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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강추 La Double vie de Veronique (2004) 베로니카 삶의 두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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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도플갱어가 있다. 그 도플갱어와 당신은 서로 연결된 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웃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도플갱어를 다룬 환타지영화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당신은 단 한명이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여러 측면이 있다. 당신의 삶의 한 측면은 폴란드에서 소프라노로 살고 있다. 당신의 삶의 다른 측면은 프랑스에서 교사로 살아간다. 당신은 당신 자아가 여기 지금 현재 폴란드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 자아는 폴란드에서 살아가는 소프라노와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교사의 결합체이다. 당신은 이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여기 대해서 당신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이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신비로운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당신이 손가락이 아플 때, 이 지구 상 누군가가 어쩐지 손가락이 아프다고 느낄 가능성을 무시해버릴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 자아가 당신 경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하는가? 이 지구상 누군가 어떤 것을 경험했을 때 당신 또한 어떤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깨닫고 경험했다고 느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가? 이것은 도플갱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자아란 무엇인가, 인간들끼리의 관계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일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 베로니카 삶의 두 측면은 여기 대한 탐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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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소프라노로 사는 베로니카와 프랑스에서 교사로 사는 베로니끄는 서로 영혼 깊숙이 연결은 되어있지만 누구도 자기 자신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폴란드에서 사는 베로니카는 프랑스에서 교사로 살아가기도 하며, 프랑스에서 교사로 사는 베로니끄는 폴란드에서 소프라노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방식은 하도 은밀하고 신비로워서 인간에게 절래 알려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신비를 다룬다. 사건으로서의 신비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 신비를 관객들이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신비의 일부분임을 체험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달성하려는 목표 그리고 이 영화가 달성한 것은 다른 평범한 영화들보다 까마득히 위에 있다. 

 

이 영화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한 방법론이 나는 너무 좋다. 카메라는 멀찍이 물러나 있다. 위에 말한 신비를 카메라가 이끌어낼 방법은 없다. 카메라는 멀찍이 물러서서 인간으로서의 배우들이 신비를 드러내길 끈질기게 기다린다. 카메라는 일상을 그냥 기록한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신비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눈 같은 거다. 하지만 아주 섬세한 눈이라서 아주 조금의 마음의 요동, 아주 조금의 우리 동작의 의미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행동 및 말 간에는 아주 미묘한 관계와 법칙이 있다. 그자신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카메라는 멀찍이서 이들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당신도 눈치못챌 당신 행동 속 드러나는 존재의 신비함을 잡아낸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당신을 쫓아가지도 당신 앞에서 당신을 이끌지도 않는다. 이것은 당신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당신의 존재를 활짝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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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이 무척 아름다운데 원색이 아닌 잘 그슬린 은의 깊이 있는 빛깔 같다.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에 화려한 원색 혹은 현실적인 빛깔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쇼팽의 마주르카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과시적이지도 않지만 섬세함과 풍부한 뉘앙스를 가진 아름다운 화면이다. 이런 화면은 색채의 요동을 줄인다. 색채의 드라마틱함을 줄인다. 이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들은 세상 속 자기 자리에 박혀서 자기의 내적 요구에 따라 조용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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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이렌느 야곱의 신비로운 외모와 분위기도 이 영화에 크게 기여한다. 그녀는 마치 투명한 거울같다. 자기 영혼에 미세하게 박히는 모든 관계와 감정, 깨달음을 아주 미묘하게 반사하는. 그녀는 행동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자신이 느끼는 것에 반응하는 사람이다. 폴란드에 있는 베로니끄가 사망하자 프랑스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베로니카는 무언가 삶의 한 구석이 허물어진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으로 끝났을 수도 있지만, 베로니카에게 왜 이런 느낌이 갑자기 들었는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존재론적 문제가 된다. 이렌느 야곱의 연기는 아주 섬세해서 베로니카가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정말 섬세하게 잡아내고 우리에게 보여준다. 카메라는 이렌느 야곱에게 아무 지시나 간섭을 하지 않고 이렌느 야곱이 섬세하게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을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잡아낸다. 

 

베로니카는 베로니끄라는 존재와 예술을 통해 연결된다. 당연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신비롭고 은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예술 이외에 그 무엇이 있겠는가? 베로니끄의 남자친구는, 너무나 완벽해서 다리가 부러지자 나비로 변신하여 훨훨 날아가버린 발레리나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 공연을 한다. 바로 죽은 베로니끄를 상징하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이 인형극을 보고 자기가 느꼈던 그 고통의 원인을 어렴풋이 감각하게 된다. 아름답게 연출된 영화 속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인형극도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베로니끄는 그 자신으로서 베로니카 앞에 온 것이 아니라 예술 속 상징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난다. 

 

여기에는 동유럽에서 발달한 인형극의 유구한 전통이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우리가 생각하는 인형극을 넘어선 하나의 정신문화 수준까지 올라간 인형극 문화가 이 영화에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인형극 문화는 하나의 유럽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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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베로니카는 폴란드의 베로니끄 삶이 자기 자아의 일부분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도 아주 신비로운 것이어서 영화는 베로니카의 깨달음을 보여주고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아무런 부연설명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신비로운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다는 것인가? 오직 침묵과 여운만이 그것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감정이 영화가 의도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종교적인가? 공산주의사회였던 폴란드에서 종교가 영화에 나오겠는가? 이 영화는 철저히 일상적이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일상 이외에 다른 것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베로니카가 느끼는 신비한 경험을 신비로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냥 일상을 그대로 그림으로써 그 일상들 속에서 신비로움이 잔잔하게 배어나오도록 한다.) 하지만 이 일상 속에 굉장히 풍부한 뉘앙스가 있고, 사람들의 일상과 일상 사이에는 신비로운 법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이 단조롭게 살아가는 그 일상의 순간순간 속에 아주 풍부한 신비가 있다는 것이다. 

 

감독의 다른 영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원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폴란드의 공산주의 붕괴와 유럽 국가들의 통합 이전에는 이런 영화들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자기에게 친숙한 체제의 붕괴, 이전까지는 단절되었다고 생각했던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융합의 경험 등이 이 감독에게 어떤 깨달음과 영감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시대정신을 담은 영화다. 사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공산주의 붕괴와 유럽 통합을 그려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눈으로 보면

이 영화는 시대정신과 아주 미세한 인간 존재의 신비를 잡아내려 한 예술적 목표를 동시에 담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P.S. 누가 이 영화에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같은 제목을 붙여놓았는지 정말 화가 난다. Night Porter 를 비엔나의 야간우편배달부로 번역해놓은 

것과 더불어 정말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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