯한 스릴을 선사하죠. 단순한 종교 토론을 넘어서 서로의 신념을 시험하고 뒤흔드는 과정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대화에 빠져들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게 됩니다. 이처럼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긴박하고 몰입감 넘치는 서스펜스를 구축해낸 것은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케미스트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n6.jpg


배우들 중 단연 돋보이는 연기자는 휴 그랜트입니다. 그가 연기한 리드는 다양한 종교를 연구한 끝에 공통된 구조 속에서 신념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인물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수천 년 전 기록된 말을 근거로 무비판적으로 믿음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죠.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선교사들을 감금하고, 현란한 화술과 물리적으로 압박해 심리적 육체적으로 무너뜨려 나갑니다.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 등의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휴 그랜트는 <헤레틱>에서 세련되고 매너 있지만 동시에 내면의 사악함을 품은 리드를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소화해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리드의 초반 등장이 우리가 익히 봐왔던 로맨틱한 휴 그랜트의 모습으로, 편안함과 신뢰를 주는 외모와 행동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선교사와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조금씩 그의 두 얼굴이 드러납니다. 특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상대를 설득하고 조종하는 모습은 압권입니다.


거실 소파에서 벌어지는 토론이 팽팽한 긴장감을 끌어냈다면, 지하실은 어둠과 습한 분위기,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추가되면서 본격적인 호러의 무대가 됩니다. <헤레틱>은 제한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폐소공포증적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올드보이> <그것>을 촬영한 정정훈 촬영감독의 뛰어난 카메라 워크는 리드의 집을 미로처럼 표현하며, 좁은 복도와 계단을 통해 관객들이 주인공들과 동일한 답답함과 불안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특히 캐릭터들의 다양한 심리적 감정을 포착하는 섬세한 클로즈업은 불안과 공포, 의심과 확신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내면 깊숙한 갈등까지 함께 느끼게 만듭니다.

 

n4.jpg


(이하 두 문단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헤레틱>의 핵심 주제를 담은 강렬한 엔딩입니다.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는데, 바로 그 철학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리드를 죽인 것은 반스였을까? 아니면 팩스턴이 죽기 직전에 본 환상이었을까? 밖으로 탈출한 팩스턴의 손에 나비가 잠시 앉았다 사라지는 장면은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묘한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팩스턴의 이전 대사를 기억한다면, 손 위에 앉았다 사라지는 나비와 밖으로 나왔음에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 폰의 클로즈업은 모두 그녀의 환상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섬세한 연출입니다. 믿음과 의심, 진실과 거짓, 구원과 조작이 복잡하게 얽힌 이 미로 같은 상황에서 무엇이 현실인지는 결국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스포일러 끝)

 

ncn47Z8HC5GHYOZMQAMVeluatLe5.jpg


<헤레틱>은 철학적 주제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색적인 긴장감과 공포를 창조해내고, 여기에 휴 그랜트의 매혹적인 카리스마가 더해져 2024년 최고의 호러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한 수작입니다.

 

덧붙임...


1. <헤레틱>은 스콧 벡과 브라이언 우즈가 공동으로 감독하고 각본을 쓴 작품입니다. 이들은 이전에 호러 팬들의 찬사를 받은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각본을 공동 집필을 했습니다. 


2. 주연을 맡은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두 배우는 모두 몰몬교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성장 환경 덕분에 몰몬교 선교사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3. 휴 그랜트는 미스터 리드 악역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역할을 위해서 사이비 지도자와 연쇄 살인범에 관한 자료를 보고 연구를 했다는군요.  


4. 영화 엔딩 크레딧에는 소피 대처가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의 커버곡이 사용됩니다. 이 곡은 "Fade Into You"의 멜로디와 결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죠. 


5. 휴 그랜트는 촬영 중 미스터 리드 캐릭터에 자자 빙크스의 성대모사를 추가하면서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요. 흥미롭게도 그는 자자 빙크스가 등장하는 <스타워즈>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크맨 다크맨
99 Lv. Max Level
| |

외길호러인생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no_comments
Sonatine Sonatine님 포함 7명이 추천

추천인 7

  • Sonatine
    Sonatine
  • 카란
    카란
  • 호러블맨
    호러블맨
  • 소설가
    소설가
  • 해리엔젤
    해리엔젤
  • 콘스탄트
    콘스탄트

  • min님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6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profile image
1등 golgo 23시간 전
요 근래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연기로 압도당한 영화였습니다.
profile image
3등 소설가 20시간 전
“세치 혀로 사람을 놀리는” 정말 몇 안 되는 영화였어요. 한 번의 전환 이후 영화 후반에 실망할 분들도 꽤 계셨겠구요. 그치만 독특하고 자신만의 재미를 내장한 확실한 공포영화였습니다.
profile image
호러블맨 19시간 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본 ㅎㅎ 조만간 꼭 봐야겠어요.. 스릴있고 재미있다고 하는데
profile image
카란 16시간 전
휴 그랜트 진짜 놀랬어요👍👍ㄷㄷ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