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후기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는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된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남산의 부장들>의 소재가 된 10.26 사태가 있던 1979년 이후 시네마스코프는 사라졌다. 그 뒤 복귀를 알린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보니 이병헌 배우가 두 영화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런 얘기를 한 이유는 <남산의 부장들>이 시네마스코프 이후 각광을 받았던 `비스타 비율`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즉, 시네마스코프와 함께 역사 속에 사라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하고 있으며, 그런 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고, 감독은 화면 비율로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의 총성을 시작으로 40일 전(前)으로 돌아가며 시작된다. 누구를 쏘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앞에 영화는 왜? 김규평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찬찬히 살피며 다시 그날로 향해간다. 1인자 박통(이성민) 곁에서 충성 경쟁을 하는 2인자 김규평(이병헌)과 곽상천(이희준) 그리고 박통에게 버려진 박용각(곽도원). 영화는 이렇게 4명의 관계 속에서 쌓아가는 갈등과 감정의 생채기를 김규평의 심리적 변화에 집중하며 왜? 란 질문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감정은 `모멸`과 `배신`이다. 이 두 감정은 서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감정들이다. 상대방에게 받은 모멸감이 배신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모멸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점을 상기시킨다면 영화 속 곽상천과 충성 경쟁을 벌였던 김규평의 고뇌와 딜레마 속에서 보이는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의 충성 경쟁의 기저엔 박통에게 버려진 박용각의 배신이 촉매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해야 했을 테니. 그렇게 영화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의 대비를 1인자 박통의 선택에 따라 변화한다.
영화 속에 박통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그 선택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유머도 거의 없다. 영화의 건조한 분위기는 시시때때로 펼쳐지는 상황에 목숨 줄이 좌지우지된다. 명확한 적은 있지만 명확한 아군은 없다. 그렇기에 심리적 스릴러가 완성될 수 있었다.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각자는 자신의 신념 그대로 살아갔을 테니깐. 구두 한 짝도 없다. 위급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도구이며, 동시에 나락을 암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영화는 이렇게 없는 것을 통해 영화를 완성한다. 없었기에 되려 빈 공백에서 비정함이 느껴지고, 담고자 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없는 것 때문에 10.26 사태가 생소한 분들에겐 오롯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무게감을 체감하기엔 역부족해 보인다. 더욱이 알면 피식 될 포인트도 있기도 했다. 또한 익숙한 분들에겐 같은 소재의 <그때 그 사람들>과 관점의 차이를 두긴 했지만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실존 인물의 자료 화면을 사용한 그 장면은 선입견을 배제하려 했던 감독의 노력을 약화 시키는 사족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을 차치하더라도 배우들의 호연은 인상적이다. 1인자 2인자 관계없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모습 속에 죽음의 불안이 인물들의 표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김규평은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지만 클라이맥스까지 절제하며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어쩜 이런 `절제` 속엔 박통에 대한 추억과 의리 그리고 연민과 불안 등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내면에 담겨 있었을 테다. 그렇기에 그 고뇌 속에서 처연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선택과 선택 사이에 흔들리는 개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진짜 속에서는 끓고 있는데 마지막에 터뜨리기까지 절제되어 있는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연기 진짜 미친 거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