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1976)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 특이한 구조. 스포일러 있음.


주인공이 등장해서
두서 없이 자기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을 막 풀어놓는다.
조리 있게 말하거나
잘 구성해서 배열하려는 생각도 없다.
어린 시절 불륜을 저지르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그냥 곁에서 지켜만 보던 늙은 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내장이 길에 쏟아져 죽은 사나이,
탈영병과 몰래 섹스해서 임신까지 하고서도 그 탈영병을 배신해 죽게 만든 젊은 여자,
장애인이지만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켜
장애인에 대한 동정을 여자 꼬시는데 사용했던 바람둥이 친구 등.
그냥 이런 것들이 계속 쏟아져나온다. 스토리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멀리 퍼져버리지 않는다.
어떤 핵이 있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그 핵은 말더듬이에다가 발기불능을 가진 어느 청년의
그로테스크한 자의식이다.


그는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다. 그는 탐미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을 숭배하고픈 욕구가 있다.
어릴 적 그는 동네 입구에서 자기가 짝사랑하던 여자를 기다렸다가 강간하려고 한다.
그 여자는 되려 할 테면 해 봐하고 허락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가 발기불능에 머뭇거리자
뺨을 때리고 가 버린다. 여자는 동네방네 주인공에 대한 소문을 내서,
주인공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만든다. 주인공은 '난,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사람이다'하는 생각으로
이것을 묵묵히 받는다.
여자는 탈영병을 숨겨주고 애까지 임신한다는 큰 사고를 친다. 군국주의시대, 여자의 죄는 반역죄에 해당하는
큰 죄다. 여자는 소리치는 경찰 앞에서도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무시한다.
주인공은 감탄한다. '역시 저 여자는......'
그런데 곧 그 여자는, 탈영병이 숨어있는 장소를 경찰에게 분다. 여자도 탈영병도 살해당한다.
이 여자는, 영화 내내, 주인공의 자의식 속에 계속 나와 그에게 말을 건다.
이 여자는 주인공이 숭배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치졸하고 비겁하게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인 여자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녀는 주인공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공도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대학생이었을 때, 우연히 창문 안으로, 어떤 부부를 보았다.
남편이었던 장교가 전장터로 떠나려는 듯 보였다. 그의 아내는 그와 마주 앉아서는 가슴을 드러내
모유를 짜서 그에게 먹인다. 그것이 너무 신성해보이고, 여자가 너무 완벽하게 아름다워보여서
그는 감동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바람둥이 친구에게 달라붙어 치근덕대는
늙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 여자가 바로, 자기가 전에 보았던 장교의 아내였다.
신성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늙고 추레한 여자가 되었다.
주인공이 전에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하자, 여자는 웃으며 "그것이 좋으면 너한테도 해 줄께"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가졌던 신성한 기억은 이제 별 거 아닌 늙은 여자의 훌러덩 옷 벗는 것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주인공의 XX이 또 서지 않는다. 여자는 비웃으며 "젊은 놈이 서지도 않는 쓸 모 없는 놈이었군"하며
시간 낭비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느 순간 보았던 자동차사고로 죽어 길바닥에 버려진 시체는,
그의 의식을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돈다. 평생에 걸쳐 그를 붙잡고 장악하는 이미지다.
새하얀 내장이 찢어진 배에서 튀어나와 길바닥에 한가득 펼쳐졌다.
그는 웬지 이것을 한참 바라보았고, 이 이미지는 그의 의식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


영화 내내 이것이 주인공이 겪는 내적인 모험이다. 영화 상영 시간 내내,
주인공의 이런 경험들을 보아야 한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더듬거리고, 바람둥이 쾌활한 친구 앞에서 더듬거리고,
창녀 앞에서 더듬거리고, 어머니 앞에서 더듬거리고, 소개팅에서 만난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 앞에서 더듬거리고-
그들 모두 앞에서 자기가 발기불능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고-
하지만,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찬탄하며 보았던 금각사의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그는 수시로 금각사에 올라 금으로 둘러싼 그 완벽한 조형물을 본다.
말년에 중병에 걸려 건강도 잃고 발기불능이 되어서,
아내가 자기 앞에서 대놓고 불륜을 저질러도 아무말 못하던 초라한 아버지.
그는 가끔 이렇게 금각사에 와서 그 완벽한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제 막 이십대에 접어든 주인공도 아버지와 비슷한 신세다.
주인공이 어렸을 적,
남편의 발기불능에 혐오감을 느낀 어머니는
아들 곁에서 젊은 남자와 섹스를 했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내내 어머니를 혐오한다.
주인공은 늙수그레한 여자의 알몸을 안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자기는 어머니와 섹스하던 그 젊은 남자가 됨과 동시에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던 것을 그냥 바라만 보던 아버지가 된다.
그는 어머니를 혐오하던 것이었나 아니면 아버지를 혐오하던 것이었나?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면서
그는 아들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나,
아니면 남편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나,
아니면 젊은 불륜남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나.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자기가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달성한 금각사를 태워 버린다.
높은 것, 자기에게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을
태워 버린다.
금각사가 사라지도 난 다음 주인공은?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난 후 그의 삶은 어떻게 될까?

보기 괴로운 영화다.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에피소드나 주제가 잘 정리된 것도 아니다.
점묘화처럼 이미지나 기억 그리고 사건들이 영화 안에 무작위로 흩뿌려진다.
그것들은 모여 주인공의 그로테스크한 내면을 그려낸다.
주인공의 그로테스크한 열등감과 자의식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한 방향을 향해 질주한다. 그 끝에는 완벽한 금각사가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의 재미있는 영화인데,
약간 허술하고 섬세하지 못한 데가 있다.
그래도, 수작 정도에는 너끈히 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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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2등
3등 원작 책 읽었었는데.... 이 영화는 아주 전위적으로 각색한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