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모호한 대상 (1977) 루이 브뤼넬의 X스 코메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는데 우리가 얼마나 고정된 틀에 갇혀 영화를 보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시작은 기차역인데 유럽 다른 국가로 가는 기차 안에서 어느 중년의 부유해보이는 남자가 초조하게 기차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척 봐도 이십대 초중반인 미녀가 달려와서 남자보고 가지 말라고 애걸한다. 남자는 그녀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양동이의 물을 퍼붓는다.
그가 탈 기차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보고 있었다. "딸같은 여자한테 저럴 수가......" "뭔가 위험해보이는 사람이군......" 사람들이 호기심 반 비난 반으로
그를 보는데, 그가 기차칸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싱긋 웃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시죠? 나는 위험하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여자입니다."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영화 처음부터 관객들의 엄청난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무리 봐도 나쁜 여자같지 않아 보이는데, 저 점잖은 신사에게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정도이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50대 홀아비 매튜는 다 가진 사람이다. 부, 명성, 신사다운 인격이라는 평판 등. 그는 판사인 친구를 찾아가는데, 판사도 매튜처럼 다 가진 사람이다. 둘은 식사를 함께 하는데, 일단 먹을 것을 앞에 놓자 판사는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퍼먹기 시작한다. 판사는 식욕이라는 욕망을 게걸스럽게 쫓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브뤼넬 영화답게 부르조아들이 가지는 탐욕과 욕망을 까발린다. 그들의 평판, 우아함도 결국 욕망을 안 드러냈기 때문에 얻어진 가식이었던 것이다.
그럼 매튜는? 무슨 욕망이 있나? 매튜 안의 욕망, 즉 X스에의 갈망을 일깨우는 일이 발생한다. 매튜가 방에 있을 때 하녀 콘치타가 들어온다. 그러자 매튜는 무슨 물 한 잔 갖다달라는 듯 태연하게 한번 달라고 한다. 하녀는 뿌리치는 것도 아니고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 미소를 던지며 방을 나간다. 준다는 거야, 안 준다는 거야? 매튜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매튜는 콘치타의 집을 찾아간다.
콘치타는 매튜를 유혹하는 듯 반나체가 되어서 뭔가 줄 듯 한다. 매튜가 잔뜩 기대하는데 콘치타는 반나체까지는 되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안 준다. 뭐 키스도 하고 몸을 막 만져도 매튜에게 폭 안기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딱 끊어버리는 것이다. 자기는 처녀라서 안된단다. 그런데 이것도 모호한 것이, 할 때마다 변명이 바뀐다. 나중에는 매튜가 자기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것같아 싫단다. 자기는 매튜와 사랑 그 자체를 하고 싶다나? 콘치타가 이러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콘치타를 두 여배우가 한다. 그러니까 일인이역이 아니라 이인일역이다. 콘치타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호한 것이다. 카롤 부케라는 여배우가 연기할 때는 당차고 야무진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안젤라 몰리나라는 여배우가 연기할 때는 육감적이고 풍만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것이 진짜 콘치타일까?
매튜가 콘치타를 쫓아다니는 안타까운 일화들이 이 영화를 채운다. 매튜라는 존재의 사회적 지위, 품격, 지성같은 것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옅어져서 나중에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콘치타는 매튜로부터 부르조아적인 위선을 벗겨내는 존재다. 매튜에게 콘치타는, 아이덴티티조차 모호한 욕망의 대상이다.
영화 내내 줄 듯 말 듯 매튜를 애태우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딱 끊어버리는 콘치타는 관객들에게도 안타까움을 준다. 콘치타는 매튜만 갖고노는 것이 아니다. 나체를 막 보여줘서 관객들도 애태운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딱 끊어버린다. 관객들도 매튜랑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다가 관객들도 욕망만 남아 콘치타를 쫓는다.
콘치타는 매튜와 저택에서 달콤한 밤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한다. 매튜는 드디어 인고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구나 하고 기뻐한다. 그런데 침대 속에 알몸으로 있는 줄 알고 이불을 확 걷었더니 콘치타는 정조대를 입고 있었다. 매튜는 이성을 잃고 정조대를 막 쥐어뜯어려다가 불가능함을 알자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콘치타는 일어나더니 매튜에게 자기 가슴을 쥐어주며 등을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매튜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매튜는 그래도 콘치타가 보수적이고 순수했기에 이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콘치타를 찾아가보았더니 누드 댄서를 하고 있다. 손님들이 찾아와 막 만지고 콘치타는 그들에게 알몸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매튜는 정말 아리송해지며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이런 콘치타가 싫어져서 그냥 콘치타를 내팽개쳐두고 떠나면 운명의 장난인지 콘치타와 자꾸 마주치게 된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콘치타가 매튜를 쫓아다니며 자꾸 마주치게 공작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매튜는 콘치타에게 방을 얻어주는데, 어느날 가보니 철문을 잠가두고 그 안에서 어느 젊은 남자와 함께 알몸으로 키스하고 어쩌구 저쩌구 한다. 마치 매튜를 경멸하고 조롱하듯이.
매튜는 정말 열 받아서 집으로 온다. 콘치타는 또 그를 쫓아온다. 매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콘치타를 막 때린다. 콘치타는 이제야 매튜의 사랑을 확인했다면서 자긴 처녀라고 매튜에게 처녀를 주겠단다. 당할 만큼 당했던 매튜는 난 이제 모른다 하는 심정으로 다른 국가로 떠나는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콘치타는 기차로 그를 쫓아온 것이다.
그런데 콘치타도 기차에 타서 매튜가 있는 기차칸까지 들어온다. 그리고 매튜에게 물 한 양동이를 퍼붓는다. 매튜가 콘치타를 쫓아가자 콘치타는 매튜에게 혀를 내밀며 메롱~~한다. 매튜는 그만 콘치타를 껴안는다. 그리고 둘은 사이 좋게 팔짱 끼고 기차를 내린다. 그렇게 가다가 둘은 또 싸우면서 서로 밀친다.
브뤼넬 감독은 관객이 콘치타도 매튜도 감정이입하는 것을 자꾸 막는다. 관객들도 매튜처럼 "언제 한번 주려나?"하고 애태우며 영화 내내 콘치타를 쫓아가게 된다. 이 영화는 관객들의 위선도 벗긴다. "너희들도 위선자들이란 말이야. 그냥 욕망 덩어리란 말이야." 하고 조롱하듯이.
이건 시작도 끝도 없다. 그 한번(?)을 바라고 콘치타를 쫓고 또 쫓는 매튜의 인생역정(?)은 결국 아무 결말도 없이 끝나버리고 만다. 어느 무정부주의자가 터뜨린 폭탄에 매튜도 콘치타도 사이좋게 가루가 된다. 관객들은 분통이 터진다. 매튜과 콘치타의 밀고 당기기는 결말 없이 갑자기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 내내 관객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분통을 터뜨리더니 이렇게 애매하게 갑자기 끝내버리면......
영화는 굉장히 코믹하고 신랄하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이것이 코메디임을 잊는 일이 없다.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재밌는 코메디임과 동시에 관객들이 몰입하지 못하도록 밀쳐내는 코메디이기도 하다. 정치적 의미가 풍부하게 함축되어 있음은 알겠다.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무정부주의자 폭탄에 매튜와 콘치타의 밀고 당기기가 갑자기 결말 없이 끝나버린다는 사건이 뭘 상징하는 지도 알겠다. 아주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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