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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들어 [작은 아씨들] 대화의 장을 펼치고 싶은 인물들로 가득한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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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만 전 넷플릭스를 통해 예전에 봤던 영화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다시 본 영화들은 [트루먼 쇼]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다.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보면서 놀랐던 건 내 기억 속의 장면과 대사들이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특히 [트루먼쇼]같은 경우에는 ‘다시’ 봤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기억하는 장면들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나는 이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을 뿐 실제로는 그저 몇몇 장면을 기억하고 있던 것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일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나오는 최고의 대사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의 영어 워딩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문장과 달랐다는 점이다. 확신이 있었기에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는데 또 다른 흑역사의 탄생을 지켜본 기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이 점점 나빠지는 걸 느낀다. 배우들의 이름을 못 외우는 거야 예전부터 그랬으니 그렇다 쳐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곧잘 외우곤 했던 영화 속 장면들과 대사들을 암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은 영화 속에 등장했던 캐릭터의 존재 자체를 잊어먹는 일인데, 그나마 서사에 크게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변명으로 넘어가겠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기억나지 않을 때는 내가 이 영화를 왜 본 걸까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물론 [신비한 동물 사전2]처럼 캐릭터 구축이 형편없거나 관계도를 배배 꼬아 놓는 경우라면 가차 없이 ‘기억할 가치도 없다!’라고 말하겠지만. 어쨌든 많은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일수록 나의 나쁜 기억력이 발목을 붙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머릿속에 깊게 박히는 영화들을 만난다.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인물들로 꽉 채워져 있는 이야기. 그러니까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처럼.

 

그레타 거윅의 전작 [레이디 버드]에서 첫 경험에 실망한 채 남자친구의 집에서 뛰쳐나가는 크리스틴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카메라는 그때 암에 걸려 거실 소파에 조용히 누워있는 카일의 아버지를 비춘다. 10대의 방황을 주제로 삼으면서도 그 주위를 맴도는 어른들의 피로감을 외면하지 않던 그레타 거윅은 [작은 아씨들]에서 또 한 번 모든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세상을 담아낸다.

 

솔직하게 말해 보자. 당신이 영화를 꽤 본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시얼샤 로넌과 플로렌스 퓨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두 자매를 연기한 엠마 왓슨과 엘리자 스캔러에게 큰 기대감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레타 거윅은 나의 오만한 예측을 철저하게 부수어 놓았다.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와 안타깝게도 외모에 대한 평이 먼저 들어오는 배우로서의 한계는 좋은 이야기와 그것을 능숙하게 담아내는 연출이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작은 아씨들]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때때로 영화 속 인물들에게 편지를 써왔다. 영화에 대한 어설픈 감상보다 어딘가에 존재했거나 존재할 것 같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가 있었다. [작은 아씨들]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영화 속 인물들과 대화의 장을 펼치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세상의 편견과 때론 그 편견에 수긍하는 마음에 관해 얘기해보고 싶다. 허위와 허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약함에 관해 듣고 싶다. 남들이 외면하는 고요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에 관해 묻고 싶다. 나와 세상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수긍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깊어지는 자기멸시와 공허감으로 채워지는 날들에 관해서, 그녀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때때로 어떤 영화는 친구처럼 다가온다. 

 

★★★★

 

추천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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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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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pink플로이드 2020.06.29. 17:40
영화에 대한 평이 아닌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서 대화를 하는 영화보는 방식이 좋네요 ^^
저도 종종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상상으로 대화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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