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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1964). 한국형 느와르 걸작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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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해서는 한국형 느와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 전체에 철철 넘쳐흐르는 비장감과 간절함이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느와르가 한창 전성기였던 미국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느와르 걸작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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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느와르 특유의 컴컴하고 음울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암흑이 잘 살아 있다. 

갱보스가 불륜을 저지른 자기 아내를 처단한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용서하고 싶지만, 

자기가 만들어놓은 갱조직 법이 자기를 구속한다. 부하들이 갱두목을 둘러싸고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갱조직의 법대로 하라는 압력이다. 두목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처단한다. 

 

술병을 깨서 뾰죽한 유리조각으로 얼굴에 긴 자국을 그어놓은 다음, 불륜상대인 아편쟁이와 함께

창녀촌에 처박는다. 여자는 졸지에 창녀가 되어서 기둥서방이 된 아편쟁이와 함께

지옥같은 삶을 살며 돈을 갖다 바치는 신세가 된다. 

아편쟁이는 더러운 방구석에 쳐박혀서 마약을 자기 몸에 주사하며 자기파괴를 하여간다.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은 검게 썩어가고 정신은 그보다도 먼저 망가졌다. 

여자를 창녀로 내몰고 돈을 벌어오면 빼앗아서 마약을 사러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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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흉터 때문에 창녀들 사이에서도 하급이 된다. 

얼굴을 보면 도망가는 남자들을 잡으려고 싼값에 몸을 판다.

남자들에게 싼 값에 자기 몸을 사달라고 애걸하다가, 푼돈이라도 벌면 집에가서 아편쟁이에게

빼앗긴다. 쌀 살 돈도 안 남기고 가져다가 마약을 사 버리는 아편쟁이 때문에 굶주리며 산다.  

 

꿈도 희망도 없는 분위기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1960년대 초반의 전후 사회분위기가 황량한 느낌을 준다. 

이만희감독의 연출도 상당히 인상적인데, 

여자가 창녀촌의 더러운 벽들을 방황하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다가,

공중에서 멀리 여자를 찍는다. 방금까지 가까이에서 보던 여자를, 

멀리서 보니까 무슨 미로 안에 갇힌 것 같다. 검고 허름하고 그 안에서는 매춘이 횡행하고 있는

그런 미로 말이다. 그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흰 점이 이 여자다.    

이 대비가 아주 강렬하다. 저 여자가 방황하는 저 검은 골목들이

저렇게 한없이 뻗은 헤어날 수 없는 미로였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런 미쟝센이 이만희감독의 전매특허다. 정교하고 감성이 확 풍겨옴과 동시에 본질을 날카롭게 콱! 찌르는 절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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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아주 상징적이다. 1960년대 영화니까 돈 별로 안 들이고 찍은 것이다. 사실상 요즘 독립영화 찍듯이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걸작이다. 이만희감독이 천재라고 불린 이유가 있다.  

 

여자나 여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갱두목이 아내를 처단하고 괴로워하는 장면이나

모두 어떤 상징이 있는 것 같다.

여자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자기 얼굴 반쪽을 가린다. 하지만, 언젠가는 성형수술을 해서 자기 상처를 

없앤다는 꿈 하나로 버틴다. 그러다가 어느날 손님으로 온 택시기사 이대엽을 만난다.

이대엽도 창녀촌에 손님으로 온 사람이니까, 순진하거나 착한 사람은 아니다. 택시기사로 별의별 손님들을

다 겪은 닳고 닳은 사람이다. 갑자기 이대엽과 여자 사이에 강한 유대가 생긴다. 

그러니까, 멜로드라마답게 이대엽과 여자가 알콩달콩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대엽과 여자가 느닷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가 아닌 이유다. 이대엽은 몰랐다. 여자는 거기 그 자리에서 그런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갱단의 규칙이다. 이대엽과 여자는 그것을 깨려 한다. 이 영화에서 강조되는 것도 이것이다.

 

분위기가 아주 처절하고 암울하다. 여자와 이대엽이 섹X를 하려는데 창녀촌에서도 방이 없다.

할 수 없이, 사람이 잘 수 없는 더러운 방에 가서 섹X를 한다. 곰팡이로 가득 덮인 찢어진 벽지가 너덜너덜한 방이다.

그들의 사랑이라는 것도 이런 것이다. 이대엽이나 여자나 이런 사람들이다. 아마 검열 아니었으면, 이만희는 여기에다가 진짜 섹X장면을 집어넣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대엽의 누이동생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다. 이대엽의 누이동생은 호스티스다. 그녀는 대학생을 사귄다. 

그 대학생은 학생답게 정직하고 순진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거만하고 남을 속이고 돈 떼먹고 하는 사람이다.

이대엽의 누이동생과 대학생은 어느 파티에 참석한다. 마약을 모두들 먹은 듯, 기타를 치고 발광을 하며 노래 부르고 하는 광란이 펼쳐진다. 보여줄 수 없어서 그렇지 그룹섹X장면이다. 파티가 끝나고, 수많은 남녀들이 

마치 시체가 쌓인 듯 쌓여 있다. 죽어 나뒹그라진 포즈들을 일부러 취하고 있다. 한 남자가 눈을 뜨더니 흐느껴 운다. 곁에 있던 여자가 안아준다. 그러자, 저 멀리서 다른 남자 하나가 울기 시작한다. 그 곁에 있던 여자가 또 안아준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잊을 수 없이 강렬한 장면이다.

 

이만희감독이 평범한 감독같았으면, 뚱딴지같은 에피소드들이 막 뒤섞이고 복잡한 주제들이 한꺼번에 전개되는 

잡탕같은 작품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 안 그렇다. 하나로 꽉 짜이고, 처절 암울한 분위기가 강렬하고, 거장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영화다. 1960년대 만들어진 영화지만, 굉장히 과격한 영화다.            

 

갱두목은 액션영화의 거두 장동휘가 맡았는데, 억세고 잔인한 부하들을 카리스마로 억누르는 

두목역이다. 하지만, 뒤에서는 연약하다. 부하들 앞에서는 부하들 기를 죽이기 위해

자기 손등을 칼로 찍어대며 눈 하나 깜박 않지만,

혼자 남게 되자 아파서 눈물을 흘린다. 아마 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희생자들 중 한명이 아닐까 한다.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구속되어 사랑하는 여자에게 비인간적인 잔혹한 짓을 했다 -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결국 그는 자기가 만든 법을 어기고, 아내를 구한다. 

하지만, 조직에 돌아가서, "갱조직 법을 어긴 나 스스로를 처형하겠다" 하고 선언한다.

"하지만, 내가 처형되기 전에 너희들을 먼저 처형하겠다"하고서 조직원들을 모두 죽인다. 

그리고 최후에 등에 칼을 맞고 죽는다.

영화의 주제를 구현하는 인물은 여자가 아니라, 갱두목 남편이다. 카리스마 있고 남성미 넘치는 

장동휘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갱두목은 왜 갱단원들을 모두 처형했을까? "신경쓰지 마라. 그놈들은 모두 죽어도 싼 놈들이야."하고 차갑게 말한다.

이상하다. 갱두목이 갱단원들을 처형하는 장면에서, 시원하고 후련함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막막해지는 

수수께끼만 느껴진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권선징악의 처형이 아니다. 막막하고 가슴 답답한 죽음이요, 죽임이다. 

사실 영화에서, 이 갱단원들이 죽어도 싼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들은 법을 지켰을 뿐이다. 장동휘가 만든 법을 정동휘가 어기지 않도록, 장동휘를 감시하고 압박을 가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닌가? 법을 어기려는 장동휘가 문제지, 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갱단원들이 문제인가? 단원들은 법을 지키기 위해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짓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장동휘는 그들을 "악 그 자체"인 양 비난하고

잔인하게 그들을 처단한다.

자기가 창녀촌에 쳐박은 아편쟁이를 자기가 불태워 죽인다. 모순적이고 무언가 우리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 장동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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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오히려 생명력이 강하다. 순식간에 창녀촌으로 떨어져 아편쟁이에게 몸과 돈을 뜯기며 

악몽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좌절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너지면 그냥 파멸이다 하는 각오를 가지고

억지로 강하게 버텨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슬퍼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감정이입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 여자도 깨끗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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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를 사랑했기에 자기가 만든 법을 스스로 어기고 

주변인들을 죽이고 자기도 죽은 장동휘가

가장 순수함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영화를, 1960년대 이만희가 아니라, 오늘날 누군가가 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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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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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Evans 작성자
흐트러지다
유튜브에 이런 영화들이 올라와서 너무 좋았습니다.
08:08
3일 전
BillEvans 작성자
min님
좋은 영화는 서로 나누는 것이 기쁨이 배가 되겠죠.
08:09
3일 전
BillEvans 작성자
다솜97
보고서 아주 흥미로운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확실히 시대가 에너지가 넘치는 시대 같습니다.
08:10
3일 전
profile image
이 영화는 포스터만 봤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영회였네요.다음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22:31
3일 전
BillEvans 작성자
Sonatine
검열이 없었다면 이만희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 지 궁금합니다.
08:11
3일 전
profile image
이만희 감독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지요
휴일 과 원점 과 함께
23:10
3일 전
BillEvans 작성자
박감독
만추가 어디서 빨리 발견되어야 할 텐데요. 오랜 시간 동안 국내영화사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로만 전해지던 작품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08:13
3일 전
profile image
BillEvans
북한에 있을 거 같긴한데 통일이 되어야 볼 수 있겠죠
09:45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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