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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막 (1980)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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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영화가 쇠퇴하고 인기를 잃어감에 따라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에로영화의 범람이었다. 

야동이란 것이 없었을 때니 소프트코어 영화가 범람한 것이다. 그래도 그중에 우수작은 있었으니 가령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심봤다. 깊은 밤 갑자기, 피막, 자녀목 등은 좋았다. 제목이 그래서 그렇지 심봤다 같은 영화는 주제의식이나 스토리나 토속적인 화면이나 구성이나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딱히 에로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인 교훈극에 가깝다. 

피막은 일단 시나리오가 아주 좋고 지금도 아주 좋은 영화이지만 엄청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다.

 

피막은 원래 영상자료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리매스터링이 되어서 유튜브에 올라와있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 리매스터링이 됨으로써 선명한 원색이 주는 효과를 되찾아서 영화가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양반집 장손이 이상한 병에 걸려 누웠다. 그런데 병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병이 아니고 귀신 들린 병인 것 같다. 양반집 할마님과 어르신들은 의사가 아니라 무당이 필요한 병인 듯하다고 하여 유명한 무당들을 모두 불러들인다. 하지만 다 실패하고 군계일학으로 옥화라는 젊은 여인이 선택된다. 옥화는 장손의 병을 치유하는 듯 보이지만 뭔가 다른 꿍꿍이속이 있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그 양반집을 파멸시키려는 목적을 숨기고 있으며 끈질기고 사려 깊고 아주 영리하다. 이 영화 등장인물들을 다 갖고 논다. 

 

이 영화의 쟝르가 참 다양하다. 무속적 신비를 다룬 신비물, 유령이 나오는 호러영화, 옥화가 복수를 위해 폭주하는 액션영화, 장손이 병에 걸린 이유와 옥화의 숨겨진 동기를 추적하는 추리물, 양반댁 큰 마님(?)과 힘센 머슴 삼돌이(?)의 끈끈한 정사가 나오는 에로물 등이 막 섞였다. 이들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잘 융합되어 있다. 대가급 감독처럼 완전히 하나로 융합시키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시나리오는 걸작, 영화는 잘 만든 우수작 정도다. 

 

 

 

 

 

원래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파는 천한 계급이 무당이었지만, 옥화는 이 양반댁에 와서 모든 남자 심지어는 70대 할아버지와도 동침한다. 딱히 필요한 장면이었나 싶다. 옥화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도도하고 우아해서 남자들이 다 군침을 질질 흘린다.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며 남자들을 받아들인 다음 그들을 죽여버린다. 죽이는 방법이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죽인다는 설정이 좀 깨기는 했지만. 원래 각본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감독이 우겨서 넣었다고 하나 잘 모르겠다. 

 

그녀의 숨겨진 동기는 뭘까? 왜 이 집에 와서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또 이 집안을 파멸시키려 할까? 신기가 서린 옥화가 미친듯 어느 장소를 찾아가 파헤친 귀신 들린 호리병은 무엇일까? 그 호리병과 옥화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갈수록 물음표를 축적해간다. 

 

유지인이 대단한 미인이다. 이 영화 성공의 50%는 신비한 팜므파탈 유지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한 몸으로 떠받친다. 도도하고 우아하고 차갑고 생각이 깊고 교활하고 의지 강하고 섹시하고 그러면서 광기에 차있고 살인자이고 동시에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런 캐릭터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읽어도, 어떤 캐릭터인지 감이 안온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 이런 복잡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낸 것은 오로지 유지인의 신비롭고 침착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 덕분이다.

 

이 영화의 심각한 문제가 "사실은 이랬어" 하면서 과거로 플래시백해서 양반댁 마님과 삼돌이의 애절한 (?) 사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뚝 끊긴다. 사람들이 차근차근 대화하고 있는데 권투선수가 중간에 불쑥 끼어드는 격이다. 영화를 떠받치던 유지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마님-삼돌이 커플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완성도 있으면 몰랐는데, 상투적이고 재미도 없고 연출도 그냥 그렇다. "외로운 마님이 힘센 삼돌이에게 자꾸 끌리는데 양반집에서 이를 알고 둘 다 죽였다" 한 줄로 요약된다. 하도 상투적인 이야기라서 이렇게 적어도 스포일러가 아니다. 너무 잘 생겨서 늘 머슴 역이 하고 싶었다던 남궁원은 소원을 이뤘으나 사실 이미지가 별로 안 맞아서 어색하다. 탐 크루즈가 무식한 머슴이 되어서 늘 웃통을 벗고 다니며, 양반댁 마님과 토속적인 정사를 펼친다고 생각해 보라.

 

 

 

여기까지 오면 유지인의 정체가 어이없이 쉽게 풀린다. 이것도 맥빠진다. 긴장과 서스펜스를 이제껏 잘 구축해 오다가 "사실은 이랬어"하고 맥빠지게 까발리니 말이다. 그 다음은 안봐도 줄거리가 훤히 보인다. 어찌됐든 연쇄살인마가 된 유지인은 피막에 불을 지르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 타죽어 버린다. 굉장히 강렬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는데, 영화 중간 중간 일어난 삽질 때문에 평범한 느낌을 주며 영화가 끝난다.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하더라도, 영화 곳곳에 아주 비범한 장면들이 있다. 주로 유지인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피식하고 맥빠지며 쓰러지기 전까지는 서스펜스 구축이나 추리물로서 상당히 잘된 편이다. 굿을 하다가 신이 들린 유지인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부르르 떨며 무언가를 쫓아 뛰어가는 장면은 굉장히 귀기가 서린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영화 곡성에서 황정민이 굿을 하는 장면과 맞먹는 박력과 귀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곡성과 비교해 보면, 여기서는 엄청난 미인이 굿을 한다는 장점이 있다. 노마님 역할을 맡은 황정순도 영화에 무게를 실어주고.

 

 

P.S. 앓아누웠던 장손이 일어나자 마치 셜록 홈즈처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사실은 이랬던 겁니다" 하고 진상을 밝히는 장면이 나중에 나온다. 그러니까 옥화의 신비스런 능력 때문이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사실은 인위적인 조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방금까지 죽을 정도로 앓았던 사람이 일어나마자마 냉철한 능력을 발휘해서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것이 별로 현실성 없다, 그리고 셜록 홈즈라도 치밀한 현장 답사는 했는데, 마치 받아쓰기 한 것을 읽듯 일어마나마자 줄줄줄 옥화의 범죄를 밝히는 것은 좀 뜬금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감독 잘못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영화 빨리 끝내라는 압력이 있었을 지 모른다. 20~30분 정도만 영화가 더 길었어도 다 해결될 문제다.

 

P.S. 유지인같은 엄청난 포텐셜을 지닌 여배우가 하필이면 활동기가 우리나라 영화 암흑기여서 그대로 묻힌 것이 아쉽다.  

 

P.S. 삼돌이가 다가가니까 마님이 방 안으로 삼돌이를 피해(?) 도망가는 장면은 재미있었다. 아마 삼돌이가 남궁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감독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P.S. 마님이랑 한두번도 아니고 그렇게 오래 알콩달콩했으면서, 삼돌이는 살해당할 때 "도대체 나를 왜 죽이려는 거예유? 억울해유." 한다. 삼돌이는 바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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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막 처음엔 시나리오로만 읽었다가 기회가 돼서 영상자료원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이젠 스트리밍으로 쉽게 볼수 있게되어 놀라울 따름입니다.
22:18
20.09.19.
BillEvans 작성자
자연담은한끼
저도 한참 찾아헤메던 작품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01:39
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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