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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강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다시 보고

영화의 가장 큰 평가잣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고 감동을 주는 영화가 걸작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가장 엄격한 잣대를 잘 이겨낸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처음 보았을 때의 어설픔 이질감은 사라졌다. 아마 고산자 김정호는 이래야 한다 하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극적이고 진지한 인물로 보통 다루어지는 김정호를,

유머러스하고 허당기가 좀 있는 인물로 그린다는 아이디어는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엄청난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해서, 

늘 진지하고 엄격한 사람이었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랴? 유머러스하고, 킬킬거리고, 장터 장사치에게 다가가 옆구리 쿡 찔러 막걸리 한 사발 얻어먹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우리는 김정호에 대해 잘 모르고, 김정호도 24시간 지도만 그린 사람이 아닌 생활인이었으리라. 

 

나는 이 영화에서의 어프로치가 기존의 비극적 영웅 김정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초인간적인 영웅이 초인간적인 일을 해내는 것이 뭐 특별하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 대동여지도의 김정호처럼, 경박하고 정많고 유머러스한 보통 사람이 

엄청난 정열과 꿈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처절히 나아가 초인간적인 업적을 낳는 것은 더 드라마틱하다. 

평범한 사람도 정열과 꿈을 가지고 그리고 그 꿈을 끝까지 쫓을 정직성만 갖고 있다면, 그 끝에서 엄청난 성취에 다다를 수 있다는 

그것이 더 감동적이다. 

 

차승원의 대표작이다. 그의 이 영화에서 연기는 정말 경지에 오른 감이 있다. 

 

이 영화는 아주 단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영화 처음 등장하는 김정호는 아이와 같다. 아이가 저 좋은 일을 할 때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김정호는 지도를 만들러 다니며 즐거워한다. 그는 지도를 만든다는 행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는다. 그저 즐거워서 한다.

김정호가 즐겁게 지도를 만들러 돌아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에. 

어린 딸 순실이가 집을 지키고, 자기를 짝사랑하는 참한 여인 여주댁이 있고, 툴툴거리면서도 지도 만드는 일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젊은이 바우가 있는 집.

 

이 영화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김정호의 일대기가 아니다. 

김정호가 어떻게 자기 집을 잃느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지도를 만들러 돌아다니던 김정호가 잠시 집에 들러서 벌어지는 일이 이 영화의 소재다.

영화 처음에는 그저 집에 오랜만에 돌아온 김정호가 벌이는 좌충우돌이 펼쳐지기에 가벼운 코메디로 보여진다. 김정호에 대해 할 말이 얼마나 많은데

코메디로 시간낭비하나 하는 짜증도 생긴다. 하지만 이것이 다 복선이다. 

그저 지도 그리는 일이 좋아 하던 김정호에게 여러가지 시련과 유혹이 닥친다. 

흥선대원군은 김정호의 업적에 대해 칭찬하면서 자기가 비싼 돈을 주고 대동여지도 목판을 다 사들이겠다고 한다. 부를 손에 넣을 

기회가 생겼는데도, 김정호는 자기 지도가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쓰이길 원하지 세도가 창고에 들어가 소수에게 독점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안동 김씨 일문에서는 권력을 이용해 대동여지도를 빼앗으려고 김정호를 붙잡아다 고문한다. 손까지 잘릴 위기에 처한 김정호는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유혹을 하고, 누군가는 학대를 하고, 사람들은 미친 지도쟁이라고 무시하고, 가족들은 가난과 비참에 살고

그런데도 김정호는 자기 꿈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걷는다. 

 

그렇다고 김정호가 무슨 의연하게 "대감, 이러면 되겠소이까"하고 받아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하듯 비굴하고 벌벌 떨면서 

애걸한다. 하지만 끝에 가서 보면 결국 하는 말이, 자기 꿈은 자기 지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사용되는 것이다, 하는 말이다.

이래서 더 감동적이다. 고문 당하면 의연하게 견디는 사람이기는 커녕, 한 대만 맞아도 앓는 소리를 할 사람이지만, 자기 꿈을 위해서는

두 말 없이 고문을 받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시련을 받는다. 딸 순실이가 기독교도로 잡혀가 사형을 받을 위기에 처하고, 대동여지도를 안동 김씨 일문에 넘기는 것만이 순실이를 구할 방법이다. 딸과 대동여지도...... 딸과 자기 꿈...... 그는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러나, 그가 고민하는 사이, 딸은 고문을 받아 그만 죽고 만다. 그는 자격 없는 아버지인가? 김정호는 흔들림 없는 초인이 아니다. 평범한 아버지처럼 그도 엄청 흔들리고 고민한다. 딸이 생각보다 일찍 고문을 받다 죽지 않았더라면, 김정호는 아마 대동여지도를 갖다 바쳤을 것이다. 

 

그는 집을 불태우고, 대동여지도를 장터에서 일반대중에게 공개해버린다. 우리 땅이 저렇게 생겼단 말인가 하며 놀라는 대중들. 김정호의 노력은 일반 대중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김정호의 꿈은 이렇게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동여지도를 소유하려고 쫓던 권력자들은 이를 보고 허탈해한다. 저 미친 지도쟁이가 이런 일을 해냈단 말인가 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바우는 저 미친 지도쟁이가 만든 대동여지도가 이것이라고 소리친다.

 

집도 모든 것도 잃은 김정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는 집이 없이 안주할 곳이나 뿌리 없이 떠도는 것이다. 

지도 그리는 것이 그저 좋아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얼굴에서는 이제 웃음이 사라졌다. 

 

길 위에는 부귀도 신분도 없다. 그저 만남과 떠나감이 있을 뿐이다. 

저 산천을 만날 때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고

이를 지도 위에 담아낼 때 내 가슴은 뜨거웠다. 

그때 내 가슴은 뜨거웠다. 

 

영화는 별로지만 이 장면은 감동적이라는 평도 많았는데, 영화는 별로인데 끝만 감동적이라는 그런 것은 없다. 

영화 내내 쌓아올려진 것이 있기에, 그 맥락 속에서 끝이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련과 유혹을 겪고 자기가 가진 것들을 다 잃은 김정호가 하는 말이기에 감동적인 것이다. 

 

그리고 슬랩스틱과 우스운 장면이 나온다고 하지만 이 영화 연출은 놀랍다는 생각이다. 코믹한 장면이 나오다가 부의 유혹이나 권력의 위협같은 것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딸의 죽음이라는 시련의 클라이맥스까지 뚝 끊기거나 어색한 점프 없이 아주 자연스럽다. 빨강과 파랑을 붙이면서 위화감없이

자연스럽게 붙이는 난이도다. 더군다나 세부를 모두 흥미롭게 만들며 말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눈에 안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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