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 더 재밌었을 수도 있는 영화 (스포)
제목이 꽤 재미있어서 전 제목만큼이나 재기발랄하면서도 시니컬하며 강렬한 작품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글쎄요. 신인감독으로서 이 정도면 참 잘 만든 대중적 작품이지만, 이정도 스토리 라인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단, 사람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점철하는 작품인데도 그들의 대화에 별로 찰진 맛이 없어요. 어떤 대사는 멍청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타이거 상어에 대한 비유, 럭키스트라이크 담배가 주는 행운과 불행의 아이러니 등등은 꽤나 맛깔 나는 설정이지만, 그에 반해 배우들이 나누는 말이 너무나 평이하고 기억에 남는 대사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세관원 태영과 클럽 직원 붕어의 관계는 영화의 서사에 그닥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데도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너무 지루하고 길었습니다.
돈 가방이 매개가 된 여러 사람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그 사건의 시간 블럭들이 서로 얽히고, 교차하고, 만나는 "구조"의 재미가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꽤나 솜씨 있게 이를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구조를 좀 더 도전적으로 뒤틀고 독특하게 배열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감독님은 이 영화적 유희를 어느 선 이상으로는 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총 6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표제를 달았는데, 각 챕터가 가진 이야기의 완결성이 느슨한데다 다음 챕터와의 연결도 그냥 무난해서, 굳이 영화의 흐름을 그렇게 잘게 나눌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타란티노의 초기작의 경우, 챕터와 챕터의 성격이 서로 강하게 상충되며 발생하는 이야기의 힘이 있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인 영화의 색감과 셋트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톤이 전반적으로 푸른빛으로 바래져 있고 어두워야 할 그림자의 깊이가 희끄무레 하게 붕 뜨는 느낌이었는데, 이것이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영화의 기술적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히 등장인물들이 거주하는 집의 실내 디자인에 불만이 많은데, 아무리 그들이 돈에 쪼들리고 못사는 사람이라지만 집의 인테리어가 그토록 음울하고 꾀죄죄했어야만 했었는지 의문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집의 벽지에 마치 폐가처럼 누런 때자국이 덕지덕지 배여있는 데다 조명은 음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정과념과는 꽤나 다르게, 가난한 분들 중에는 집안을 꽤나 세련되게 꾸미고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오히려 과거 횟집 식당이었던 중만의 집이 화려한 벽지에 깔끔한 분위기였다면 중만 가족의 짓눌린 욕망과 대비가 되어 더 좋았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다른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시각적 유희를 선사해서 좋았습니다. 챕터 별로 등장했던 타이틀의 그래픽이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결국 최종적으로 하나의 이미지에 수렴되는 것이 탁월했습니다. 또한 영화 크레딧 장면에 등장하는 핏물 그래픽은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기법이라 신선했습니다.
아직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제가 느낀 바가 감독님의 연출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소설에 원래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정우성 배우님은 찌질이 역할 보다는 묵묵히 고뇌하는 선이 굵은 역이 더 어울리시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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