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뜬다 (1966) 유현목! 김진규! 이예춘!
유현목, 김진규, 이예춘이면 나기 전에 이미 걸작이 될 운명을 타고난 영화다.
유현목은 아주 묵직하게 주제를 옴팡지게 붙잡고 발전시켜 나가고 김진규, 이예춘은 여기 생명을 불어넣는다.
김진규는 이 역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는 김진규 개인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값을 한다.
김진규가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는 악바리 무식한 농사꾼을 연기한다. 김진규와는 안 어울리는 역 같지만 아주 잘 해낸다.
조상 대대로 척박한 땅 손바닥만큼을 가꿔왔다. 조상의 피와 땀이 어린 땅이다.
몇대에 걸쳐 한 일이라는 것이 별 쓸모도 없는 척박한 땅 손바닥만큼이라니 비참하다.
심지어 김진규의 아내는 죽으면서 자신을 그 땅에 묻어달라고 한다. 죽어 거름이 되어 그 땅을 조금이나마 기름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진규는 아내 소원을 들어주고 엄청난 욕을 먹는다. 죽은 아내까지 거름으로 쓸 독한 놈이라고. 가족들까지도 그를 이해 못한다.
그는 밭에 혼자 가서 죽은 아내와 대화를 한다.
김진규는 심술이 다닥다닥 붙은 독종이다.
송아지 타기 경주대회에 나가서 맨먼저 달리는 것도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을 다 걷어차버리고 혼자 달려갈 정도의 사람이다.
마을사람들은 불만이면서도 독종인 김진규를 X 피한다는 심정으로 안 건드린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김진규가 그 마을에서 엄청 잘 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입에 풀칠만 하고 산다.
이렇게 독종으로 악착같이 살아도 간신히 굶는 것을 면한다는 것이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말해준다.
그 마을 제일 가는 지주인 최의원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기 위해 마을에 댐을 만들 계획을 짠다. 이렇게 하면 가뭄에는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신세를 면할 수 있고 또 기름진 농토가 생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 있던 농토는 물에 잠기는데? 아내까지 거기 묻은 김진규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안봐도 뻔하다.
맨앞에 나서서 항의시위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들까지 부추긴다.
그런데 최의원이 김진규 앞에 뭔가 놓고 간다. 김진규가 돌려주려 달려나가보니 최의원은 이미 사라졌다. 열어보니 이 마을에서 가장 기름진 옥토 중의 옥토 땅문서다. 농사꾼인 김진규가 어떻게 했을지 안봐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농민들이 힘을 합쳐 근대화를 이룩한다는 국책영화다. 하지만 걸작영화다.
처음에는 근대화 물결에 온몸으로 저항하다가 그 다음에는 최의원의 회유에 자기 이익에 따라 근대화 반대세례에 혼자 투쟁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이익이
아니라 근대화가 마을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혼자 황소처럼 나아간다. 김진규가 아주 멋지게 개인기로 이 파란만장한 인물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김진규같은 배우만 있다면 감독도 흥이 날 것 같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해달라고만 하면 이렇게 화려하고 설득력 있게 구현해내는데 말이다.
김진규는 이 무식하고 독종인 농꾼을 통해 최고의 코메디, 최고의 비극, 최고의 드라마를 다 불어넣는다.
유현목 감독도 특유의 그 단단하고 묵직한 구성을 통해 메세지를 깊이 있게 전달하는 그 능력을 보여준다. 영화가 들뜨지 않고 깊이 있고 파워풀하다.
이런 단단한 뼈대 위에 그는 수많은 드라마들을 붙인다. 도마 위에서 펄펄 뛰는 산 물고기처럼 영화가 살아있다. 영화가 무언가 과잉도 없고 허술한 것도 없고
빠진 것도 없고 느리거나 빠른 것도 없다.
또 한가지 이 영화에서 좋은 것은, 농민들이 어리석어 근대화에 저항한다 하는 프레임이 없다.
농민 공동체를 영화 처음에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왜 근대화에 저항했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것을 보고 배워야 할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김진규가 혼자 온몸으로 마을 공동체의 저항을 뚫어가며 근대화를 위해 나아가는 장면은 거의 예수 그리스도 수준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걸작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다 김진규의 개인기에서 나온다.
김진규, 유현목이 각각 최고의 컨디션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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