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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7) 왜 기념비적인 영화인가?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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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접속의 가치는 영화사적으로 보아야 알 수 있지 않을까. 

 

1980년대 불안정하고 격렬한 영화들이 - 전속력으로 벽에 돌진하여 머리가 바스라지는 듯한 자기파괴적인 열정에 불타는 영화들이 

영화의 완성도에는 안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 생각해 보라. 주인공이 자기 파괴적인 자학적인 열정을 불태우는데, 카메라는 한 술 더 떠서 비장하게 

이를 담아내는 영화를. 이장호의 외인구단같은 영화를 지금 보면 도대체 왜 이 영화가 그토록 히트쳤는지 알 수 없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폭발적인 열정과 자기 파괴적인 격렬함을 가슴 안에 담고 다시 보라. 

텅텅 빈 뼈대같은 앙상한 영화에 시뻘건 열정이라는 물감을 채워넣고 보라. 영화가 다시 보일 것이다. 

물론 걸작은 이런 시대를 초월해서 감동을 주겠지만.

 

이런 열정이 식어버린 다음, 

한국영화가 안정성과 완성도를 갖추게 된 다음,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제규 감독 영화는 과도기에 있다. 

강제규 감독이 쉬리를 만들어 영화계 패러다임 쉬프트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여주인공의 행동이 

1980년대 열정을 담고 있다. 결국 여주인공도 자기 파괴적인 열정이라는 패스를 그대로 밟았다.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황장군도 사랑하는 미실공주를 좇다가 미실도 죽이고 자기도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는다. 

 

1980년대 자학적인 열정과 불안정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는 접속과 미술관 옆 동물원이었다. 당시 가벼운 로맨스물로 받아들여졌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 혁신성 면에서는 어느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접속은 여러 면에서 1980년대 기존 영화, 기존 사회와 단절을 선언한 영화다.

1980년대 영화는 사람들끼리 부둥켜안고 증오하고 사랑하는 영화였다. 거기에서 열정과 불안정성, 에너지가 나온다. 사람들끼리만 부둥켜안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회도, 사람과 계급도 모두 부둥켜안는다. 역사적 사회적 파멸적 열정적 맥락 하에서 모든 것들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 영화 접속은 철저하게 이를 부정한다. 이는 혁명적이다. 혁신이 꼭 시민 케인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오는 것이 아니다. 

 

접속은 PC 통신을 통해, 직접 만나지 않고 소통을 꾀하려 하는 사람들 간 사랑을 그렸다. 그들은 서로 아무것도 모르며 간혹 채팅을 통해 자기 일상을 단편적으로

전할 뿐이다. 그러면서 서로 치유를 해주고 사랑을 쌓아간다.  

사랑이라니?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만나지도 않는데? 서로 전하는 것이라고는 짤막한, 오늘 내가 뭐했다 정도뿐이지 않은가? 

이런 사랑이라는 개념이 혁명적이었다. 서로 PC 통신으로 알아가는데 거기 열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서로 껴안거나 함께 울부짖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파괴적인 열정이나 몸부림 외에 다른 사랑의 형태가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주 잔잔하게 일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물론 1960년대 이런 종류 영화 걸작으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이미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를 지나며 비장함, 감정 과잉, 열정 이런 것들이 과도하게 영화를 채우게 되었다.

접속은 절제됨, 감정 과잉의 배격, 사소함, 치유의 과정 이런 것들을 내세웠다. 이것이 당시 새로운 것이었다. 개인의 사랑이나 감정이 

사회적인 것이 되고 계급적 역사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 전에는 그런 것이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우묵배미의 사랑이라는 1980년대 걸작영화를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불륜을 다루고 있지만 사회와 계급의 맥락 하에서 다루어진다. 

이것이 당시에는 정상이었다.  

접속에서 말하는 가치들은 1980년대 영화 패러다임과의 단절이었다. 

 

영화가 극도의 세련성을 추구하였다. 1980년대 영화를 보면 세련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감정 과잉을 줄였더라면 

영화가 좀 더 완성도 있게 보였을 텐데, 꼭 이런 캐릭터를 집어넣었어야 했나, 이런 것들이 눈에 띄지만, 1980년대 영화는 과감하게 그런 장면들을 집어넣는다. 

왜?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 접속은 완성도와 세련성 면에서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 사람들이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새로운 배우들의 등장이다. 그들이 이때 데뷔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영화산업 선두에 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밀하고 조용하고 남들의 이야기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더 적합한 배우들 - 사회 변동의 중심에서 

과격한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는 배우들을 대체하여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영화에서는 청춘스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이들은 이후 꾸준한 성장을 통해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리는 대가들이 된다.

 

접속은 우리나라 영화사 그 어느 혁신적인 영화를 갖다 비교해보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혁신성을 가진 영화였다. 

 

접속이 가장 혁신적인 영화였나? 접속이 가장 완성도 있는 영화였나?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이 기념비적인 이유는, 이것이 어마무시하게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혁명적이면 뭐하나? 창고에 박혀있다 몇명 보고 말았다면 영화 내용과 별개로 혁명적인 영화는 될 수 없다. 

새로운 세계가 왔다고 누구도 부정 못할 만큼 대성공을 거두어야 비로소 혁명적인 영화가 된다. 

 

이 영화 접속은 그 기념비적인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걸작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듯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 귀로같은 영화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걸작으로서의 위치를 지킨다. 

그렇게 보석처럼 반짝반짝하던 것들이 모두 증발해나간 이 영화 접속이 

앞으로는 얼마나 가치를 지니게 될까?  

 

 

P.S. 트로미오와 쥴리엣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제작동기가 아주 흥미로운데, 

 

셰익스피어 연극이 당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상상하면서 

 

셰익스피어 연극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관객들에게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며 당대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을 재현해 주고 싶다 라고 했다.

 

흥미있는 시도이고 생각이다. 우리 고전영화들에 대해 이런 시도를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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