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캐스팅의 문제점을 꼬집는 그리스 매체
golgo

Greek City Times라는 그리스 및 해외 그리스 이민자 공동체를 위한 영어 온라인 매체가 올린 칼럼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원작과는 다른 파격적인 다인종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논란인데... 이 매체는 '그 다양성 캐스팅에서 정작 그리스인은 무시당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일독해 볼만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https://greekcitytimes.com/2026/05/25/a-letter-to-hollywood-and-nolans-odyssey-cast-from-us-greeks/
할리우드와 놀란의 <오디세이> 출연진에게 보내는 그리스인들의 편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출연진과 제작진 여러분께,
우리는 고대 유물의 파편도, 박물관 전시품의 메아리도, 대리석 속에 봉인된 캐릭터도 아닌,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역사를 써 내려온 살아 숨 쉬는 민족, 그리스인으로서 이 글을 씁니다.
먼저 여러분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영화는 언제나 고전 텍스트를 새롭게 상상하고, 언어와 시대의 경계를 넘어 오래된 이야기를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전하는 강력한 힘을 지녀왔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여러 면에서 인류 공동의 문화적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이 대서사시를 전 세계적인 규모로 스크린에 옮기려는 여러분의 야망을 이해하며, 수 세기 동안 이 서사시들을 둘러싸고 이어져 온 예술적 재해석의 전통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의 그리스 이야기의 현대적 재해석 과정에서 종종 간과되는 한 가지를 여러분이 깊이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은 신화 시대 이후 사라진 민족이 아닙니다. 그리스 문화는 고전기 대리석 속에 멈춰 있지 않았고, 그리스어 역시 고대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합니다.
3,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리스인의 정체성은 단절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을 거치며 지속되어 왔습니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모태가 된 미케네 문명에서부터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토스, 테베의 고전기 도시국가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을 통해 지중해 전역으로 그리스 언어와 사상이 퍼져나간 헬레니즘 시대, 또한 행정, 철학, 신학의 주요 언어로 그리스어가 사용된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 시대를 지나, 언어와 신앙, 공동체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낸 오스만 제국 통치 수 세기를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혁명을 통해 발돋움하여 오늘날 유럽과 더 넓은 세계 속에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현대 그리스 국가에 이르렀습니다.
그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끊어지지 않은 본질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언어와 기억, 그리고 문화적 연속성입니다.
그리스어는 인류 역사상 유럽에서 가장 오랜 기간 단절 없이 살아남은 언어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재구성되거나 부활한 언어가 아닙니다.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어입니다.
이러한 연속성은 <오디세이> 같은 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질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오디세우스는 인내, 투쟁, 그리고 귀향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역사의 모든 지층을 거치며 이어져 내려온 문화 유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비잔티움 학자들에 의해 재해석되었고, 중세 세계에서 필사된 사본 속에 보존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연구되었고, 오늘날에도 그리스에서 가르쳐지고, 읽히고, 새롭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대표성에 관한 논의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배제나 제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이나 새로운 해석에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 문화 자체가 수 세기에 걸친 교류와 이주, 만남을 통해 형성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훨씬 더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입니다.
그리스 이야기가 세계 무대에서 다시 울려 퍼질 때, 그 이야기 속에서 정작 그리스인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최근 영화 산업은 문화적 대표성을 꾸준히 강조해왔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특정 문화가 제대로 인정받고, 그들의 목소리가 포함되며, 실제 삶의 경험이 지워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원주민 서사에 원주민 창작자와 자문이 참여하는 일 역시 점차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가고 있으며, 정체성을 고려하는 것은 이제 예술적 책임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이 그리스의 유산에도 똑같이 적용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스의 정체성이 취약해서가 아니라, 단절 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이>를 둘러싼 논의 속에 누군가는 신화는 전 인류의 것이며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출연진의 다양성이 역사적 고증보다는 오늘날의 글로벌 관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관점 역시 이해합니다. 다만 보편성이 반드시 기원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인류 전체의 자산이 되면서도, 그 이야기가 처음 태동한 민족과 언어를 동시에 예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는 분노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식을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너무나 자주, 그리스 역사는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끝나버린 것'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마치 그리스가 고전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처럼, 비잔티움의 연속성과 오스만 통치기의 인내, 혁명을 통한 부활, 그리고 오늘날 세계 곳곳의 도시와 마을, 섬과 디아스포라 공동체 속 현재의 그리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바다와 방랑, 신들과 돌아온 왕들이 가득한 호메로스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때, 이 인식을 마음속에 품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는 고대의 배경에 불과한 곳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스인은 역사 속 인물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고대든 중세든 현대든, 그리스 역사의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다시 전하게 될 때, 그 안에서 그리스 유산은 부재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며, 이 대서사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여러분의 장인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이 작품이 기원을 지워버리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을 확장하는 영화계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미케네의 메아리를 지나, 고전 철학을 지나, 헬레니즘의 확장을 지나, 비잔티움의 연속성을 지나, 오스만 통치기의 인내를 지나, 현대 국가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 존재해왔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추신:
소수자 대표성, 진정성, 그리고 다양성을 향한 할리우드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규칙과 집요한 주장을 고려할 때, 이 '그리스 이야기'에서 그리스인이나 그리스계 미국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오디세이> 출연진:
맷 데이먼(미국인-잉글랜드·핀란드·스코틀랜드계 혈통)
톰 홀랜드(영국인)
앤 해서웨이(미국인-아일랜드·프랑스·잉글랜드계 혈통)
젠데이아(아프리카계 미국인·독일·스코틀랜드계 혈통)
루피타 뇽오(케냐-멕시코계)
샤를리즈 테론(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아프리카너 혈통)
로버트 패틴슨(영국인)
존 번설(미국인-유대계 혈통)
존 레귀자모(콜롬비아계 미국인)
베니 사프디(미국인-시리아계 유대인 혈통)
히메시 파텔(영국인-인도 구자라트계 혈통)
조반 아데포(나이지리아계 미국인/영국인)
미아 고스(브라질-영국계 혈통)
우리 그리스인들이 먼저 이 불을 지핀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자유 대신 진정성을 훈계하며 독선적인 '다양성'의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할리우드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춤으로써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기로 했을 뿐입니다! 결국, 본지는 문화적 보호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문화적 교류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K.N.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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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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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거기에 더하여 제작에서 한국인이 완전 배제되어 있는 상황인 셈이니 당사자 입장에선 충분히 빡칠만하죠(...)
문제는 이런 분란이 일어날거라는걸 놀란감독이 알고있었다는게… 과연 개봉후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집니다. 전 이런게 이번 우리 스벅난리처럼, 다른 생각도 같이 가야 한다는 황당한소릴 할까봐 걱정입니다. 모르죠. 그말할려고 벼르고 있을지… 감독 권한이라면서. 앞으로 개봉날 생각하면 어질어질 합니다.
그들의 분노와 실망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헐리우드는 자기들 잘난척 설교는 끊임없이 하고 다양성 강조하며 시대가 원하는 걸 한다면서 대단한 신념을 가진듯 정당화하지만 정작 그 당사국의 문화와 배우는 끼워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
저번에 댓글로 제가 그리스인이 아닌게 다행이라고 적었는데 그리스인들의 반박을 보니 후련합니다
이토록 정중한 분노의 칼럼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고대그리스 영화 만드는데 무지개염색 코뚜래 여성이 나와서, 나 스파르탄의 왕 레오니다스는 여기 있다!
라고 외치는 듯한 할리우드 요새 트렌드 정말 별로입니다. 새로운 스토리를 따로 창작해서 해줫으면 하는 바램.
어떻게든 쉽고 편하게 가려고 유명한 작품들에 편승하니까 이 사단이 난다고 봅니다.
뭔가 하고 싶으면 정당한 일과 고통을 감수해서 창작해주길


















중요한 지점을 잘 꼬집은 칼럼인 듯 하네요.
일종의 다양성 세탁이라고 하면 맞을까요? 세계 공통의 유산은 맞고 그 해석은 자유지만 대상이 아직 건재한 상태이니까요.
단군 신화가 세계적인 유산일 때 그걸 영화화하면서 등장인물의 인종을 다양하게 묘사하는 것과 비슷한 이미지로 다가올 것 같군요.(지역적인 제한은 차치한 경우)
...마우스가 맛탱이가 가서 이중 클릭돼서 댓글이 두개가 등록돼 버림 T_T