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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봤다 (1979) 걸작

BillEvans
1849 0 0

 

 

토속적인 에로영화처럼 포스터를 만들고 문구를 적어놓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도덕적인 교훈극이다. 감독이 거장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한 정진우 감독이고, 

각본이 소설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이은성이다. 그리고 대가급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이대근과 황해 등이 주연을 맡고 있다. 25살의 유지인이 이대근의 아내 역으로 나오는데 일단 감독, 각본가, 배우가 드림팀이다. 

 

각본이 아주 좋다. 그래서 영화가 아주 탄탄해졌다. 한편의 소설로 만들어도 걸작이 되었을 것 같다. 크게 2부로 나뉘는데, 전반부에서는, 원보라는 순박한 심마니와 그의 착한 아내 그리고 가족들이 가난하면서도 순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심마니들이 산으로 산삼을 캐러가는 의식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아내가 생리를 하는 남자들은 산으로 가는 것이 금지되고, 산으로 가기 며칠 전부터 부부관계가 금지되기에, 부부관계 금지 전날은 집집마다 부부들이 바빠(?)진다. 눈치 없이 얼쩡거리는 애들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들을 위한 재밌는 놀이가 개최된다는 풍습까지. 산신령에게 제사 지내고, 까마귀가 산삼을 퍼뜨려주는 새라고 여겨 까마귀를 숭배하는 풍습이 있고, 자꾸 비가 내리자 산신령이 하산하라고 하는 조짐이 아닐가 불안해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심마니들의 세계, 의식을 묘사한다.

 

 

 

 

 

 

 

후반부에서는, 원보가 산삼을 캔 다음 벌어지는 추악한 사건을 다뤘다. 원보가 산삼을 캤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중이떠중이가 산삼을 빼앗아가려고 모여든다. 원보는 산삼을 지키려고 동굴로 가족과 숨고, 동굴 속 추위에 아들이 병을 앓자, 원보 아내는 아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간다. 원보는 마을로 가면 산삼을 뺏긴다고 말리지만, 아내는 이번만은 원보에게 대들고 바락바락 우겨서 마을로 내려간다. 하긴 아들이 죽어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있겠는가? 원보는, 산삼으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초심이, 산삼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식으로 변질되어간다. 심지어는 한 마을 공동체에서 모든 것을 나누며 살아가던 사람들조차 산삼을 빼앗으려 한다. 산삼 하나 때문에 원보 가족도 풍비박산, 원보 마을 공동체도 풍비박산되는 것이다. 현명한 원보 아내는 벌써부터 이를 예측하고 원보에게 산삼보다 중요한 것이 행복한 현재 생활이라고 하였지만, 마음이 들뜬 원보에게 이는 들리지 않았다. 

 

 

 

 

 

 

 

 

 

 

 

 

중반부에 유명한 유지인의 등짝 씬이 나오는데 사실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마 마케팅 때문이 아니었을지. 이대근이 산삼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벗은 여자 닮은 형상이 가장 가격이 높다고 하자, 여자 나체 닮은 산삼과 아내의 벗은 모습이 겹치는 장면이다. 조명도 붉은 빛깔이라 현실이 아닌 이대근의 환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미 산삼에 홀린 것이 아닐까? 그런 이대근의 모습을 보며 아내가 소름 끼쳐하는 장면이 이어지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포스터에 나오는 것은 유지인 등짝이 아니라 산삼 등짝이다.)

 

후반부도 아주 괜찮은데, 쉴 새 없이 쫓기는 이대근의 모습과, 갈수록 절박한 장소로 내몰려가는 그의 처지가 아주 잘 묘사되었다. 산삼 대신 아들의 목숨을 택하고 혼자 마을로 내려가버린 아내와 산삼을 선택하고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버린 원보는 헤어지게 된다. 

 

각본이 아주 훌륭하다. 군더더기 없이 꽉 짜여진 각본이다. 그토록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허투로 낭비되는 캐릭터 없고 잘 조율되었다. 원보의 캐릭터, 원보 아내의 캐릭터, 악당들의 캐릭터 모두 선명하다. 

 

가족과 아이를 산삼 대신 선택하는 원보 아내와 산삼을 선택한 원보 간 갈등이 영화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개념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느냐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갈팡질팡하거나 곁다리 없이 주제에 집중해서 이를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던져준다. 각본도 훌륭하고 이를 살린 정진우 감독도 대단하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이 마치 생생하게 숨을 쉬듯 선명하고 활발하다. 이 영화의 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산의 그 푸른 나무 냄새와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마을 앞을 졸졸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같은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영상 언어에 극히 관심을 갖고 추구하였다는 정진우 감독의 회심의 역작이다. 몽타쥬 기법도 나오고, 거세게 몰아치는 계곡물 물결과 조용히 떠오르는 새빨간 해를 겹치는 인상적인 장면도 나온다. 이런 기법들은 이 영화가 그냥 토속적인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을 방지한다. 캐릭터들은 마치 현실에서 뛰어나온 존재들인 듯 극히 자연스럽다. 이대근과 유지인의 연기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이 정도까지 자연스런 연기는 별로 보지 못했다. 마치 산바람과 나뭇잎 풀잎 흔들리는 소리들이 생명을 얻어 이대근, 유지인 캐릭터가 된 듯 하다. 이대근이나 유지인이나 산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산의 냄새 산의 빛깔이 깃들어있다. 

 

각본이 훌륭하고 각본의 힘이 우선 대단하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한 영상언어로 옮긴 정진우 감독도 훌륭했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동시에 드라마틱한 이대근과 유지인의 연기도 놀라웠다. 이대근은 대가급 배우임을 입증했고, 유지인은 좋은 영화에 몇편 더 나왔더라면 주저없이 대가급 배우라고 했을 텐데 참 아쉽다. 호스테스영화같은 데 더 많이 출연했으니. 이 영화, 그리고 1년 뒤 출연했던 피막 정도가 후세에 남을 영화들이다. 1960년대 대가급 감독들의 전성기에 활동했더라면 숱한 걸작에서 명연을 펼쳤을 텐데. 

 

 

P.S. 영화 처음 이대근이 딸에게 줄 고무신과 아내에게 줄 거울을 사갖고 오면서 덩실덩실 춤추며 집에 오는데, 그 기쁨이 이해 가는 이유가,  

아내가 유지인이고, 고무신 사달라고 조르는 딸이 미래의 유지인인데 어찌 오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P.S. 정진우 감독이 거장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이유가, 그의 영화 자체만 보면 괜찮은데, 신상옥 감독이나 유현목 감독, 이만희 감독, 김수용 감독, 김기영 감독 등 대가급 감독들과 비교하면 또 뭔가 빠진 것 같다. 

 

P.S. 애들은 가라 장면이 하나도 안나온다. 엄청 점잖은 영화다. 무슨 에로틱한 영화를 기대하고 보았다가는 배신감 느끼기 십상이다. 유지인의 등짝 장면도 에로틱한 것이 아니라 이대근이 보는 환상으로 이대근의 심리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P.S. 이 영화는 또다른 영화사적 의미가 있다. 해외영화제에서 느낀 경험으로 동시녹음전도사가 된 정진우 감독은

장비를 몰래 분해해서 들여와 동시녹음 영화들을 찍었고, 이 영화도 그 중 하나이다. 아마 이 영화의 그 엄청난 자연스러움도 가기 말미암은 바 클 것이다.

 

P.S. 유튜브에 고화질로 올라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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