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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계단 (1964) 히치콕 부럽지 않다

BillEvans
1228 4 2

 

 

 

 

 

 

우리나라 문예영화 거장 김수용 감독이 헐리우드를 방문했을 때, 프렌치 커넥션의 유명한 카 체이스 장면이 촬영 중이었다. 당시 헐리우드 사람이 정말 놀랍지 않냐 하고 자랑하듯 말했을 때, 김수용 감독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만희란 감독이 있단 말이다. 이만희에게 이만큼 지원을 해줘 봐라. 이만희는 이보다 훨씬 더 잘 찍을 거다." 그 자신 거장이자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웠던 김수용 감독이 그렇게 자부심을 가졌던 이만희 감독에게 끝내 뭐 엄청난 예산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 마의 계단은 이만희 감독이 어느정도 높이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아주 잘 만든 스릴러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엽기나 잔인 그런 거 말고 히치콕이나 앙리 크루조 식의 정통 스릴러 말이다. 

여기 있다. 영화 내내 보여지는 계단의 이미지. 그 계단의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스릴과 서스펜스, 의미, 감정, 공포 등을 만들어내는 마법적인 능력. 이 영화 악당에 해당하는 현석호의 내적인 공포와 긴장을 외적인 분위기로 연결했다가 외적인 분위기를 현석호 내적인 공포로 연결했다가 하면서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장면 등은 놀랍다.

 

영화 시작도 관객들을 확 빨아들이는데,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시체를 옮겨서 시체실로 가는 행렬을 보여준다. "엉, 갑자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이것은 주인공 현석호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현석호라는 젊은 가난한 의사다. 어느 거대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능력 있고 야심 있는데 끈이 없는 것이다. 현석호는 같은 병원 간호사인 남진숙과 사랑하는 사이인데, 남진숙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병원장 딸과 결혼할 기회를 잡으면서 야심을 실현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때 현석호는 남진숙이 자기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현석호가 나쁜 놈이었으면 "진숙이를 해치우고 병원장 딸이랑 결혼해서 다 차지해야지. 음하하." 하겠지만 

현석호는 완전히 나쁜 놈도 아니고 착한 놈도 아니고 그냥 고민만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라는 것이 "진숙이를 말로 설득해서 스스로 포기하게 한다"인데, 남진숙이 말을 들을 리 있겠는가? 남진숙을 붙잡고 애걸복걸 협박을 하다가 그만 남진숙은 나무계단에서 떨어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유산한다. 

 

 

 

 

 

 

 

 

 

이 병원 중심에 있는 나무 나선계단이 마의 계단이다. 나무로 만들어져서 삐걱거리며 무저질 듯하고 경사가 아주 급해 위태롭고 추락하기 쉽다. 불안하고 위태로워보이고 까마득히 높고 올라가기 힘들고 - 이게 뭔가? 현석호가 가고 싶어하는 인생 커리어다. 

 

님진숙이 유산했으니 현석호 일은 쉬워졌는가? 아니다. 남진숙은 유산한 충격 겸 현석호가 자기를 밀었다고 생각해서, 현석호가 이번엔 자기를 죽일 거라 망상에 빠진다. 남진숙은 예측 불가능한 정신 불안자가 되어 뭔 일을 저질러도 저지를 것 같다. 현석호는 결단을 내린다. 이 불안, 갈등,정신적 에너지를 이만희는 아주 치밀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구축해나간다. 갑자기 툭 튀거나 왜 갑자기 저게 나오지 하는 장면이 없다. 치밀하게 구축된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다. 현석호가 남진숙을 살해하는 장면. 이 장면의 긴장감과 에너지는 실로 대단하다. 한국영화사의 한 장관이다.

비가 마구 내리는데 남진숙에서 마취제를 놓고 연못에 밀어넣어 자살한 것처럼 꾸미려는 장면인데, 가파른 계단과 목발의 이용, 벌벌 떨며 긴장하는 현석호, 중간중간 끼워넣는 병원의 을씨년스런 풍경이 어우려저 엄청 강렬한 장면이 된다. 다 끝난 줄 안 현석호가 돌아서서 가려는데 남진숙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장면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런데 현석호는 더 놀랬다. 그는 손으로 남진숙의 머리를 눌러 물 속에서 익사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이후 현석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남진숙의 목발이 갑자기 놓여있는가 하면 한밤중에 복도를 뚜벅뚜벅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는 남진숙이 방에 서있는 환상까지 보인다. 현석호가 깡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그냥 버텼을 것이나, 아시다시피 현석호는 새가슴이다. 현석호는 점점 더 미쳐간다. 

 

현석호가 남진숙 유령에게 시달리는 장면도 정말 명장면이다. 갑자기 문이 바람에 확 열리고 나무계단을 삐걱거리며 목발 짚은 어느 환자가 내려오고 하면서 관객들의 긴장을 풀었다가 조였다가 자유자재로 하는 능력은 정말 비범하다. 현석호가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을 아주 설득력 있게 에너지 넘치게 묘사해나간다. 

 

남진숙은 과연 죽었는가? 아니면 죽은 척 한 것인가? 영화는 이에 대해 모호하게 한다. 하지만 죽었든 아니든 현석호가 미쳐가는 것은 똑같다. 

 

 

 

 

 

 

 

 

 

그러다가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남진숙을 보게되고 나무계단으로 도망쳤다가 경찰에 포위되어 나무계단에서 떨어져 죽고만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힘으로 폭주한다. 긴장을 놓치는 법이 없다. 이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히치콕의 라이벌이었다는 앙리 클루조 감독의 디아볼릭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하지만 디아볼릭과 비교해서 못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현석호 역을 맡은 김진규와 남진숙 역을 맡은 문정숙의 열연도 엄청 컸다. 아시다시피 김진규는 우리나라 영화사 남자배우 탑을 다투는 사람이고, 인자한 역을 많이 맡았지만 사실은 악역배우 출신이다. 표독하고 악랄하여 관객들이 소름끼칠 정도로 악역을 잘 했었다고 한다 (영화계 진출 전에 말이다). 배우 원래 실제 성격은 악역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문정숙은 수 틀리면 쌍욕을 아무에게나 할 정도로 괄괄한 여장부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영화 배역에 잘 맞았던 것 같다.  

 

P.S. 삼포 가는 길이나 만추같은 영화만 보고, 이만희 감독은 센티멘털한 영화 만드는 감독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이만희 감독이 70년대 정서에 젖었을 때 이야기고 이만희 감독은 그 전에는 센티멘털리즘을 쫙 뺀 날렵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이 영화도, 현석호나 남진숙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아주 냉정하게 두 사람을 분석하고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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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쟝센이 뛰어나더라고요 영자원 블루레이를 노리는 영화입니다 ㅎㅎ
16:38
20.09.18.
BillEvans 작성자
우유과자
영자원 블루레이를 노린다니 잘 되었네요. 널리 감상되었으면 합니다.
21:29
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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