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abbath (1963) 유령들이 들끓는 밤 (혐오 주의)
너무나 무서워서 제작자가 이대로 개봉해도 괜찮은 건가 하고 걱정했다는 전설의 영화다. 당시 유행대로 에피소드 세개를 하나로 묶었다. 마리오 바바 역작이다.
그의 스타일리쉬하고 화려한 영상미와 공포스런 분위기 창출이 극에 달했다. 1963년 영화인데도 보고있으면 엄청 무섭다. 이 엄청 무섭기 위해 잔인할 필요도 없다.
각 에피소드 별로 시간이 짧은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구성이니 긴장의 배분이나 같은 것 생각할 필요 없이
아주 강렬하게 공포를 쏘아올리면 되었으니까.
첫번째 에피소드는 모파상의 단편소설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로시라는 대책 없이 사는 여자가 전화 한통을 받고 공포에 떠는 이야기다.
마치 연극처럼 전화 한통 로시 이것만 가지고 긴장과 공포를 창출해내는 것인데 엄청난 난이도다. 공간도 몇 평짜리 방이 다다. 시간도 오후부터 밤까지?
로시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수수께끼 전화를 받고 공포에 떠는데, 짚이는 데가 너무 많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로시는 자기가 술술 불어서 감옥에 보내버린 전 남자친구가 자기에게 복수하러 올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반전에 반전이 겹치고,
레즈비아니즘이 등장하고 누드가 등장하고 그러면서 영화가 복잡하고 풍성해진다. 여배우가 상당한 미인이다. 마리오 바바가 "나도 이런 거 할 줄 안단 말이야"하고 말하는 것 같다. 이탈리아 슬래셔무비 지알로의 창시자가 바로 마리오 바바다.
두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길고 무섭다. 보리스 카를로프가 주연을 맡은 우르달락이다. 동유럽 흡혈귀 이야기인데, 마리오 바바 영화답게 중세 유럽이 무대다.
여행하던 젊은 귀족 블라디미르는 풀숲에서 머리가 잘린 시체가 널부러져있는 것을 보고 소름끼쳐한다. 더 가니까 어느 농장이 나온다.
그집 식구들은 잠도 자지 않고 초조하게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르달락이라는 흡혈귀를 처치하러 간 가부장 고르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변을 공포에 떨게하던 흡혈귀 우르달락을 가부장 고르카나 나서서 해치우지 않는다면 누가 한단 말인가? 고르카는 집을 나서며 자기가 우르달락에 전염될 수 있으니까 자기가 돌아와서 낌새가 이상하면 죽여달라고 한다.
블라디미르도 그 집에 묵으면서 우르달락의 목을 들고 고르카가 돌아오는 것을 본다. 그런데 고르카의 행동이 이상하다. 우르달락에 전염된 것이 확실하다.
이 에피소드는 굉장히 암울하다. 고르카가 우르달락이 된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하나 하나 우르달락이 되어가는 가족들의 비극이 찬찬히 그려진다. 사실 비극적일 필요도 없었다. 고르카의 말을 따라서 우르달락이 된 고르카를 죽여버렸으면 되니까. 그것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우르달락이 되어가는 가족들이 답답하다고나 할까 폐쇄적이고 무지하다고나 할까 그렇다. 그런데 이것이 주제다. 이 에피소드는 원래 고골리의 소설에 바탕을 둔 것이고 고골리는 러시아 가부장제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블라디미르는 그 집 스덴카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져있는데, 아무리 블라디미르가 이야기해도 그집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우르달락이 되어가길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이 폐쇄적이고 어리석고 무기력한 가부장제도일 지 모른다.
스덴카 역을 맡은 배우 수지 앤더슨은 상당히 풍성한 셀링 포인트가 있어서 배우나 감독이나 수시로 써먹는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던 흑마술에 취미로 심취했던 백작부인이 혼자 죽은 뒤 시체를 염하러 갔던 가난한 여인 헬렌이 겪는 공포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가난과 고독이다. 오죽 가난했으면 남들이 다 싫어하는 시체를 염하는 일을 하며 혼자 살겠는가? 헬렌이 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그 지옥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마리오 바바의 걸작이자 누구에게나 한번 감상을 권할 수 있는 호러영화다. 마리오 바바가 유럽 정신문화에 얼마나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마리오 바바 특유의 사치스럽고 호화롭고 색채감 넘치는 스타일이 아주 잘 살아있다. 그의 영화 속 환상적이고 공포가 스물스물 스며드는 그 분위기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한번 찾아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