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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강추 태양은 다시 뜬다 (1966)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과 같지만 내용은 전혀 상관 없다.

어느 무지한 농사꾼이 늘 가뭄에 시달리는 깡촌마을에 댐을 짓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사실 소재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바로 김진규의 연기이다. 그는 착실한 큰 아들,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는 비정한 의사,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 파멸하는 나약한 사나이, 빨치산에 가담한 내성적인 지식인, 마님을 짝사랑하는 벙어리 삼룡이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 

영화계에 입문하기 전에 김진규는 악역으로 유명했던 배우이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무지한 농사꾼 연기를 펼친다. 

이 역으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탔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완벽한 연기를 해 낸다. 

하지만 원체 점잖고 도시적인 미남으로 생긴 그인지라 좀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알랑 들롱이 벙어리 삼룡이 연기를 완벽하게 해 낸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연기가 좋아도 삼룡이에 감정 이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농사꾼 춘보는 마을 제일 가는 탐욕스럽고 고집 세고 악다구니가 대단한 사람이다. 그 드센 농사꾼들도 춘보는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춘보의 큰 아들은 지병으로 일도 못하고 앓고 있었고, 춘보가 아무리 그악스럽게 농사를 지어봐야 이리저리 빼고나면 간신히 끼니를 때울

뿐이다. 춘보의 큰 아들은 기름진 농토를 얻기 위해 술 마시기 내기를 벌였다가 져서, 농토는 얻지도 못하고 그냥 병을 얻어 자리보전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터였다. 하지만 춘보는 그런 아들을 이해한다. 그 또한 농토가 바로 생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춘보의 할아버지, 아버지 대대로 조그만 농토를 갖기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여 토질이 형편없는 짜투리 땅을 마련하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모없는 땅이지만, 춘보가족에게는 흙 한그릇이 그들의 피 한그릇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이미 죽은 춘보의 아내는, 자기 시체를 거름으로 써서 토질이 좋아지게 하려고, 자기 시체를 논에 묻어달라고 유언한다. 춘보는 또 그렇게 했고.

 

이런 춘보가족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간신히 끼니를 잇는 것이 현실이다. 

마을의 지주는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마을에 대규모 사업을 성공시키고자 한다. 바로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댐을 건설하면, 새로운 땅이 많이 생기고 가뭄 걱정도 없어지지만, 현재 많은 농토들이 물에 잠기게 된다. 

대대로 춘보가족들의 피눈물이 담긴 그 농토도 물에 잠겨 사라지는 것이다. 농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고 댐 건설 계획은 좌초된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농민들의 이런 저항이 근시안적이며 댐으로 상징되는 미래지향성과 현실개척을 부정하는 반동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농민들의 비참한 가족사를 따라가다 보면 농민들의 저항도 이해가 된다.

 

영화는, 농민들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저항하던 춘보가 어떻게 해서 댐 건설로 상징되는 산업화, 미래지향성에 눈 뜨게 되고 댐 건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지 따라간다. 사실 춘보도 하루 아침에 자신의 한계를 벗어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도 굉장히 긴 고뇌의 시간을 거쳐

현실 개혁의 필요성에 눈 뜨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아주 섬세하게 이 과정을 따라간다. 철저히 춘보의 눈높이에 맞춰져서,

산업화니 농촌 개발이니 하는 말은 없고 그냥 "농토......농토......농토......농토"하고 내용이 진행된다. 사실 지식인 지주의 입을 빌어 농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은 되지만, 춘보의 귀에는 그냥 와 닿지 않는 구호에 불과하다. 이 점이 바로 이 영화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댐 개발에 찬성하는 춘보는, 이에 반대하는 동네 다른 농민들로부터 왕따 겸 테러를 받게 된다. 악과 깡으로 무장한 춘보는 

억지로 억지로 혼자 댐 개발을 이끌어나가고, 마침내 마을사람들은 춘보가 이룩한 댐 건설에 찬동하여 마을을 새롭게 개혁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이 영화가 계몽적인 성격을 앞세운 얄팍한 영화가 아니냐고 하실 수 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유현목감독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원래 메세지가 강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던 분이다.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아주 

치밀하면서도 메세지를 표나지 않게 안으로 감출 줄 안다. 이 영화에서 전면에 대두되는 것은 메세지가 아니라, 춘보가족의 비극적인 가족사,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농촌사회의 폐쇄성과 억압성에 대한 고찰 등이다. 메세지는 이런 감동적인 드라마에 의해 자연적으로 이끌어져 나오는 것이지,

메세지가 드라마를 이끌어가지는 않는다.

 

김진규의 춘보연기는 마치 숙련된 아크로바트를 보는 느낌이다. 그는 유머러스란 연기를 펼치다가, 가부장적인 고뇌를 연기하다가, 

고난의 가족사에 의해 짓눌리는 한 인간을 연기했다가, 질식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버지를 연기했다가 한다. 이런 다양한 연기를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늘 너무 진지한 유현목감독이 이 영화의 유머러스한 점을 잘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처음 댐 건설을 시작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지식인 지주는 곧 뒤로 빠지게 되고, 농촌 개혁을 실제 이루어나가는 능동적인 주체는

농사꾼 춘보이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농촌 개혁을 이루어나가는 주체는 농촌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뜻일까? 

일개 농민에 불과한 춘보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거대한 인물이 되어 간다. 상록수에 나오는 채영신처럼. 

현실 개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많은 지식과 사명감은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춘보는 보여준다. 

춘보는 댐 건설의 주체가 되고 많은 농민들을 가뭄의 위협에서 구해내는 영웅이 되지만, 그는 일자무식이었고 또

그의 행동은 사명감이 아니라 탐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탐욕은 남의 것을 뺏자는 탐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극의 가족사와 처절한 가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한 탐욕이었기에 그 결과는 숭고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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