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1995)
눈의 결정은 기하학적 좌우대칭이다. 이 영화 러브레터도 그렇다. 나는 러브레터가 그토록 오래 인기를 누리는 것이 단단한 구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히로코와 이츠키라는 두 명의 여자 -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인격의 두 측면이다. 데칼코마니같은 거다.
그리고 히로코는 미래로 나아가고 이츠키는 과거로 나아간다. 히로코는 애인 이츠키를 잊으려 하고, 이츠키는 이츠키를 찾아나선다.
좌우대칭인 듯 정확하게 대응이 된다.
치밀하게 계산된 듯 구성이 아주 단단하다. 감성적인 장면이나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영화의 구성이 단단하지 않았다면, 영화가 그냥 허물어졌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소년 이츠키가 읽던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자기의 경험, 의식, 무의식, 생각, 감정 등의 실타래같은 뭉치 속에서
자아를 찾아나서는 내용을 지닌 소설이다. 이 영화 러브레터의 영감의 원천이 이 소설이다. 이 영화 속에서 이츠키가 하는 일이 이것이다. 하지만
이츠키는 자기가 원해서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히로코가 원해서 자기 기억을 탐색하는 것이다. 히로코는 자기가 원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이츠키의 기억이지
자기 기억이 아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지는 못하고 이츠키에게 이것을 부탁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츠키도 히로코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나서는 데 수동적인 존재들이다. 하지만 소년 이츠키에 대한 기억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이츠키도 히로코도 모두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츠키는 능동적으로 소년 이츠키를 찾아나서고, 히로코도 능동적으로 소년 이츠키를 받아들이고 그와
작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츠키나 히로코나 소년 이츠키를 품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히로코가 오 겡끼 데스까 하고 눈 덮인 겨울산에 부르짖는 것이다. 히로코는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 말은, 멀리서 들으라는 거다.
히로코는 멀리 있는 히로키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를 찾아낸다. 이츠키는 동시에 오 겡끼 데스까 하고 속삭인다. 이 말은, 들으려면 가까이 오라는 것이다.
이츠키는 과거의 소년 이츠키를 찾아냄으로써 그를 품는다. 그리고 소년 이츠키는 그의 앞에 나타난다. 여고생들이 가져온 책 인출기록에 그려진 소녀 이츠키의 초상화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마지막은 소년 이츠키가 이츠키를 찾아오는 데서 끝나는 것이다.
나는 러브레터가 수학공식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산만으로 영화가 이루어졌다면 감동이 없을 것이다. 진짜 예술가라면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와이 슌지는 성공했다. 눈 덮인 깨끗한 겨울의 이미지, 과거의 아련한 추억,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시절의 사랑, 행복한 일상 등을
그려냈다. 사실은 엄청나게 단단한 구성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영화 러브레터를 생각할 때면, 좌우대칭으로 정확하게 디자인되어 있는 눈의 결정을 떠올린다. 차갑고, 투명하고, 정교하고,
태양이 떠오르면 녹아 사라져 버릴 아련한 것 말이다.
P.S. 영화 처음 히로코가 눈 덮인 벌판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장면이 명장면이라고 하는데, 이만희 감독의 귀로에서 문정숙이
마을로 내려가는 아주 비슷한 장면이 있다. 이만희 감독의 귀로도 러브레터만큼 훌륭한 작품이니 많이 관람되고 이야기되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