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묵배미의 사랑 (1990) 박중훈, 최명길, 유해리 주연의 걸작 멜로드라마. 스포일러 있음.
우묵배미의 사랑은 지금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시대가 바뀐 탓이다. 도시화 도시화의 와중에 시골로 밀려난 소외계층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것이니까,
그들에게 감정이입하고 그 시대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어야 영화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우묵배미가 그런 곳이다. 사회의 음지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여 아둥바둥거리거나 혹은
서로 위안을 주며 살아가는 곳. 1980년대 사회는 번영으로 가고 있는데, 그들은 왜 음지에서 찌꺼기처럼
살아가는가? 두 남녀의 불륜이야기를 그린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불륜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
그들이 불륜을 저지르며 사랑을 확인하는 공간은 사회의 음지다. 불륜을 저지르며 여자는 행복한가? 아니다.
여자는 상처 입고 살았기에, 더 이상 상처를 입고 싶지 않아서 사랑을 한다.
최명길은 사회의 음지인 우묵배미에서도 불쌍한 사람이다. 남편 이대근은 사회에 나가서는 무시당하고 기죽어 산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아내를 매질하고 학대한다. 얻어맞고 눈이 밤탱이가 되어서 작은 방직공장에 나와서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하고 집으로 또 얻어맞으러 간다. 출구가 없는 절망스런 삶을 살고 있다.
바람둥이 박중훈은 최명길의 사정을 잘 모르고 그냥 이쁘장하니까 눈독 들인다. 그리고 유혹한다.
절망스런 삶을 살던 최명길은 박중훈에게 빠져들어 혼신을 다해 기댄다.
바람둥이 박중훈은 최명길과 어떻게 잘 해보자는 생각이 없다.
절망적인 삶을 팔자이자 운명이겠거니 하고 순응하고 살던 착하기만 한 여자가,
안식을 줄 수 있는 사랑을 만나자 한없이 기대었는데, 그 남자가 갖고 놀만큼 논 다음 차 버린다는 내용이다.
최명길은 절망하여 남자와 이별한 다음 우묵배미로부터 사라졌는데, 그 여자의 성격상
사회의 음지에서 더 음지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최명길 캐릭터는 아마 우리나라 영화사상 가장 절망적이고 불쌍한 캐릭터일 것이다.
이것은 박중훈에게는 쾌락 정도에 불과했지만, 최명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생명을 주는
그런 사랑이었다. 최명길이 일생일대의 연기를 이 영화에서 해서,
불쌍하고 간절하고 절망적이고 결국에는 큰 상처를 입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연기를
엄청 잘 해냈다. 이 영화를 한번 본다면, 이 영화 속 최명길 캐릭터를 잊을 수 없다.
중산층 혹은 상류층 여자가 고독해서 저지르는 불륜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장소에서
상처 받으며 사는 여자가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자기 영혼의 모든 것을 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그런 사랑이다. 상처 입은 발버둥이다. 하지만 결국 배반당한다.
애초에 박중훈의 입장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왜 최명길에게 접근하는지 다 보여주기 때문에,
그저 한없이 기대고 박중훈을 믿는 이 착한 여자가 참 비극적으로 보인다.
최명길 외에도 박중훈에게 상처 입으며 사는 또 한 여자가 나온다.
바로 전직 창녀였다가 박중훈과 결혼한 아내다. 바람 피우는 박중훈 때문에 늘 가슴 앓으며 산다.
하지만 최명길과 달리, 그녀는 강인하고 생활력 있다.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사회적으로 상승할 인물이다.
그녀와 대비되어, 최명길은 더 불쌍하게 보인다.
굉장히 잘 만든 멜로드라마다. 마구마구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했던 당대의 이야기를, 지금 와서, 만들어진 당시처럼 캐치하는 것이 가능할까?
시간이라는 잣대를 이겨내야 비로속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겠지만 말이다.
* 박중훈이 진짜 나쁜 놈인 것이, 나중에 최명길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그 여자 몸이 뜨거워서, 안으면 온몸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었지"이다. 끝까지 자기 쾌락의 대상으로 최명길을 기억한다. 그녀의 사정과 그녀가 자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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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최명길이 박중훈과 헤어진 후 잘 살거 같았어요.
최명길은 가난하고 남편에게 항상 맞고 살아 자신감없고 자신의 의지없이 살았던 여자인데
사랑을 하고 받게 되면서, 그 남자가 본처에게 귀가 잡혀 끌려가는 못난이였어도, 자신 을 찾게 되는 것으로 보였거돈요.
허망하게 끝났지만 둘이 도망도 가보고 알콩달콩 살아도 본 시간이 성장시켜준걸로요.
아마 자신감 없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면 반성하는 모양새를 하는 남편에게 다시 가지 않았을까요.
하여간! 비디오테이프 살 정도로 좋아했었네요.
'그들도 우리처럼'도 참 좋아했는데요.
그녀의 억척스런 연기에 정말이지 감동(?)을 받고 본 기억이 납니다.
1년에 한번은 꼭 다시 보고 있습니다
볼때마다 더 좋아지는 영화인데..
지금의 젊은 관객이 처음 이 영화를 본다면 다른 느낌일 것 같군요
영화도 너무 너무 좋아하지만...
드라마로 만든 <바보같은 사랑>도 최애 드라마중 하나입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