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를 보았습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의 산골에서 동화 속에 푹 빠진 소녀 오필리아의 거친 인생을 보여주는 영화더군요.
어머니가 정부군 장교인 새 아버지의 아기를 임신하자 어쩔 수 없이 새 아버지의 거처인 산골 요새로 이사오면서부터 오필리아가 요정과 괴물의 나라 속을 탐험하는 여정이 펼쳐집니다.
지하 세계의 "판"은 산골 요새 근처의 신비로운 미로 아래로 내려온 오필리아한테 미션을 부여합니다.
오필리아가 인간에서 요정 나라의 공주로 복귀하려면 숙제를 세 개나 해야 한다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거 뭐 학습능력이 떨어지면 요정 공주도 못해 먹겠네. -_-;;
그래도 권위적인 새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판"이 내준 숙제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오필리아 소녀.
첫 번째 숙제에서 오필리아가 괴물 두꺼비와 대결하는 장면이 흐뭇했습니다.
스페인어로 두꺼비한테 훈계를 늘어놓는 오필리아와 그저 혓바닥을 굴리며 꺼억꺼억거리는 두꺼비가 서로 옥신각신하다 오바이트의 폭풍 속에 빠져드는 광경이 환상적이었어요. 캬캬캬, 정말 오바이트 시원하게 하더군요. 보고 있는 제가 다 시원했습니다.
두 번째 숙제에서 오필리아가 슬금슬금 피해가는 요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손바닥에 눈알을 장착하고서 하얀 요괴가 소녀를 마구 쫓아오는데(모에 성향? -_-;;),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분출하는 긴장감이 일품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소녀가 잡힐까봐, 얼굴에 손바닥을 바짝 붙이고 비틀비틀 성큼성큼 추적해오는 요괴의 걸음걸이를 주목하게 되더라구요.
그 장면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고목 앞에 선 소녀의 모습이 있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정겨운 동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그 정도로 피가 난무하는 영화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소녀가 빠져드는 요정 세계의 모습은 물론 현실 세계 마저 잔혹하기만 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협은 오필리아의 새 아버지로 나오는 정부군 장교였습니다.
말보다 주먹이(또는 총이) 먼저 나가는 위험한 사람이더라구요.
오필리아는 물론이고 자신에게 걸리적거리는 모든 이들을 억누르는 그 카리스마, 정말 덜덜덜입니다.
이건 뭐 터미네이터가 따로 없더군요.
그 새 아버지가 거울을 보며 바늘로 직접 수술을 하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정말 그 장면에서 바늘이 살을 찌를 때마다 고통으로 움찔거리는 표정 연기가 실감났습니다.
제 얼굴이 수술 당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영화 속에서는 새 아버지가 저항군을 토벌하면서 벌이는 비인간적인 폭력의 참상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런 현실이 오필리아가 해매고 다니는 비밀스런 동화 속 체험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현실과 동화가 하나로 만나고야 마는 영화의 결말로 흥미진진하게 치닫습니다.
"판의 미로", 정말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현실이 동화 같고, 동화가 현실 같은 기기묘묘한 세계관을 멋진 배우들과 멋진 특수효과를 이용해 거칠고 애절하게 그려냈네요.
근데 영화 속에 나오는 "판"은 사기꾼 같았어. -_-;;
오필리아도 새 아버지도 뭔가에 집착해서 그것을 성취하려고 기를 쓰는 사람이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그들 모두, 그 밖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희망의 싹을 매정하게 꺾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필리아는 구원을 받은 건가?
글쎄, 오필리아의 인생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착한 사람은 착한 결말을, 나쁜 사람은 나쁜 결말을 생각하게 되겠죠.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히히. (:k)
댓글 3
댓글 쓰기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