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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1961)와 혈맥 (1963)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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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가 한창 이루어지기 시작한 1960년대 초반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같은 영화다. 영화를 꽤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마부에 필적하는 영화는 별로 보지 못했다. 

나온지 60년이 다 된 영화이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울컥하고 치미는 것이 있다. 

1960년대 초반 다 같이 못살던 시절, 남의 말을 끌고 마부노릇을 하며 세 자식들을 잘 키우려고 애쓰는 아버지 역할을 김승호가 정말 불세출의 연기로 보여주었다.

이 아버지는 낀 세대다. 조선시대 전근대화시대 사람도 아니고 근대화시대 사람도 아니다. 그는 글자 그대로 근대화를 이끌 자식들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다. 근대화 시대라면 사회가 역동적이고 가난한 사람도 신분 상승하고 부자가 될 기회가 열려있다. 하지만 김승호 세대는 그럴 가망이 별로 없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대다. 그저 희생만 해야하는 세대다. 

가난하고 무식해서 무시받고 비굴하게 남 눈치보는 데만 이력이 나고,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 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김승호가 부상을 입자 말주인은 인정 없이 말을 끌고 가 버린다. 부자인 말주인한테 말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김승호는 하루 아침에 형제처럼 아끼던 말을 잃고 생계수단마저 빼앗기고 글자 그대로 죽을 일만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 되는데,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꿋꿋이 버텨야 한다. 그 엄청난 부담감과 절망을 이겨내고 자식들을 위해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평범하고 비굴한 이 사나이는 사실 누구보다도 위대한 존재이다. 이 영화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가슴뭉클한 찬가이다. 

이것은 영화의 아버지 상을 넘어서 한 시대의 아버지 상을 창조해낸 것이다.

 

 

 

1963년 나온 혈맥은 당시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사라진 명작으로 취급받았던 작품이다. 한동안 입으로만 전해지고 입으로만 묘사가 되었던 작품인데 아주 좋은 화질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천만다행한 일이다.

 

혈맥은 연극에 가까운 작품인데, 무지와 좁은 식견으로 아둥바둥하며 지옥에서 살던 전근대적 인물들을 그린 것이다. 육이오 때 피난 온 피난민들은 집도 없어서 방공호같은 것을 파고 동굴에서 산다. 그들의 꿈은 돈을 벌어서 방 한칸이라도 얻는 것이다. 그들은 전근대시대 사람들이고 무식하다. 피난 와서 비참한 삶을 살면서 악과 깡 그리고 절망만 남아있다. 그 좁은 곳에서 서로 물고 뜯고 하면서 산다. 아귀지옥도가 따로 없다. 바깥 세상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세상이 바뀌고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발생하고 있는 데 말이다. 

김승호의 젊다기보다 어린 아들 신성일과 최남현의 어린 딸 엄앵란은 토굴의 이런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함께 가출한다. 그리고 산업화 근대화의 최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공장에 취업한다. 김승호와 최남현은 꿈도 못꾸어보았던 근대화의 광경을 보고 압도당하고 자신들의 무지와 편협했음을 반성한다. 

결국 토굴에 살던 피난민들도 서서히 근대화의 흐름에 대해 알게 되고, 자기들이 얼마나 좁은 식견으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착하며 살았는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근대화라는 새 흐름에 동참한다. 이와 동시에 그들이 벌이던 그 의미없는 아귀다툼도 해소된다. 

이 영화도 근대화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근대화 이전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어땠고 근대화와 함께 이것이 어떻게 바뀌어갔는가 그 내면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유명한 것이 조미령의 바보 연기이다. 김승호가 아쉬운 대로 멍청한 여자를 새 아내로 데려온 것인데, 조미령은 겉으로만 바보인 척한 것이지 

속은 사기꾼이다. 김승호가 꼬물쳐놓은 돈을 다 들고 도망가 버린다. 정말 능청맞게 바보연기를 해서 씬 스틸러가 되었다. 나오는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나라가 전근대화시대에서 근대화시대로 이행하면서 이 두 걸작들이 나왔다는 것은 참 기념비적이다. 1960년대에는 기라성같은 걸작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 두 영화들은 특별하다. 이들은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함축하고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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