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 제레미 잔스 리뷰
볼드모트
자, 이제 [백룸]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백룸]은 케인 파슨스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윌 수딕도 각본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뿌듯한 게. 이번에는 케인 파슨스 이름의 R을 제대로 봤거든요. 제가 전에 [옵세션] 리뷰에서는 커리 바커를 커리 베이커라고 불렀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래도 그 영화는 정말 좋았어요. 그 R들이 참 교묘하단 말이죠. 슬쩍 숨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번엔 수딕이 맞기를 바랍니다. 소딕이나 쏘딕이 아니고요.
이 영화는 인터넷 괴담이자 전설 같은 존재인 ‘백룸’을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벽을 통과하다가 갑자기 동네 가구 매장 같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차원이죠. 치웨텔 에지오포가 그런 기묘한 일을 겪게 되는 매장 주인을 연기합니다. 뭐, 그 경험을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죠. 영화는 그가 이 공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알아내려 한다’입니다.
케인 파슨스는 또 한 명의 유튜버 출신 감독으로, 극장용 공포영화 연출자로 도약한 인물입니다. 처음엔 그가 백룸 설정 자체를 만든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세계관을 처음 만든 사람은 아니고, 대신 백룸 바이럴 영상 시리즈를 통해 그 개념을 대중적으로 퍼뜨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입소문을 만들고, 팬층도 크게 늘렸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 보기 전까지 백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누군가가 매장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 몇 개만 봤어요. 마치 매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냥 영원히 끝나지 않는 유통업계 지옥 같았습니다. 소매업 쪽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그걸 보통 ‘연말 시즌’이라고 부르죠.
[백룸]은 마치 영화 [라비린스]에서 판타지 요소를 걷어내고 직장인의 세계로 옮겨놓은 듯한 영화입니다. 마치 마왕 자레스가 동네 세무 대행업체의 매니저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 영화의 배우들 연기가 정말 좋습니다. 치웨텔 에지오포는 정말 믿고 보는 배우예요. 항상 자기 몫은 확실히 해냅니다. 다만 가끔은 대본이 그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대본보다 더 열심히 관객을 설득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는 잠시 후 다시 하겠습니다.
이 공간은 직장에서 우연히 발을 들였다가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기묘한 차원인데, 현실이 악성 변이를 일으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약간 그런 거예요. 몸속 종양에서 머리카락이나 치아가 자라나는 경우 있잖아요. 특별한 기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백룸 속 사물들이 딱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 물건들은 어떤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그 공간이 그냥 그런 것들을 자라나게 하는 거예요.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원래 있어야 할 방식대로 기능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계속 생겨납니다.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그런 분위기를 정말 훌륭하게 구현해낸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도 바로 그 감각이에요. 그 꿈 있잖아요. 우리 다 한 번쯤 꿔본 그런 꿈. 낯선 공간에 들어섰는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 악몽 같은 공간이죠. 건축 구조 자체도 말이 안 됩니다. 뭔가가 당신을 쫓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계속 도망쳐야 합니다. 숨고 싶고, 탈출하고 싶죠. 그런데 어디에 숨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시작이 있는지, 끝이 있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리고 가장 불안한 건, 당신은 어쨌든 이 공간에 들어오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뛰고 헤매다 보면, 과연 다시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요?
여기에 약간의 바디 호러 요소도 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파운드 푸티지 요소가 등장할 때 훨씬 더 힘을 받습니다. 누군가가 캠코더로 촬영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배경이 90년대라서 그런 설정이 가능하죠. 적어도 제가 보기엔 90년대였어요. 영화 속 로봇도 1990년이라고 말하니까요. 거의 80년대 끝자락 같기도 하고, 또 90년대 초반 느낌 같기도 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이건 ‘파운드 푸티지’라기보다는,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영상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해졌죠. 그런데도 저는 그 장면들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가 가장 제대로 자기 리듬을 찾는 순간 같았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백룸 영상들 대부분이 파운드 푸티지 형식이니까요. 저는 그 장면들에서는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이제는 단물 다 빠진 형식이라 해도, 10여 년 전 그 포맷이 유행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죠. 카메라가 휙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뭔가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데 정확히 뭐가 변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그 감각 말이에요.
반면 파운드 푸티지 요소가 빠진 탐험 장면들은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흥미가 서서히 식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슬로우번이라기보다는 그냥 느릿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죠.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때때로 대사는 어딘지 어긋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 장면에서는 굉장히 무거운 감정과 상황을 다루는데도 대사가 너무 만화적으로 들렸어요. 그 부분에서는 케인 파슨스가 자신의 역량 이상을 욕심낸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나온 것도 의도된 유머라기보다는, 의도치 않게 우스워져버렸기 때문처럼 느껴졌고요. 그런데 또 곧바로 충격적인 분위기로 방향을 틀다 보니 조금 과하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이 영화가 다른 부분들에서는 의외로 꽤 웃깁니다. 좋은 의미로요. 웃기면 안 되는 장면이 웃긴 게 아니라, 진짜 의도된 유머가 잘 먹힙니다. 그래서 더더욱 “무섭다기보다는 흥미로운 영화였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중간중간 웃긴 순간들이 있다 보니 공포감이 조금 희석되는 거죠. 특히 전반부에서 그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케인 파슨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감독이 코미디 감각에 꽤 재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다크 코미디 쪽일 수도 있겠네요. 분명 웃음을 노리고 만든 장면들이 있었고, 실제로도 제대로 터졌거든요. 관객들도 웃었고 저도 웃었습니다. 지금도 몇몇 장면은 떠올리면 피식하게 돼요. 뭐, 감독이 웃기려고 했고 실제로 관객이 웃었다면 그건 성공한 거죠.
하지만 이 영화, 너무 깁니다. 러닝타임이 약 1시간 45분 정도 되는데, 최대 1시간 30분 정도로 끝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지막 막이 마치 나중에 덧붙인 후일담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그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가 러닝타임 내내 따라갔던 주인공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중심으로 흘러가거든요. 전체적으로 좀 어색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터에 나온 인물이 바로 그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회상 장면 몇 번 나오는 게 서사의 전부인데 그걸로 캐릭터 구축이 다 됐다고 생각한 걸까요?
레나테 레인스베 역시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대본이 항상 배우들을 제대로 받쳐주지는 못해요. 그리고 이름 발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제 영상들 보면 제가 발음 체크를 너무 자주 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것도 죄송합니다.
결론적으로 [백룸]은 백룸 괴담의 설정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팬들을 위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인의 퀄리티는 꽤 탄탄하고, 카메라 워크도 훌륭해요. 독특한 공간이 주는 공포감을 정말 효과적으로 시각화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위기 하나만큼은 확실해요.
물론 단점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백룸]이 장편영화보다는 온라인 단편 시리즈 형식에서 더 잘 어울리는 작품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폐소공포 체험이었어요. 술 한 잔 없이도 충분할 정도로요.


















영화 속 비디오 테이프로 찍은 듯한 푸티지 영상이 더 무섭게 느껴지긴 했어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