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전쟁' 후기.. 소주 땡기게 만드는 영화?

영화 보고 좀 당황스러워서 극장을 빠져 나오는데 함께 본 지인분이 "물 탄 소주 같은 느낌"이라고 하셔서 저도 동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주를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라선지, 떠올리지 못했던 한 줄 요약인데, 그분께 양해 구하고 인용해 봤습니다.^^;
소재와 설정은 제법 신선합니다. 1990년대 말 IMF가 터진 시점이 배경이고, 당시 국민 소주 브랜드를 갖고 있던 주류 회사 '국보'가 무리한 투자로 경영 위기에 빠지자 외국계 유명 투자 회사에 자문을 의뢰하는데요. 그 외국계 회사는 자문을 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내부 정보를 빼내고 파산을 유도해 집어 삼키려 합니다. 그걸 주도하는 이는 한국 출신 이제훈,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검은 머리 외국인'이죠. 그리고 탐욕스런 국보의 경영주 밑에서 궂은 일을 하면서도 회사와 소주를 사랑하는 유해진의 캐릭터와 친분을 쌓는데요. 나중에 이제훈의 속셈을 알게 된 유해진은 배신감 느끼고, 돈만 벌면 된다는 마인드였던 이제훈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수조 원이 걸린 회사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수싸움과 배신과 협잡의 드라마 가운데 인간적 갈등과 딜레마가 이 영화의 핵심인데, 이제훈과 유해진 두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그들의 캐릭터가 피상적으로 다뤄진 것 같습니다. 직업 윤리 때문에 고뇌하는 모습과 아픈 과거사도 살짝 언급되지만, 그게 깊이 있게 다뤄지질 않고 휙휙 스쳐지나가요. 까다로운 경제 관련 용어 등 정보의 홍수 속에서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잘 안 되니,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법정 다툼 중 몇 차례 반전이 나오면서 이제 좀 흥미로워지는구나 싶을 때, 당황스럽게 엔드 크레딧이 뜨더군요. 이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실제 사건처럼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찝찝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어서 가벼운 에필로그도 나오지만, 그 부담감을 완전히 상쇄시키진 못하네요. 소주 마시며 기분을 달래야 할까요?
golgo
추천인 9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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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땐 소주병에 물로 다 채웠을테니 진심이 안담겼나봅니다. ㅎㅎ
리뷰 감사합니다!


음... 아무래도 실화 근거도 있고 해서 부담이 됐을까요? 이런건 좀 깊숙히 찌르고 들어가야 좀 맛이 사는데요.
미국 담배회사와의 전쟁을 다룬 몇몇 실화바탕 영화가 생각이 나는군요.

요즘 한국 영화를 보면서 깊은 만족을 느껴본지 오래된것 같습니다
전혀 아닌가 보군요 ㅡㅡ

영화와 무관하게 이 부분은 그냥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