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eb (2014) 베두윈족이 만든 아라비아의 로렌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베두윈족은 야만적이거나 로렌스의 수족이 되거나로 그려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가령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그의 친구였던 알리 족장이다. 처음엔 아라비아 풍습에 확고히 젖어있는 전사로 시작해서, 스케일이 크고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로렌스에게 감동하고 영향을 받았다가, 이상주의자로 변모하였다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가로 뛰어드는 인물이 알리 족장이니까. 로렌스가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인물이 알리 족장이다. 하지민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그는 로렌스의 오른팔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로렌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베두윈의 입장에서 본 로렌스는 어떨까? 이 영화는 베두윈족의 한 소년 입장에서 본 1차세계대전, 영국군 참전, 부족끼리의 혈전 등이다. 로렌스는 알리 족장에게 "너희들이 연합하지 못하고 부족끼리 피 흘리고 싸우는 한, 탐욕스럽고 야만적이고 잔인한 사람들일 뿐이다."라고 한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가가 잘 나타난다.
영국군 입장에서는 베두윈족을 돈 받고 영국군을 길잡이해주는 사람들로 (그리고 종종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야만인으로 ) 그려지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네가 누군가 도와준다면 정말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라"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영국군은 속셈이 있어서 베두윈들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베두윈들은 정말 성심성의껏 그들을 도우려 한다. 아마 그것이, 베두윈들이 사막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으리라.
띠브는 너무 어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년이다. 그는 마을에서 또래가 없다. 그의 형 후세인은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을 귀여워하며 여러가지를 가르쳐주고 같이 놀아준다. 그런데 마을에 영국군 한 명이 찾아온다. 위험이 득시글거리는 어떤 지역을 찾아가려는데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그 영국군을 거기까지 데려가는 길잡이로 후세인이 뽑힌다. 띠브는 후세인 몰래 후세인을 따라간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 영국군은 터키군, 아랍인들이 노리는 위험한 표적이었다. 띠브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한복판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이 어린 소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생존 본능으로 위험한 사막을 헤쳐나간다.
띠브가 바라보는 아랍의 상황은 우리나라 구한 말과 비슷하다. 터키에 대항해 싸우는 부족들이 있지만, 다른 부족들은 시큰둥하다. 터키애 대항해 싸우는 부족도 다른 부족에게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막까지 들어오는 기차는 아랍인들의 삶을 파괴한다. 사막에서 순례를 하는 사람들을 가이드하여 메카, 홍해, 레바논까지 데려가던 종족들은 기차가 들어옴에 따라 실업자들이 된다. 그들은 터키군에 달라붙어 그들로부터 돈을 버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다. "기차가 모든 것을 파괴했어. 내가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어."하고 그들은 절망적으로 말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앤소니 퀸이 분한 아우다 아부타이가 왜 돈을 안 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고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다 함께 모여서 아랍국가연합을 만듭시다"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지탱해줄 경제적 기반이나 경제적 인프라가 없는 데 말이다. 오히려 전통적인 경제 인프라가 붕괴하고 있었으니......
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베두윈 부족들도 무슨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변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 아랍국가연합을 만드는 것보다, 이들이 통합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인프라를 제시했으면 이들이 알아서 모여들었을 것이다.
영화는 위험 한가운데 떨어진 소년의 생존 투쟁이 중심축이지만, 동시에 이 소년의 생존 투쟁을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 속 비극과 연결시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가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들이 다른 불행한 사람들을 죽인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시대다. 그것은 외세 때문이다. 아랍인들이 아닌 이방인 - 영국과 터키가 아랍을 전쟁터로 삼은 때문이다. 너무 어린 띠브는 이런 거대한 사회의 격동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와 총알이 난무하는 사막을 횡단하며 이 모두를 목격함으로써 아랍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이 어린 소년 안에 강철같은 의지와 생존본능이 잠재해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감독은 띠브에게도 다른 아랍인들에게도 공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비극을 아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비극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거의 헐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미끈하다. 독창성이 없다면 없고, 완성도가 높다면 높다. 아니, 완성도가 높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높다. 너무 서구적이어서, 아랍인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한다. 헐리우드 영화적 문법이 여기까지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베두윈들은 조금 친해지면 모든 것을 나누고 터놓고 지내는 사람들이지만, 영국군은 차갑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선을 딱 긋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들 우월감을 가지고 명령 수준의 요구를 한다. 베두윈들은, 띠브는 이런 영국인이 낯설다. 영국군은 자신의 고집과 어리석음 때문에 죽지만. 베두윈 족들은 죽을 길임을 알면서도 성심성의를 다하기 위해 죽는다. 이렇게 본다면,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달리 보일 것이다. 이 영화는 걸작까지는 아니고 우수작 정도이지만, 느끼는 바가 많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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