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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아까워 반도 - 노하우도, 의욕도, 서사도 없는. (스포일러 주의)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를 하나 꼽자면 캐릭터의 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 이유는, 설정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물에 대한 조명이 너무나도 짧아서 관객이 그 캐릭터를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태로 극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물론 단독 스포트라이트를 좀 적게 주더라도 훌륭한 감독 및 각본가는 극의 진행과 캐릭터의 ‘보여주기’를 한꺼번에 진행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엔 그조차 하지 못했다.


반도의 영화 외적인 배경만 보면 이미 천만 관객이 본 영화 부산행의 후속작으로, 그 세계관이나 기존 등장인물들, 그리고 감독의 이야기 진행 방식 모두를 이미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받아들인 바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실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친절하게 해줄 필요가 없었다. 작 초반부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뉴스 앵커룸 인터뷰 같은 장면은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해 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차라리 그 시간 절반을 할애해서 631 부대가 4년간 겪은 일들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이 조금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또한, 기존 부산행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 건 스토리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게 마케팅적으로 썩 성공적인 변명은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던 캐릭터 상을 한 번 배신한 셈이 된다. 무언가의 후속작임을 자평하려면, 최소한 해당 전작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하다못해 팬보이들로 하여금 강과 산이 마르고 닳도록 까게 만든 라이언 존슨 감독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조차도 최소한 이전 작품들의 캐릭터를 보여주긴 했다. 존중도 없이 다 죽여버려서 문제지).


이러한 후속작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존중 요소들은 사실 직접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도 없고, 감독과 각본가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테면 부산의 멸망을 보여주는 씬에서 부산 외곽에 방치된 (부산행의 바로 그) 기관차를 (cg처리를 통해서든 부산행의 장면을 갖다붙여서든) 조명한다던지, 아니면 피난민들의 줄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간신히 들릴 정도로 먼 곳에서 말하는 듯한 수안과 성경, 나영의 대사를 삽입해넣던지... 그런데 그중 무엇도 안했다.

 

그러한 점이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상호 감독은 IP 산업, 혹은 시리즈물이나 어떠한 유니버스적 세계관에(mcu같은) 관객이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해 잘 감이 안 잡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기에 굳이 덧붙이자면, 부산행을 다시 보면서 반도와 비교해본 결과 둘 간의 장르적 차이점이 너무 심하게 느껴진다. 부산행은 (28일 후나 28주 후와 같이) 필연적으로 아포칼립스로 향해갈수밖에 없는 좀비물의 문법과 정체성을 그대로 갖춘 채 그 공간적 제약이나 서사, 인간관계는 영화 설국열차(2013)나 웹툰 에스탄시아(2005)와 같이 열차 안으로 제약해 놓은 장르물인데, 반도는 조금 심하게 말해보자면 21세기 28주 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매드 맥스다. 장르도 다르고, 문법도 다르고,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장르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심지어 부산행이 갖추고 있던 인간관계 속 갈등의 탄탄함이 보여주는 강점까지 상실됐다. 


어째서 인간관계가 부실해졌냐를 따지자면 또다시 앞에서 언급한 ‘보여주기의 실패’를 언급하게 되는데, 주인공이 극 중 한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행동과 대사들이 관객의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법적 친척이랑 말다툼하고, 총질하고, 애들한테 구출당하고, 그 친척 죽는거 지켜보고, 또 총질하고, 구출하고, 자긴 죽고. 글로만 정리하면 매우 짧아 보이지만 사실 이 중 절반만 영화로 찍더라도 서사를 부여하고 제대로 된 감정을 부여해서 살점을 잘 붙이면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근데 정작 영화를 보고 나와서 되짚어보면, "아 거 강동원이 한게 뭐 있더라...?" 이 정도의 감상이 끝이다. 허 참. 근데 더 황당한건 이게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주인공-에 대한 감상이라는 것이다. 관객은 이 친구에 대해 무슨 생각으로 몰입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망각한 채 때깔만 좋은 자동차 / 총기 액션씬'만' 우겨넣은 실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본인이 관객으로써 강동원의 캐릭터에 대해 (와, 심지어 캐릭터 명도 본지 하루도 안 돼서 까먹었다)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아, 이친구는 총도 잘 쏘고 잘생기기까지 했구나' 정도다. 

 

신파를 넣을거면, 최소한 해당 등장 인물들에게 관객이 몰입은 하게 만든 다음 신파를 넣어라, 그래야 좀 더 눈물 콧물이라도 질질 짜지 않겠나. 몰입도 제대로 못시킬거면 도대체 왜 신파를 넣나?


뭐 아무튼... 이런 작품을 과연 타이틀에 ‘부산행의 후속’이라는 치장을 단다는 이유만으로 부산행의 수준을 기대한 관객에게 납득시키려 한다면 너무 기대가 높은 것 아닐까. 본인은 부산행을 그렇게까지 고평가하지 않지만, 반도랑 비교하기엔 부산행이 너무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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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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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시끄럽다 2020.09.12. 13:26
늦게보셨네요.
다행히 외국에서도 그나마 어느정도 흥행하는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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