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뮬란' 초간단 리뷰(feat. 4DX with SCREENX)
1. 내 동심은 디즈니와 크게 상관이 없다. 어릴때는 일요일 아침마다 늦잠 잔다고 SBS에서 방송하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설령 운이 좋아 아침에 일어나더라도 동시간대에 MBC에서 방송하던 드라마 '짝'이 더 재미있었다. 당연히 디즈니의 만화들을 열심히 챙겨보지도 않았고 그리 재미있게 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환타지아', '환타지아 2000'이라고 답하겠다. '라이온킹'이나 '미녀와 야수', '알라딘'도 극장에서 안 본 나에게 '포카혼타스'나 '뮬란'같은 것은 아예 인연이 없는 영화였다. 당연히 '뮬란' 실사판도 썩 내키는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해 남아있는 마음 한 켠의 호기심은 "대체 뭔 영화길래 이렇게 시끄러운거냐?"라는 것이었다. 아예 무관심 속에 공개된 영화였다면 나 역시 무관심했겠지만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도 시끄러운 이 영화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 '뮬란'은 디즈니 오프닝 영상부터 뭔가 의미심장하다. 평범한 강과 숲이 나올 자리에 중국의 시골마을을 연상시키는 장소가 등장한다. 중국을 연상시키는 장소가 등장하면서 "아, 디즈니성도 중국풍일까?"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디즈니성은 늘 보던 그 성의 모습이다. 다만 성 아래 낮은 곳의 어떤 건물은 중국풍 지붕이 적용돼있다. '뮬란'은 월트디즈니가 중국자본에 립서비스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디즈니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하는 이 오프닝에서는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미국은 수년간 차근차근, 영악하게 부를 쌓아 오늘날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중국은 로또 1등 맞은 졸부처럼 갑자기 부자가 됐다. 중국은 자본으로 모든 것을 사려고 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를 한 순간에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이 오프닝은 마치 영악한 미국이 돈 많은 중국을 가지고 놀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3. '뮬란'은 중국의 이야기인 만큼 중국이 배경이다. 그러나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은 영어를 쓴다. 배경은 중국이나 이 영화의 국적은 미국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고수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썩 대단하진 않지만 고집은 있는 영화감독' 멜 깁슨을 떠올렸다. 그의 영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나 '아포칼립토'는 언어에서 이상한 고집을 부린다. 그 고집은 미국영화의 정체성을 걷어내고 배경의 오리지널리티를 더한다. 단지 언어 하나로 그게 가능해진다. '뮬란'의 배경은 중국이다. 그러나 모든 등장인물들이 영어를 쓰면서 이 영화에서 중국의 오리지널리티는 사라진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이 배경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중간계보다 낯설어진다. 이 세계는 마치 어디에도 없는 세계와 같다.
4. '뮬란'은 배경뿐 아니라 이야기조차도 낯설다. 영화의 여성주의적 서사는 잠시 접어두고라도 영화 후반부에는 실제 중국영화라면 가능할지 의문인 장면이 등장한다. 황제(이연걸)를 구한 뮬란(유역비)에게 황제는 황실근위대 장교를 제안한다. 만약 중국 선전영화였다면 뮬란은 당장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뮬란은 가족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며 개인중심적 선택을 한다. 심지어 황제는 그 뜻을 존중하기까지 한다. 실제 중국이었다면 '주석을 아버지처럼'이라는 구호를 내세울지도 모르겠지만 이 장면은 '황제보다 아버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국식이라기 보다는 대단히 미국적인 사고다(심지어 황제의 사고방식도 미국식같다). 이쯤되면 대체 이 영화에서 중국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5. 나는 '뮬란'의 애니메이션을 못봤다. 그래서 원래도 여성주의적 서사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듣자하니 마녀(공리)는 애니메이션에 없는 캐릭터라고 한다. '뮬란'이 첫 장면부터 주목한 것은 "여자는 조신하게 자라서 결혼하는 것이 가문을 돕는 일이다"라는 설명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런 사고방식이야 있었겠지만 '뮬란'에서 이것이 묘사되고 드러나는 방식은 마치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같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전면에 이런 기조가 깔리면서 역시 낯선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뮬란의 군생활과 마녀와의 만남 등은 여성주의적 서사, 여성영웅 서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 역시 중국이나 동양권 영화보다는 서양 영웅서사와 닮아있다. 여성주의적 서사 자체는 '버즈 오브 프레이' 만큼 단순하니 그만 설명하도록 하자.
6.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배경과 등장인물만 중국이지 중국적 사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만약 이 영화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중간계로 바꾸기만 해도 곧장 '반지의 제왕' 스핀오프가 될 수 있다. 이것일 '인류 보편적 이야기'라고 포장할 수 있지만 나는 이것이 서양중심의 사고라고 느껴진다. 헐리우드 영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아직 막강해서 '미국영화=인류 보편적 영화'라는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적인 것은 인류적인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영화는 미국&서양 사람들이나 재밌게 볼 영화라는 결론에 이른다. 영화는 과거 오리엔탈리즘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서양인들의 사고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BTS와 봉준호가 세계를 씹어먹어도 그들에게 여전히 한국인은 '콰찌쭈' 수준이며 중국인은 기(氣)라는 이상한 것을 쓰는 나라인 모양이다. '뮬란'은 중국과 그 문화 자체를 스크린이라는 우리 안에 가둬두고 동물원 구경하듯 구경하는 영화에 불과하다.
7. 결론: 중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들은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이다. 미국도 오만하기 자기 중심적이긴 하다. 그런데 미국은 여기에 한가지가 더 붙는다. 미국은 영악하고 약삭빠르다. 세계 정세를 주도하며 자국의 이익에 최선이 되는 선택을 한다. 미국이 중국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면서 엔딩크레딧에 중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았다 한들, 그 이면은 "너희들 덕분에 우리가 돈 벌었다"는 메시지가 깔려있다. '뮬란'은 중국문화가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보여준 사례다. BTS와 봉준호 감독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자리잡았다 한들 안심하지 말자. 영악하고 약삭빠른 미국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마음껏 활개칠 수 있도록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직도 한국과 동양의 문화는 구경꺼리에 지나지 않는다.
추신1) 이 영화를 4DX with SCREENX로 봤다. 스크린엑스 영화를 여러 번 봤지만 중앙 영상과 좌우영상의 싱크가 안 맞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는데 '뮬란' 중간에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다른 회차에서도 저랬는지 모르겠다. 의도한건지 사고인지 궁금하다.
추신2) 영화를 만든 니키 카로는 뉴질랜드인이다. 이래서 '뮬란'에 중국적 가치관이 빠진건가 싶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쿵푸팬더'를 만든 여인영 감독 생각이 났다. 나는 '쿵푸팬더'에 동양적 가치관이 얼마나 깊게 박혀있는지 다시 검증하고 싶어졌다. '뮬란' 때문에 '쿵푸팬더'를 다시 꺼내야 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추신3) 구데기 같은 액션연출해도 의자를 신나게 흔들어 제끼게 프로그래밍 한 CGV 4DX팀에 박수!!
추천인 1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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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정면 스크린엔 공리가 팔만 나온 채 대사를 말하는데 측면 스크린에 비치는 공리 얼굴은 말을 안하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뮬란을 동네 스크린X관에서 봤는데 중간중간에 벽면 영상의 싱크가 0.5초정도 느리게 보이는 부분이 몇 군데 있더라구요.
아마 모든 스크린X 상영관에서 발생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