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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 쿠도 칸쿠로 대담 (번역글)

golgo golgo
19371 7 14
<설국열차> 일본 개봉 홍보차 일본을 찾았던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유명 각본가 겸 감독 쿠도 칸쿠로의 대담 글입니다.

거의 반나절 매달려서 옮겼는데... 하다보니 내용이 장난 아니게 길어서...
미쳤다고 내가 왜 시작했나 뼈저린 후회를..T_T
암튼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오역 같은 거 지적해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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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질주하는 슈퍼 크리에이터, 기적의 해후


영화 <설국열차> 개봉 기념 기획

쿠도 칸쿠로(각본가, 감독, 배우) & 봉준호(영화감독)

특별대담 완전판

2013년, 일본의 아침에 이노베이션을 불러일으킨 연속 TV 소설 <아마짱>(あまちゃん)은 굉장했다. 누구나 한 번쯤 입에 올린 ‘제제제じぇじぇじぇ’는 2013년도 유행어 대상을 수상. 각본을 쓴 쿠도 칸쿠로는 예전부터 “한국영화 팬”이라고 공언했는데, 직접 감독을 맡은 영화 <중학생 마루야마>에는 한국영화 <똥파리>의 감독 양익준을 캐스팅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한국영화계에서 역대 관객 동원 기록을 대담하게 갈아치우고,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실력파 서양 배우들과 함께 첫 영어 작품에 도전한 봉준호 감독이 긴급 내일(來日)! 이에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도 매료됐다는 쿠도 칸쿠로와의 긴급 특별 대담이 실현! 각자 뛰어난 각본가인 두 사람의 만남을 ‘그랜드점프’가 독점으로 다뤘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제제제’라고 말해주세요 (웃음) 쿠도 칸쿠로

봉준호: 오늘 만나 뵙게 돼서 기쁩니다. 한국에선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 씨가 해녀를 연기한 <인어공주>(2004)라는 작품이 있는데, <아마짱>도 한국에서 방영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행어 대상을 수상한 것 축하드립니다! (웃음)

쿠도 칸쿠로: 감사합니다. 한국에 들어가면 깜짝 놀랐을 때 꼭 “제제제”라고 말해주세요. (웃음)

봉준호: 쿠도 씨는 언제부터 한국영화에 흥미를 갖게 됐나요?

쿠도 칸쿠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인 <복수는 나의 것>(2002)을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네요. 특히 봉감독님의 <살인의 추억>(2003)이 강렬했죠. 마침 제가 첫 감독작 준비를 할 때에 개봉되었는데, 정말 굉장했어요. 한국영화는 스토리는 물론 코미디, 폭력 장면 등 모든 표현에서 “이렇게까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거침이 없다고 느낍니다.

봉준호: 한국인은 다들 혈기 왕성해서 사회 그 자체가 강렬하죠. 거꾸로 일본영화를 보면 담담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극히 평화롭게 느껴져요. 예를 들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2007) 같은 영화를 보면, 오직 일본에서만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끼죠. 쿠도 씨의 <중학생 마루야마>(2013)처럼 만화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도 역시 일본만의 것이라고 느낍니다.

쿠도 칸쿠로: 그렇군요. 그런데 <설국열차>를 만들게 된 계기가 원작이 되는 만화를 접하면서부터라고 들었는데요, 어떤 부분에 가장 끌리셨나요?

봉준호: 열차 그 자체에 끌렸어요. 남자들은 모두 열차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잖아요. (웃음) 일본에도 열차 오타쿠가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웃음) 이 영화에서는 계급투쟁과 디스토피아(이상향과는 반대 요소를 가진 사회)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그려져 있지만, 좁고 긴 공간을 저는 변태적인 의미에서 아주 좋아해요. <살인의 추억>에도 터널이 나오고 <괴물>(2006)에도 하수구를 등장시켰죠. 정말이지 이상할 정도로 그런 공간을 좋아해서, 기술감독으로부터 “도대체 왜 그런 데가 좋습니까?”라고 질문을 받기도 했죠. 이번 작품의 경우 상영시간 내내 그런 좁고 긴 열차가 나오기 때문에 만들기 전부터 들뜬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죠. 영화가 개봉된 후에는 어떤 감독도 더 이상 열차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하겠다, 라는 각오로 도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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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도 칸쿠로: 열차가 길기 때문에 급커브 장면에서는 앞쪽 차량과 뒤쪽 차량이 창문 너머로 서로 대치하죠. 그런 장면은 꿈과도 같은 설정이어서 특히 열차 오타쿠들이 환장할 것 같아요.

봉준호: 실제로 미국의 어느 장소에는 그런 U자 코스의 선로가 있어서 긴 열차가 거기를 통과하면 차량끼리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는 상황이 있다고 해요. 열차를 무대로 설정할 수 있는 액션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 그런 장면이 나오게 됐죠.

그런데 쿠도 씨는 감독으로서 (특히 <중학생 마루야마>를 보니) 아파트 단지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아요. 통로식 아파트의 매력을 아주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서 말이죠.

쿠도 칸쿠로: 맞아요. 일본에서는 ‘단지’라고 하는데 그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매일 얼굴을 마주친다는 것이, 뭐랄까 타인인지, 지인인지 애매한 그런 관계가 이상하다고 할까요.

봉준호: 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 단지가 등장하는데요. 그런 이상한 공간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일본과 한국은 그런 의미에서 통하는 데가 있다고 봐요. 단지는 <동경의 주먹>(1995)과 <가족 게임>(1983)에도 등장하죠. 그런 점에서 (<중학생 마루야마>를)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쿠도 씨는 <중학생 마루야마>에 양익준 감독을 캐스팅했죠? 물론 원래 배우이긴 하지만, 정말 재밌는 친구죠!

쿠도 칸쿠로: 예, 애초에 그가 맡은 역할의 시작은 ‘한류 스타’라는 설정이었고, 그런 생각으로 캐스팅을 고려했죠. 저로서는 일본 사람들 모두가 아는 ‘욘사마’ 같은 화려한 이미지가 아닌, 마니아들이 좋아할 것 같은 한국 배우를 찾았어요. 그러다 양익준 감독이 생각나서 제의를 했죠.

그런데 그가 <똥파리> 이후 굉장히 바빠서 답변을 듣기가 힘들었어요. Yes인지 No인지 확실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사실은 지금 일본에 있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처음에는 저에 대해 <GO>의 각본가라는 정도로만 알고 걱정했다는데, 만나기 전날에 <한밤중의 야지 키타>(2005), <소년 메리켄사쿠>(2008)의 감독이라는 걸 알고서 “알아서 잘 하실 테니 시켜만 주세요”라는 식으로 우호적이 됐어요. (웃음) 양익준 씨는 <똥파리>에서의 이미지 때문에 (만났을 때) 굉장히 무서웠어요. 두들겨 맞을까봐. (웃음)

봉감독님은 <흔들리는 도쿄>(2008)에서 일본의 아오이 유우 씨, 카가와 테루유키 씨와 찍었는데, 일본 배우들의 인상은 어떻던가요?

봉준호: 멋진 작업이었죠. 함께 찍고 싶은 일본 배우들이 잔뜩 있어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설국열차>에서 메이슨을 연기한 틸다 스윈튼과 함께 작업할 때도, 그녀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지만 한국 배우와 함께 찍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뭔가 찌릿찌릿 통하는 게 있죠.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씨와 함께 찍을 때도 한국 배우와 함께 찍는 것처럼 전류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외국 배우와 함께 작업할 때 그런 기분이 들지 않던가요? 그렇게 서로 통하니까 언어나 국적이 다르다고 해도 작업을 아주 순조롭게 진행할 수가 있더군요. 쿠도 씨도 양익준 감독과 그렇게 호흡이 잘 맞던가요?

쿠도 칸쿠로: 맞아요. 언어가 통하지 않은 대신, 뭔가 다른 것으로 소통하려 하니까 잘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봉준호: 다른 언어를 말하는 배우의 대사를 들으면서 감독으로서 OK를 할지 NG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현장에 통역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흔들리는 도쿄>를 찍을 때는 카가와 씨의 일본어를 들으면서 제가 마치 일본어를 아는 것 같은, 모든 언어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들더군요. <설국열차> 때도 두 번 정도 그런 경험이 있었죠.

저는 일본어의 뉘앙스나 사투리를 전혀 모르지만, 지금은 왠지 “제제제”의 뉘앙스를 알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웃음)

쿠도 칸쿠로: 정말 굉장하네요! 저희는 처음에 “제제제”라는 소릴 들었을 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거든요. 그리고 송강호 씨, 굉장히 쿨하고 무진장 멋있더군요. 이야기의 중심인물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감독님에게는 특별한 존재인가 보더군요.

봉준호: 지금까지는 서민적이면서 조금 코믹한 이미지였지만, 이번 기회로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 ‘섹시하다’는 반응도 얻었고, 쿨한 면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저도 한국에서 개봉 될 때 그 점을 어필하고 싶었죠. 그는 일본의 영화인들 사이에서 대단히 존경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류 스타들과는 조금 다르죠. 일본의, 특히 여성 관객들이 <설국열차>에서 송강호 씨를 어떻게 볼지, 그 점이 궁금하네요. 그는 저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이고 영화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대변하고 있죠. 쿠도 씨도 영화와 연극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데, 그런 존재가 있나요?

쿠도 칸쿠로: 배우 아라카와 요시요시 군...

봉준호: 저도 좋아하는 배우예요!

쿠도 칸쿠로: 아! 그렇군요! 제 첫 작품에 죽은 인간의 혼령이 저 세상에서 떠도는 설정이 있는데, 그 혼령들 전부를 아라카와 군이 연기했죠. (웃음)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벌거벗은 아라카와 군에게 20~30명 분량의 연기를 시켰어요. 의자 하나 갖다 놓고 반복해서 연기하는 식으로 꼬박 이틀 간 아라카와 군만 데리고 찍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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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카와 요시요시


봉준호: 실은 <흔들리는 도쿄> 때 그를 두 장면에 출연시켰죠. 그때 짧게 작업했던 게 아쉬워서 <설국열차> 때 출연 제안을 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았죠. 영화 속 열차 안에서 누군가 카트를 미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아라카와 군이 떠올랐거든요.

쿠도 칸쿠로: 정말요? 아깝네요! <설국열차> 정도 규모의 폭주열차는 아니지만, 당시 촬영 중이었던 <아마짱> 중에서 전차의 부역장 캐릭터로서 전차에 탑승하긴 했죠. 고작 두 칸짜리 전차긴 해도. (웃음) 그런데 이런 규모의 영화를 만들고 나면, 완전히 연소된다고 할까, 다음 작품에 대한 창작 의욕이 끓어오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요. 차기작에 대해 생각한 내용이 있나요?

봉준호: 실제로 제 안의 모든 것을 끌어냈고, 마치 나무 수액이 모두 분출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사실 한때 영화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게를 내려고 물건을 찾던 시기도 있었죠. 하지만 저한텐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아들도 있어서, 아내한테서 “무슨 소리야? 대체 뭐하는 거야? 빨리 시나리오나 써”라며 핀잔을 들었죠. (웃음)

새 작품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게 없는데, 두 가지 정도 아이디어가 있어서 이번에 그걸 시나리오로 쓰는 중이에요. 하나는 산과 초원 등 자연 환경이 많이 나와서, 야외 촬영이 중심이 되는 각본이에요.

<설국열차>는 체코의 촬영장에서 3개월 가까이 실내 촬영을 했죠. 원래 야외 촬영을 하면서 마시는 공기와 햇볕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계속해서 갇힌 공간에서 촬영하는 것이 마치 탄광 광부가 석탄을 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그래서 차기작은 자연 환경 속에서 산책하는 듯한 작품이 될 것 같네요. 쿠도 씨의 다음 번 감독 작품은 4번째가 되죠? 어떤 내용인가요?

쿠도 칸쿠로: 머릿속에서 구상은 하고 있는데, 아직 시나리오로 쓸 단계는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폐쇄된 공간에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드네요.

봉준호: 쿠도 씨의 얘기를 듣고 얼굴을 직접 보니, 늘 수많은 아이디어가 넘치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하루 중 아이디어가 17가지는 떠오르는데, 그걸 정리하는 게 힘든 타입 아닌가요?

쿠도 칸쿠로: 혼자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만,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는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뭔가가 떠오를 때가 많죠.

제가 묻고 싶은 건,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감정에 비유한다면 어떤 감정인가요? 봉감독님의 작품 가운데는 보고 나면 슬퍼지는 영화들이 많다고 느끼거든요. <살인의 추억>도 그랬는데 마지막 장면에 가서도 해결되지가 않죠. <마더>(2009)에서 춤추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심정도 그렇고, <설국열차>도 애달픈 느낌이었죠. 마지막 장면에 나름 ‘희망’적으로 끝나는 것처럼 나오지만, 보고난 뒤에 남는 인상은 ‘애달픔’ 혹은 ‘슬픔’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봉준호: ‘집착’이라는 것이 핵심으로 크게 들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인공들 모두가 각자 큰 집착을 갖고 있죠. 지금까지의 제 작품으로 말하자면 범인에게 집착하는 형사,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 등. 굉장히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데 그 집착이 해소되진 않죠. 그렇기 때문에 슬픔, 애달픔, 혹은 재미, 웃음 같은 코미디적인 요소가 스며드는걸지도요.

<중학생 마루야마>도 척추가 부러질 정도의(‘자신의 물건을 빨고 싶은’ 욕망으로 유연체조를 하는 사춘기 중학생의 장면을 가리킴) 집착이 나오잖아요. (웃음)

쿠도 칸쿠로: 하하하. 감사합니다. <설국열차>에는 특히 서양 배우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이 ‘봉준호의 개성’을 찾아가며 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부분의 전개에서 “역시!”,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발상은 다른 감독에겐 없다고 생각해요.

“왜 다들 한국 드라마만 보는 거야!”라고 분할 때가 있었죠. 쿠도 칸쿠로

봉준호: 이야기의 축인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머리칸으로 나아가는 것에 굉장한 집착을 갖고 있죠. 그는 거기에 도달하면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만, 전혀 예상 못한 진실이 거기서 밝혀집니다. 그것이 지금껏 제가 추구한 스타일이죠. 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집착이 영화를 찍는 원동력이 된 걸지도 모르고요. 그것이 해소되지 않으니까 계속 찍는 게 아닐까 싶네요.

쿠도 칸쿠로: 그래요. 해소되지가 않겠죠. 그것은 ‘언제까지고 계속 찍는다’라고 하는, 인생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인 셈이겠죠.

봉준호: 그렇게 살아간다면 젊어질 거라는 생각도 들고, 원래는 좀 더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창작이라는 건 결핍이 있어야 비로소 생겨나는 거죠.

쿠도 씨야말로 정말 수많은 창작활동을 하고 계신데, 혹시 결핍과 집착이 강한 분 아니신가요?

쿠도 칸쿠로: 그럴지도 모르죠.

봉준호: 살아있으면 여러 차례 벽에 부딪치고 또 가로막히게 되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 벽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문이었다... 즉 탈출 혹은 해방이라는 테마를 그린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쿠도 칸쿠로: 박찬욱 감독이 미국에서 찍은 <스토커>(2013)를 봤는데, 그가 한국에서 찍은 영화들과 비교해서 겉보기에 꽤 달라 보이잖아요. 배우들도 모두 영어권 사람들로 바뀌었고요. 그런 점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나 의식하고 있나요?

봉준호: 굳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려고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흔들리는 도쿄>를 찍을 때는 2개월가량 일본에서 지내면서 100% 일본 스탭들과 일본 배우들과 작업했는데, 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는 쪽이 오히려 어렵더군요. <흔들리는 도쿄>에서도 <설국열차>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과 흥분은 있었지만, 아무리 다른 환경이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영화에 스며들고 남게 된다고 생각해요. 영화와 그것을 찍는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말이죠.

쿠도 칸쿠로: 저도 똑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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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마루야마>


봉준호: <중학생 마루야마>를 보면서 상상했던 느낌 그대로의 분이시네요.

쿠도 칸쿠로: 감사합니다. 사실은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봤죠. 솔직히 일본에서 <중학생 마루야마>가 상영될 때 조금 저질스런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더군요. 초반 10~15분 정도까진 술렁이는 정도였다가 그 뒤로부터 웃음이 나오는 식이었는데, 한국 관객들은 시작부터 웃음을 터트리는 걸 보고 별 저항이 없구나, 라는 걸 알았죠. 성적인 의미에서 중학생이 척추를 부러트릴 정도로 구부리려 하는데, 그런 사춘기의 한심한 행동을 순수하게 즐기며 봐주시는 게 기뻐서, 차라리 한국에서 만들 걸 그랬나 싶었죠. (웃음)

봉준호: 한국 관객들은 척추가 90도로 꺾여도 재밌다고 생각할 걸요. (웃음) 한국 관객들은 “좀 더 보여줘”하며 즐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죠.

쿠도 칸쿠로: 저는 일본에서 쭉 TV 드라마를 만들고 있고, 2013년에 <아마짱>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전에 만든 것들은 시청률이 잘 안 나왔어요. 당시에는 “일본에서 이렇게나 열심히 드라마를 만드는데, 왜 다들 한국 드라마만 보는 거야!”라고 분할 때가 있었죠.

봉준호: 마루야마의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한류 드라마를 보는 모습이 굉장히 리얼해 보이더군요. 일본의 한류 드라마 여성 팬분들이 실제로 집에서 저런 식으로 보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마더> 때 원빈 씨와 함께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니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서 “원빈 씨!”라고 열렬히 외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이 집에서 그런 식으로 <가을동화>를 봤겠지”하고 상상했죠. 송강호 씨와 일본에 왔을 때는 하네다에 5~6사람 밖에 없었지만 말이죠. (웃음) 원빈 씨를 마중 나온 팬들을 봤을 땐 충격이었어요. <설국열차>로 송강호 씨가 일본을 찾으면 적어도 5~60명 정도는 나와 주시면 좋겠다 싶네요. (웃음)

그나저나 요즘도 일본 영화를 많이 보고 있는데, 일본 배우 중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에 나오는 키키 키린 씨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경이로운 연기라고 느꼈어요. 그녀는 세계적인 수준의 배우라는 확신이 들었죠.

쿠도 칸쿠로: 그런 견해는 나라와 언어가 달라서 나온 걸까요.

봉준호: 저는 이런 영화를 찍고 싶어요. 조연, 엑스트라 등은 전혀 등장시키지 않고 ‘송강호와 틸다 스윈튼, 키키 키린이 무인도에 불시착하는 이야기’, 소수 정예의 배우들만 등장하는 영화! (웃음) 존 부어맨 감독의 <태평양의 지옥>(1968)이란 작품에서 배우 리 마빈(미군)과 미후네 도시로(일본군)가 태평양의 한 무인도를 배경으로 두 사람만 나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쿠도 칸쿠로: 그렇군요. 제가 송강호 씨를 보고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연기뿐만 아니라 특유의 섬세함을 가진 배우에게 끌리는 법이죠. 송강호 씨는 어떤 영화에서든 그 세계에서 숨을 쉬는 인간처럼 보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는 니시다 토시유키 씨죠.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어도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주고, 연출가의 의도에 부합함은 물론, 그 상황에 맞게 절묘하게 대응해내죠.

봉준호: 놀라운 배우군요. 모든 순간을 다큐멘터리처럼 만드는 능력이네요. 그건 아무나 도달하기 힘든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이 연기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데 신경 쓰죠” 봉준호

쿠도 칸쿠로: 봉감독님은 연출자로서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할 때 엄격한 편인가요?

봉준호: 연기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잖아요. 카메라나 조명을 컨트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가능한 한 배우들이 그 안에서 연기하기 편하게 만드는데 신경 쓰지, 연기지도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연기지도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연기는 배우가 하는 것이고 감독은 “이런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조르는 입장이죠. 때문에 가능한 한 (연기하는데) 지장이 없게끔 애쓰고 있죠. 연기 디렉션을 하면서 실제로는 연기를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연기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고 있어요. 쿠도 씨는 연극 연출도 하신다면서요?

쿠도 칸쿠로: 네.

봉준호: 연극은 긴 시간을 들여 리허설을 하고 만드는데,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도 굉장히 많이 필요하겠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익숙하실 것 같은데요?

쿠도 칸쿠로: 전혀요. 저도 마찬가지로 전혀 엄격하지 않아요. 단 상대에 따라 다른데, 때로는 엄격하게 지도하게 되는 장면이 있어요. 관객이 그 장면에 반드시 집중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말이죠. <중학생 마루야마>에서는 중학생 주인공이 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여서, 여자에게 살짝 곁눈질을 하면 “그게 아니야!”라고 좀 미안할 정도로 배우를 다그치기도 했죠.

봉준호: 방금 말씀드린 대로 감독과 배우의 관계는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관계이고, 또 사람에 따라 당연히 그 자세도 대응도 달라지는 거겠죠.

쿠도 칸쿠로: 감독의 거울인 셈이죠. 그런데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굉장히 많은 영화를 보신 것 같은데, 일본 감독들 중 구체적으로 어느 분을 좋아하시나요?

봉준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저에게는 멘토 같은 존재예요. <살인의 추억>을 찍을 준비를 할 때도 이마무라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1979)을 여러 차례 보고 영감을 얻었죠.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관계자, 즉 형사들이라든가, 피해자 유족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은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범인이에요. 물론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복수는 나의 것>에 그려진 살인마를 보면서 제가 만나지 못한 연쇄살인마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된 걸지도 몰라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작품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죠. 하지만 그런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 엄청난 괴력을 가진, 마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스터피스 작품이죠.

그밖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팬이에요. <큐어>(1997), <밝은 미래>(2003)도 무척 좋아하죠.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오사카에서 찍은 <도츠이타루넨>(1987)도 아주 좋아하는데, 한국영화에 가까운 ‘무언가’가 느껴지죠.

쿠도 칸쿠로: <복수는 나의 것>과 공통되는 게 확실히 많은 것 같네요. 오가타 켄 씨가 연기한 범인의 이미지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이 망가지는 부분도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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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는 나의 것>(1979)


봉준호: 쿠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요?

쿠도 칸쿠로: 철저히 희극이라는 것에 집중했던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을 좋아합니다. ‘중희극(重喜劇)이라고 하죠. 무거운 희극. 지금 같이 작업하고 있는 미이케 (다카시) 씨도 좋고요. <두더지의 노래>라는 작품의 각본을 쓰고 있는데 오랜만에 미이케 씨와 신나는 작품을 만드니 즐겁네요.

- “관객을 사로잡는 각본을 쓰는 비결”을 갖고 계신가요?

봉준호: 저도 그게 알고 싶네요. (웃음) 시나리오를 쓸 때가 가장 힘든 건 사실입니다.

쿠도 칸쿠로: 그럼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즐거울 때는요?

봉준호: 시나리오를 쓰면서 고민할 때, 정말이지 미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요. 가장 즐거운 건 사운드트랙 작업이에요. 눈의 작업에서 귀의 작업으로 옮겨가는 단계잖아요. 어떤 의미에선 완성에 다가가는 게 느껴지는 단계라서 안도감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죠.

쿠도 칸쿠로: 저는 다른 감독과 함께 작업할 때는 각본을 쓰는 게 괴롭지가 않더군요. 촬영 전에 제 일이 끝나니까요. 제가 찍을 때는 각본을 끝내도 끝난 게 아니니까 답답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제 목을 조르는 듯한 시나리오를 쓰게 되고요... 사운드트랙 작업 때는 허전함이 앞서요. 스탭들도 점점 빠져나가고, 더빙 작업이 가장 쓸쓸하죠. 여배우에 대한 감정도 바뀌고요. 촬영 현장에선 의식하지 못했지만 편집을 하다보면 ‘더 이상 못 만난다’라는 생각에 찡한 기분이 들어요.



golgo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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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상물 번역 / 블루레이, DVD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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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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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번역 감사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니시카와 미와, 이누도 잇신, 우라사와 나오키에 이어 쿠도 칸쿠로까지...봉감독님과 일본 분들과의 대담은 늘 흥미진진하군요^^

 

봉준호 감독님 베스트 목록에서 <복수는 나의 것>과 <큐어>는 늘 빠지지 않는 듯 해요.

21:11
14.01.26.
profile image
golgo 작성자
tyu
이전 대담들은 못 봤는데..
어디 가면 볼 수 있으려나요...^^;;
21:45
14.01.26.
golgo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4639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1105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1267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307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yesd1120&logNo=40053166203

대부분 씨네21에 실렸던 것들이더군요^^
22:00
14.01.26.
profile image
golgo 작성자
tyu
감사합니다.. 찬찬히 읽어봐야겠네요..^^
22:02
14.01.26.
2등
일본은 우리의 아파트를 맨션이라고하고 맨션을 아파트라고 하더군요.일본 소설 첨볼때 헷갈렸음.오카모토 기하치 감독은
저도 대보살 고개를 참 인상적으로 봤었네요.양익준씨에게 얻어맞을줄 알았다 그래서 생각나는게,의외로 일본 영화인들이
기가 약한가 봐요.예전엔 계약서에 욕하지 말것,때리지 말것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다고.뭐 요즘은 그랬다간 큰일나죠.^^
22:22
14.01.26.
profile image
golgo 작성자
해피독
일본 사람과 아파트 맨션 대화하면 진짜 헷갈리겠네요..^^;
22:30
14.01.26.
profile image 3등

얼핏 원본 링크 봤을 때는 한 페이지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양이 장난아닌데 번역하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잘 보겠습니다 ^^

23:28
14.01.26.
profile image
golgo 작성자
쿨스
페이지 넘어가는데
두번째가 양이 더 많더라고요^^;
23:37
14.01.26.
profile image

와;;이 긴글을 다듬으시느라 고생많이 하셨겠네요;;;;;;;;


잘 볼께요 먼저 선리플후 후감상 ㅋㅋㅋㅋ

00:57
14.01.27.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고생하신 덕분에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두분다 '공간'에 대한 철학이 있으신점이 재밌습니다^^
00:58
14.01.27.
profile image
고생하셨습니다.. 잘 봤어용.. 중학생 마루야마는 진짜.. 너무 재미었는데... 변태가면은 개봉하면서 이건 왜 안할까용...
06:26
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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