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벨에포크> 리뷰
시간여행이라는 주제가 나에게 언제나 성공적인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어바웃 타임>은 모두가 좋아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 영화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생각해보면, 시간여행 내지는 기억여행(이런 단어는 없겠지만)에 관한 로맨스들(로맨스가 아닌 작품들도)을 거의 대부분 사랑해마지않는 것 같기는 하다. 개중 잘 만들어지고 유명한작품들만 봐서 그런 거긴 하겠지만.
아무튼 누가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인생영화를 하나만 대보라고 할 때면 난 <이터널 선샤인>을 꼽는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어지간해서는 두 번 보는 일이 없는 내가 몇 번이고 본 영화. 그리고 볼 때마다 우는 영화. 물론, 처음 볼 땐 후반부터 울지만 다시 보면 처음부터 울게 되는 영화가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건,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거다. 그리하여 나는 <카페 벨에포크>를 영화관에서 엉엉 울며 보고 나와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체적인 작품성으로는 물론 하위호환이라고생각하지만) 2020년판 이터널 선샤인이라며 추천을 해댔는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볼 때 이터널 선샤인이라든지컨택트라든지 미드나잇 인 파리라든지 그런 영화들과의 차별점이 이 영화에 있느냐 하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저 이렇게 좋으니, 이거야말로 타임슬립 영화에 대한 타입슬립이라도 되는 건가. 잘 알면서도, 알고 있는 바와 똑같으면서도, 그래서 좋은 것.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은 건 추억이라 부르지 않으니, 추억은 그저 하염없이 아름답다. 물론 돌아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것이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돌이켜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게 있으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사람을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은 쉽게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인생에 몇 없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그 순간이 얼마나 이어질지, 바로 다음 순간 끝나버리지는 않을지 알 수 없으므로 당시에는 온전히 누리기가 어렵다. 허나 그 시간이지나간 뒤에는 그런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온전히 나의 것인 행복에 푹 몸을 담그면 된다. 이보다좋은 게 어디 있으랴. 이렇게 추억을 재생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오직 추억에 붙들린 채 현재를 살아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마저 우리는 주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영화는 추억에 관한 이러한 진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눈치다. 주인공인 빅토르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기계화, 디지털화된 요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주위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지만, 무조건 ‘옛것이 좋다’고 우기거나 한탄하는 답답한성격을 지닌 것만도 아니다. 그러기엔 그는 그저, 너무 착하다. 그 나이가 되면 나도 아마 비슷한 모습이 될 것 같다. 배우자한테 모욕에 가까운 무시를 당해도, 그 배우자가 내 친구와 바람이 나도, 세상 모두 나를 답답하고 한심하게 생각해도, 굳이 화를 내거나 반박하거나 스스로를 변호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 같다.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저 더이상, 나에게 그 어떤 것도 바꿀 만한 힘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빅토르의 앞에 젊고 매력적인 마르고가 등장했을 때는, 관객으로서 아무래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둘의 로맨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그럴 일은 없을 거라 믿었지만 딱 그런 믿음만큼) 큰 배신감을 느끼며 실망했으리라. 솔직하게 말해서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서로 사랑에, 그것도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명백한 불륜으로 서로에게 빠지는모습은 묻거나 따져보기 전에 상당히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의 형태와 흐름에 전부 공감하지만, 그런 감정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역시 편을 들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지킨 선, 마르고의 젊은매력이, 오직 젊은 시절의 아내(마리안)와는 또다른 현재적인 새로운 에너지를 빅토르에게 주는 모습이 참 좋게 느껴졌던것 같다. 추억은 과거의 것이지만, 그것을 불러오는 시점, 그러니까 추억이 실제로 작동하는 시점은 언제나 추억을 떠올리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현재적이다. 추억이 단지 그때와는 달라진 지금을 한탄하는 데만 쓰인다면 그저 추하고 무기력한 낭만으로만 머물겠지만, 그 아름다웠던 시절 속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나와 너를 떠올릴 때 현재가 자극받고 새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꾼 오늘은 또 미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지.
추억을 다루는 영화, 나아가 시간여행을 다루는 영화는 결국 마지막엔 현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게 결국은 지금을 위한 것, 지금에서 출발한 것이니까. 내가 <이터널 선샤인>을 볼 때마다 눈물을 쏟는 ‘눈물버튼’ 장면은 다름아닌“오케이” 장면인데, 너를 송두리째 내 기억에서 없애버리기를 택할 정도로 큰 아픔과 고통을 받았다 해도, 그런 결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해도,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 너를 사랑하겠다는 그 바보같은 결정이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그 실수같은 결정 없이는 더이상 인간일 수 없는 우리들이라서 그렇다. 1974년의 마리안은 아름다웠고, 지금의 마리안은 그동안의세월만큼 꽤 변했을 수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그 마리안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갔기에 아름다울 수 있듯, 지금은 지금이기에 괴로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 가려져있는 여전한 아름다움들.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빛나는 추억의 아름다움들은, 없다가 생긴 게 아니라 단지 그때는 ‘지금’이라는 막에 가려져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니 그때의 서로와 지금의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때 아름다웠던 두 사람은 여전히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는 것이 <카페 벨에포크>의 결론이라 하겠다. 되짚어볼 추억 하나쯤 가진 사람이라면, 꼭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거나 매일 그때를떠올리며 살지는 않는다 해도 ‘기억하는 존재’로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추억’과 ‘낭만’ 앞에 웃고 울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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