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AI보다 궁금했던 건, 남겨진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였다”
카란

AI 기술로 죽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상자 속의 양>은 그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감독이 진짜로 관심을 가진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인터뷰에서 작품의 출발점부터 부부 관계, 어머니라는 존재, AI와 인간성에 대한 생각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ㅡ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중국에서 죽은 사람을 AI로 재현하는 서비스를 다룬 뉴스를 본 적이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AI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존재를 자기들 편의대로 다뤄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도 SF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ㅡ 영화 속 부부는 같은 상실을 겪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남편인 켄스케는 사실 휴머노이드 카케루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아들 방 벽에 남아 있던 전철 그림을 지우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설정상 그 벽은 켄스케가 지운 건데, 완전히 지우지 못해요.
아들의 흔적을 없애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없앨 수 없는 거죠.
반면 오토네가 지웠다면 아마 완전히 새하얗게 만들었을 겁니다.
켄스케는 아직 진짜 카케루를 놓지 못한 상태예요.
그래서 벽에도 그 흔들림이 남아 있는 겁니다.
ㅡ 촬영 후에는 '가족 이야기'보다 '부부 이야기'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촬영하면서 갑자기 방향이 바뀐 건 아니에요.
다만 편집을 하면서 보니, 이 작품은 부모와 자식 이야기라기보다 부부 이야기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무게중심이 이동했어요.
정말 큰 변화라기보다는, 미세한 조정에 가까웠습니다.
ㅡ 감독님은 부부를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시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취재 중에 건축가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유리와 나무처럼 서로 다른 재료를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조화시키는 것이 건축의 재미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부부가 떠올랐어요.
부부는 혈연이 없잖아요.
아무 연결도 없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부부를 '유리와 나무' 같은 관계로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ㅡ 영화 속 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처음부터 저런 집을 찾겠다고 정해둔 건 아니었어요.
여러 건축가 주택을 둘러보다가 그 집을 발견했는데, 보자마자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드론으로 촬영해보니 여러 개의 상자가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상자 속의 양>이라는 제목과도 잘 어울리게 됐습니다.
안마당에서 기차가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 이름을 주고받는 장면도 만들어졌습니다.
ㅡ 작품 속 오토네는 '정답에 도달하기 전까지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건 사실 저 자신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건축가 취재를 하면서 "프로세스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굉장히 공감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촬영하고, 편집하고, 다시 고치고, 또 수정하고.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을 만드는 거죠.
실제로 이번 작품도 편집 과정에서 의미가 꽤 달라졌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화적이고 철학적인 영화가 됐어요.
부부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인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넓어졌습니다.

ㅡ 영화에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도 중요한 축으로 등장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실 이건 오래전부터 저에게 남아 있던 숙제 같은 주제였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인터뷰 당시 제가 "부성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서, 반대로 모성은 원래 있는 것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난 뒤 한 여성분이 와서 말씀하시더군요.
"모성이 여성에게 원래부터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 달라. 당신이 부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모성을 느끼지 못해 괴로워하는 여성도 많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너무 좁은 경험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 뒤로 계속 이 문제를 작품 속에서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ㅡ 아야세 하루카도 이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다고 들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라 기획 단계부터 많이 이야기했어요.
아야세 씨는 처음 대본을 읽고 "왜 주인공이 어머니를 이렇게 미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보니 어머니와 관계가 복잡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에는 함께 모녀 관계를 어떻게 그릴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ㅡ 영화에서는 '말'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켄스케는 하지 못한 말 때문에 괴로워하고, 오토네는 해버린 말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같은 아들의 죽음을 겪었는데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 말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ㅡ 특히 "그래도 사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 역시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거든요.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돌아와서 미처 못한 말을 하고, 사과도 하고, 후회도 해결하고.
그렇게 끝나버리면 죽은 사람이 너무 편리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래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떠나보내는 과정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반부가 바뀐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ㅡ 후반부 숲 장면은 어떤 의미였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는 죽은 사람들이 돌아가는 장소로 숲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나무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 AI가 언젠가 하나의 사회를 만든다면 서로 연결되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무의 지성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는데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숲과 나무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미지가 됐습니다.
ㅡ AI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ChatGPT에게 대본을 읽혀봤어요(웃음).
그랬더니 엄청 칭찬을 해주더군요.
그리고는 "주인공 어머니를 조금 더 깊게 만들면 좋겠다"는 조언도 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문제는 너무 정답만 말한다는 겁니다.
저는 영화 만들 때 젊은 조감독들에게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게 하는데, 그 의견들은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에서 나와요.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가 담겨 있죠.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작품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번 영화에서도 원래 대본에는 없던 장면이 촬영 현장에서 생겼어요.
아들의 사진을 고르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대본에는 그냥 사진을 본다고만 적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진 속에서 아야세 씨가 아이와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오히려 남편이 아이가 아니라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보였어요.
그 웃음을 되찾고 싶어서 휴머노이드를 받아들이려 하는 남자처럼 보였죠.
그래서 현장에서 대사를 바꾸고 장면을 수정했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이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AI는 아직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적어도 제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AI와 꽤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ㅡ 마지막으로 ChatGPT가 이 영화에 대해 남긴 평가가 있었다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프로듀서가 ChatGPT에게 "이 영화를 출품한다면 어떤 영화제가 좋을까?"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프로듀서가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인데?"라고 하니까, 바로 "그렇다면 경쟁 부문이 확실합니다"라고 답했어요(웃음).
그래서 너무 믿지는 않기로 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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